최은진의 BOOK소리 83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인간은 달린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저자 : 무라카미 하루키 / 출판사 : 문학사상 / 정가 : 12,000원 자신의 묘비명으로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라고 쓰고 싶다는 일본문학의 거장 무라카미 하루키. 좀처럼 사생활을 드러내지 않는 그가 “이것은 달리는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지 건강법에 관한 책이 아니다.”라며 달리기라는 행위를 축으로 한 일종의 회고록을 쓴 것이다. 소설가로서, 또 어디에나 있는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정리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세머셋 몸은 “어떤 면도의 방법에도 철학이 있다”고 했다. 그런 관점에서 하루키라는 작가에게는 ‘달리기’가 그 방법이었다. 소설쓰기가 ‘육체노동’이라는 확신으로 달리기에 도전했다는데, 책을 읽고 나면 달리기가 얼마나 철학적인 ‘정신노동’인지 알게 된다. 누구에게나 오롯이 자기 자신을 조우하게 되는 어떤 시간(혹은 공간)이 있다. 조용한 성당이나 교회에서 기도하며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도 있고, 날마다 일정시간을 산책하면서 사색에 빠진다는 작가도 많다. 또 여행을 통해 자신을 찾겠다며 틈만 나면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도
최은진의 BOOK소리 82 ‘결국 모든 것은 섹스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인생학교 |섹스| ◎ 저자 : 알랭 드 보통 / 출판사 : 샘앤파커스 / 정가 : 12,000원 ‘죄책감을 양산하지 않는 고급스런 포르노’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섹스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는 법에 대해 통쾌하게 풀어놓은 책. 철학가이자 작가인 알랭 드 보통의 에세이로 철학을 바탕에 깔고 있는 이전의 모든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깊고도 독특한 성찰로 우리를 이끈다. 결혼한 사람들조차 섹스에 관해선 제대로 밝은 곳에 꺼내서 이야기하지 못하고, 생각조차 꽁꽁 숨어서 하기 마련이다. 그는 사람들이 콕 집어서 말할 수 없던 ‘그 무엇’을 분석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데 천부적인 재능을 보여주기로 유명하다. 이번에 그 무엇이 바로 ‘섹스’다! ‘왜 모두의 성생활은 매우 이상한가?’로 글을 여는데, 섹스에 관한 한 조금이라도 정상적인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 그런데 이런 비정상적이고 왜곡된 섹스에 관한 태도를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생활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을 금기시한다는 것을 지적한다. 이 책은 그의 말대로 ‘섹스’라는 주제에 대해 철학적인 사색을 펼쳐보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
최은진의 BOOK소리 81 시간의 힘을 보여주는 그림책 나무처럼 ◎ 저자 : 이현주 / 출판사 : 책고래 / 정가 : 12,000원 초록과 연두가 어우러져 싱그러움을 표지 가득 채우고 있는 은행나무가 눈길을 끄는 그림책. 젊고 싱싱한 저 나무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를 기대하게 만든다. 대학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했고 ‘세계 일러스트 거장전’에서 대상을 받은 작가는 우리의 눈도, 마음도 모두 따뜻함과 먹먹함으로 채워준다. 열 살 때 낡은 오층 아파트로 이사 온 어린 은행나무의 생을 담고 있다. 낯설고 새로운 환경에서 시작해 애정 어린 시선으로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어두운 마음에 불을 켜주듯 우리는 환하게 해준다. 섬세하면서도 따뜻한 그림이 이 책의 매력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너무나 간결하게, 한 인생을 덤덤히 말하듯 그려내어 독자를 사로잡는다.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열 네 살이 되고, 이층 화가 아저씨의 그림을 통해 처음 본 자신의 모습에 놀라고 설레는 은행나무. 책장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커져버린 나무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지켜보며 그것을 통해 행복과 슬픔의 본질을 생각한다. 꼭대기까지 자라 버린 나무는 긴 그림자만 반기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야 할 이들을 위한 안내서 로봇시대, 인간의 일 ◎ 저자 : 구본권 / 출판사 : 어크로스 / 정가 : 15,000원 인간이 만든 도구가 인간의 자리를 위협한다? 사람이 직접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이 불법이 되는 시대는 미래의 멀고 먼 이야기가 아니다. 스마트 시대를 넘어서 이젠 인공지능 로봇 시대로 진입했음을 알리는 디지털 인문학자 구본권. 저자는 프롤로그에 ‘멋진 신세계’를 불러올 로봇 시대가 열린다고 했지만, 어쩐지 우리는 두렵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크고 근본적인 변화를 눈앞에 둔 지금, 사람이 도태되는 것은 아닌지, 아날로그가 편한 기성세대는 불안하기만 하다. 스마트 시대도 따라가기 벅찬데, ‘멋진 신세계’는 젊고 똑똑한 그들만의 세계일 것만 같다. 그렇다고 21세기에 도시 한복판에 던져진 조선시대 사람처럼 살 수는 없다. 인공지능 시대에 어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지에 대한 안내서다. 당장 내 직업이 십 년 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 자녀의 직업으로는 뭐가 좋을지 고민스럽다. 반려로봇을 키우며 로봇하고 연애까지 하는 시대가 온다는데, 과연 그런 사회를 우린 거부감 없이 편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 의문이다. 물론 즐거
최은진의 BOOK소리 79 끄덕끄덕, 삶을 낙관하게 되는 책 뭐라도 되겠지 ◎저자 : 김중혁 / 출판사 : 마음산책 / 정가 : 13,800원 삶을 낭비해도 괜찮다는 작가가 몇이나 될까? 아니 있기나 할까? 시간을 낭비하는 건 삶을 낭비하는 것이라 배웠고, 뭐라도 하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불안하지 않는 우리들 아닌가. 그런데 시간을, 삶을 낭비해도 된다니? 그것도 유명한 작가가 거침없이 말해주니 왠지 안도감을 느낀다. 남들은 모두 뭔가를 향해 열심히 달리고 있는데, 나만 갈팡질팡 인생을 허비하고 있지 않나 하는 불안을 느껴 본 적 다들 있지 않을까? 빈둥거리는 건 아주 나쁜 것이라고 철저한 교육을 받아 온 우리들. 성실하지 않은 사람, 부지런하지 않은 사람은 지탄받아 마땅한 사회에서 “시간을, 삶을 낭비”해도 괜찮다는 말처럼 위안이 되는 말이 또 있을까. “농담으로 가득하지만 때로는 진지한 책. 술렁술렁 페이지가 넘어가지만 어떤 장면에서는 잠시 멈추게 되는 책. 글과 글 사이에 재미난 카툰이 들어 있어서 키득키득 웃을 수 있는 책. 다 읽고 나면 인생이 즐거워지는 책. 긍정이 온몸에 녹아들어서 아무리 괴로운 일이 닥쳐도 어쩔 수 없이, ‘몰라, 어떻게든
최은진의 BOOK소리 78 여러분, 잘 죽을 준비 됐나요? 죽음연습 ◎ 저자 : 이경신 / 출판사 : 동녘 / 정가 : 16,500원 아무도 경험해 본 사람이 없기에 상상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죽음’. 가까운 지인들의 죽음을 겪으면서 철학을 시작했다는 저자는 깊이에 넓이까지 총망라하여 “죽음연습”이라는 다소 파격적인 제목의 철학에세이를 펴냈다. 잘 늙고 잘 죽는 것을 넘어 잘 사는 것에 대한 사색을 많은 이들과 나누려고 했다. 아무도 경험해 본 적 없지만, 누구나 한번은 경험하게 될 그 문턱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는 우리들. 죽음연습을 통해 그 두려움과 공포를 들여다보고, 사는 동안 잘 죽어가는 법을 고민하자는 것이다. 1부 ‘나이 듦의 지혜를 찾아’를 시작으로 2부 ‘죽음은 삶의 끝인가, 시작인가?’, 3부 ‘너도 죽고 나도 죽으리’, 그리고 4부 ‘그(녀)들의 죽음’으로 끝맺으며 죽음에 대한 총망라적이고 전방위적인 지식을 펼쳐보인다. 개인적인 상실이나 부재로써의 죽음뿐만 아니라, 사회의 다양한 죽음을 목도한 철학서이기도 하다. 제도와 관습의 살인, 위험한 세상의 희생양이 된 죽음, 전쟁이 낳은 집단죽음 등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기도
최은진의 BOOK소리 77 술과 안주, 그리고 친구가 있는 밤으로의 초대 나가에의 심야상담소 ◎ 저자 : 이시모치 아사미 / 출판사 : 알에이치코리아 / 정가 : 12,000원 일에 지친 직장인들이 목빠지게 기다리는 일명 ‘불금’을 질투가 날 정도로 근사한 시간으로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고단했던 한 주가 끝나고 밤이 깊어지면 도심의 작은 원룸에 따뜻한 불이 켜지고 그들만의 작은 파티가 시작된다. 일본추리작가협회에서 주목하는 작가 이시모치 아사미의 신작으로, 기존의 미스터리작에서 볼 수 있었던 충격적인 사건이 아닌, 일상적인 소재를 편안한 술자리에서 추리하고 분석해서 해결 한다는 점이 일단 흥미롭다. 미스터리 소설의 단골소재인 살인, 납치 같은 자극적인 소재도 없고, 심장이 쫄깃해지게 밀어붙이는 전개도 없다. 나가에, 구마이, 나쓰미라는 세 친구가 마음이 통할 때마다 가지는 술 모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일곱 개의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술자리에는 매번 새로운 초대 손님이 등장하고 그들이 털어놓은 크고 작은 고민들. 소소한 일상의 고민들과 이해할 수 없었던 상대방의 행동에 담긴 속마음을 집주인 나가에는 날카로운 추리와 치밀한 논리력을 바탕으
최은진의 BOOK소리 76 웃음보다 눈물이 약이 되는 세상 언제나 웃게 해 주는 약 ◎ 저자 : 정수민 / 출판사 : 문학과 지성사 / 정가 : 10,000원 웃음과 울음 중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날카로운 상상력을 동원해 웃음과 눈물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되짚어보게 하는 이야기가 있다. 신선한 발상과 발랄한 문체의 신인작가 정수민의 단편동화집. 제 11회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작인 언제나 웃게 해주는 약을 포함해 마이너스 친구, 수호요정, 바람의 여신, 안 웃기는 농담, 미다스의 비듬, 야행성 아이, 낙서와의 전쟁 등 제각기 다른 여덟 아이들의 고민과 성장통을 담았다. 힘들고 혼란스러운 성장의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아이들에게 내재되어 있는 상상력과 자가치유의 힘이다. 어른인 우리에게도 어쩌면 아직 남아 있을지 모를. 필요할 때마다 한 알만 삼키면 우리를 웃게 해주는 마법같은 약. 어린이발명왕이라는 TV에 나온 기상천외한 이 발명품은 주인공 재영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런 약을 누군들 원하지 않을까? 그런데, 뻔한 우리의 상상력을 뭉개며 작가는 약의 부작용인 눈물을 주연 자리에 앉힌다. 언제나 웃게 해준다는 말에 약을 구입한 친구 민재
최은진의 BOOK소리 75 아름다운 그림이 감추고 있는 무서운 이야기들 무서운 그림 – 아름다움 명화의 섬뜩한 뒷이야기 ◎ 저자 : 나카노 교쿄 / 출판사 : 베프북스 / 정가 : 14,000원 한 마리 백조를 연상케하는 발레리나의 우아한 모습이 담긴 드가의 「무대 위의 무용수」가 왜 무서운 그림이라는 걸까? 교양과, 감성과 지식이 총망라된 듯한 이 책은 고전주의에서 인상주의까지의 그림을 보여준다. 16세기에서 20세기 명화에서 공포를 더듬어 보려는 작은 시도에서 시작되었다. 그림에서 그림자를 추적하는 사람이라는, 나카노 교코의 그림 해설이 흥미롭다. 여기서 소개하는 그림들은 이름만 대면 알만한 화가의 명작들인데 그 한 점 한 점이 모두 평범치 않다. 대놓고 ‘나 무섭지’ 하는 그림에서부터 신랄하게 들려주는 그림의 뒷이야기를 듣고 다시 보면 섬뜩해지는 그림에 이르기까지. 그림의 내용에 담긴 역사적 배경과 시대 상황이 함께 어우러져 암울하고 슬프기까지 한 그림들. 저자는 그림 속에 담긴 의미를 적나라하게 꺼내서 이야기한다. 말 그대로 관객을 전율하게 할 목적으로 그린 진짜로 무서운 그림, 예를 들어 고야의 「제 아이를 잡아먹는 사투르누스」같은 작품도 다
최은진의 BOOK소리 73 우리가 쓰고 있는 ‘삶’이라는 책에 관하여 책이 되어버린 남자 ◎ 저자 : 알폰스 슈바이거르트 / 출판사 : 비채 / 정가 : 9,800 책을 사랑하고 증오하다 책에 미쳐서 마침내 책이 되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우리에게 책이란 무엇일까? 한국인들의 독서량이 형편없이 낮다는 얘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렇게 밥벌이에 바쁜 당신이 책을 외면하고 살고 있을 때도 ‘책’은 어딘가에서 세상을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 책에 대한 단상들, 책벌레와 책도둑 이야기, 독서에 관한 명언 등 그야말로 책에 관한, 책에 의한, 책의 판타지를 모두 충족시켜준다. 독일의 지성이라 불리는 알폰스 슈바이거르트는 ‘책에 미친 사람들과 책을 증오하는 사람들, 그리고 바로 당신’을 위해 이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책이 하는 독백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흥미롭다. 또 가독력이 좋아 술술 읽힌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집착하던 주인공 비블리는 헌책방에서 ‘그 책’을 훔치게 되고 그때부터 일어나기 시작하는 이해할 수 없는 변화들…. 지독한 사랑과 증오의 ‘그 책’을 위해 그가 가진 모든 것을 팔아버리고 마침내 자신이 ‘그 책’이
최은진의 BOOK소리 72 지구별에서만 우리는 외계인이 아닐 뿐! 옆집의 영희씨 ◎ 저자 : 정소연 / 출판사 : 창비 / 정가 : 10,000 SF소설이 이토록 서정적일 수 있다니. 평범한 일상 속을 파고드는 기묘한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마치 우리 주변에서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착각이 든다. 독자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복잡한 구성과 과학적 상상력이 아닌, 소박한 생활 속에서 일어날 법한 이야기들로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총 15개의 단편들로 이루어진 SF소설집으로 우리 시대 소수자와 타자성과 편견에 관해 우리와 전혀 다르고 이질적인 외계인이라는 존재를 부각시켜 이야기하고 있다. 청소년 문제, 동성애자, 장애, 다문화가정, 병역거부, 난민 등의 문제를 외계인이라는 독특한 소재와 결부시켜 풀어나간다. 옆집의 영희씨는 그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작품.“그런 게” 옆집에 살아서 집값이 싸다는 이유로 지하방을 벗어나 오피스텔로 이사하게 된 수정. 여기서 “그런 거”란 외계인. 예전엔 초등교과서에 단골로 등장했던(요즘은 촌스러워 절대 안 나온다) 이영희라는 친근한 이름이 있지만, “그런 거”로 불리는 영희씨. 합법적인 절차를 밟아 지구에
최은진의 BOOK소리 71 서른 여덟 개의 이야기를 담은 도서관 국경의 도서관 ◎ 저자 : 황경신 / 출판사 : 소담출판사 / 정가 : 13,800 진실과 허구 사이에서 잠시 산책하는 기분으로 매력적인 서른여덟개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쏟아내는 작가 특유의 감성이 세밀하게 녹아있다. 구구절절 늘어놓지 않고 깔끔하게 여운을 남기며 사라지는 짧고 심플한 담편들. “무거움으로 가벼움을 껴안고 가벼움으로 무거움을 날아오르게 하면 좋겠다.”는 작가의 말처럼 이 책은 가벼움과 무거움이 적절하게 잘 조율되어 있다. 작가는 어쩌면 자신이 국경의 도서관에서 밝혔듯 ‘읽거나 쓰거나 둘 중 하나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운명’을 타고 났는지도 모른다. 표지 제목 아래 '38 True Stories Innocent Lies'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꿰맨 조각보 같다. 그렇다고 괴기스럽다거나 거부감이 드는 망측한 상상력은 아니다. 오히려 순수해서 담백한 맛이 나는 이야기들. 누군가를 대신해 여행을 해준다는 기발한 발상, 마음을 파는 가게, 세익스피어가 낭독을 해주는 국경의 도서관, 시인이 된 우체통, 땅에 떨어진 책갈피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