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수지구 동천동은 특이하다. 삭막해 보이는 도시 아파트촌에 전혀 어울릴 것 같아 보이지 않는 마을 문화가 형성돼 있고, 그 속에서 크고 작은 동아리가 끊임없이 만나고 소통하면서 공동체 문화를 확산시켜가고 있다. 그 중심에 동천마을네트워크(연인선 대표, 정경자 차기대표‧이우생활공동체대표)가 자리 잡고 있다. “동천동을 진정한 삶의 터전으로 만들기 위해 함께 하는 단체와 개인들의 협의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각기 다른 크기와 성격의 단체와 동아리가 모인 도시 속의 마을 공동체죠.” 동천마을네트워크는 조각조각난 개인, 혹은 따로따로였던 동아리를 네트워크로 연결해 든든한 공동체의 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에서 마음껏 자신들의 역할을 펼치고 연대의 힘을 점점 더 확산시켜 나갈 수 있도록 버팀목이 되고 있다. 동천마을네트워크가 결성된 것은 지난 2015년이다. 결성된 후 곧바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그만큼 몇몇 의식 있는 동아리가 이미 알게 모르게 태동해 활동하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이우생활공동체와 인문학공동체인 문탁, 그리고 좋은친구센터 등이 활동하고 있었다. 동천동에서 제일 먼저 활동했던 단체는 이우생활공동체였다. 이우학교 학부모로 구성된 이 단체는 2
김인호 선생→이동안→정인보 전통계보 한국민속촌 농악단장 초대 용인과 인연 [용인신문] “전통무용으로 입문해 농악으로 일가를 이뤘다고들 하네요.” 경기도무형문화재 경기고깔소고춤 제56호 예능보유자인 정인삼(79)씨는 남들의 말을 인용해 자신을 설명했다. 현재 우리춤보존회장, 한국농악보존협회 이사장, 전주대사습놀이보존회 부이사장 등을 지내고 있는 그에 대한 별칭은 한국농악의 지존, 한국농악대통령 등 최고의 찬사로 빛난다. 그동안 한국국악협회 부이사장, 한국무용협회 이사 등을 역임한 원로다. 한국 전통문화예술의 중추적 인물인 그를 한국민속촌 연습실에서 만났다. 그는 코로나19로 4월 대구 공연은 취소됐고, 6월 부산 공연이 계획돼 있다며 코로나로 말문을 열었다. 당연히 경기고깔소고춤 공연이다. 지방 공연에 나설 때마다 객석이 뒤집어질 정도로 열광하는 공연이다. 소고춤은 경기도에만 있다. 김량할아버지로 불렸던 전설같은 존재 김인호 선생으로부터 이동안, 정인보로 계보가 이어지면서 한국 전통춤의 본류와 용인무형문화예술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처인구 김량장동을 본거지로 활동한 예인 김인호 선생은 구한말에서 일제 강점기에 화성재인청 최고책임자인 대방(大房) 직을 맡았던
[용인신문] 영화의 꽃비로 마을 공동체를 무럭무럭 성장시키고 있는 예술플랫폼 꿈지락 협동조합 이선경 대표. 이 대표는 수지구 동천동에 동네 주민이 참여하는 대규모 머내 마을영화제의 토대를 만든 장본인이다. 일단 120명의 동네 주민들로 이뤄진 엄청난 스텝진이 참여한 머내 마을영화제는 어마어마한 참여성 그 하나만으로도 대단한 성공이며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다. 동네 주민들의 새로운 1년은 영화제로 설레고 영화제로 살맛난다고 해도 무방해 보일정도다. 한 동네를 움직이는 머내 마을영화제는 용인을 대표하는 콘텐츠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민간 스스로가 만들어낸 놀라운 예술의 힘을 보여주는 영화제. 이선경 대표는 올해는 큰 에너지를 조금은 잠재우고 규모를 줄여 영화제를 개최할 계획이다. “영화제를 구성하는 행사 하나하나의 규모가 엄청납니다. 예산도 부족하고, 참여자들이 아마추어인데다 모두가 자원봉사다 보니 여건에 맞는 영화제가 필요해 보입니다.” 그러나 지난해에도 사실은 규모를 줄일 요량이었다. 1회 행사에도 80여명의 동네 스텝진이 너도나도 참여하면서 엄청난 열기에 모두가 기쁘게 영화제를 치렀지만, 두 번째 행사는 규모를 적정하게 할 요량이었다. 그러나 막상
[용인신문] 지난 20년 동안 수지 지역을 중심으로 지역 공동체를 지키고 키우는 플랫폼 역할을 해왔던 느티나무도서관(수지구 동천동 소재). 민간 사립 공공도서관으로 올해 개관 20주년을 맞았다. 지난 2년간 스무살을 앞두고 박영숙 관장의 고민이 컸다.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에 대한 고민. 박 관장은 ‘지식의 동사화’라는 말로 미래의 역할을 풀어나갔다. Q) 20주년을 맞은 소감은. A 지난 2월 19일이 개관 20주년이었다. 재작년 말부터 도서관 생존 문제에 대한 고민을 해왔다. 운영비가 많이 든다. 재단에서 더 이상 운영하지 못하면 공익법인이기 때문에 문체부에 기부채납 된다. 어려움을 감수하면서 지속하려면 이유가 분명해야 한다. 아직은 좀 꿈같지만 주변에 스타트업도 생기고 이른바 커먼즈라고 하는 문화가 생기면 도서관을 계속 이어나가자, 그런 움직임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시민자산화 해서 지역사회가 같이 꾸려나가는 곳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Q) 20년을 전환점으로 본다면, 지난 20년 역할은. A 함께 길을 찾는 도서관이었다. 삶에서 질문을 발견하고, 생각하고, 탐색하고, 좀 더 나은 길을 찾아가고, 또 그렇게 만난 사람들이 협
[용인신문] 어린이뮤지컬단 리틀용인을 이끌고 있는 이효정 단장. 그녀는 연기 지도와 연출은 물론 극본까지 1인 다역의 단장 역할을 수행해 내면서 오늘날의 리틀 용인을 키워냈다. 어린이들이 주인공이 되어, 어린이들의 마음을 담아, 어린이들을 위해 뮤지컬을 만드는, 이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어린이뮤지컬단을 만들겠다는 의지. 지난해 연말 창작뮤지컬 ‘모글리가 된 아이’ 공연은 최고의 인기였다. 크로마키 기법까지 동원해 보다 실감나는 뮤지컬을 만들어냈을 때 기쁨은 한없이 컸다. 그녀가 용인 최초로 어린이뮤지컬단을 창단한 것은 2005년이었다. 당시 문화예술에 대한 인식과 운영 여건이 열악한 지역에서 극단을 창단한다는 것은 모험이었다. 성인 극단도 운영이 어려운 마당에 어린이뮤지컬단 창단은 더 많은 용기를 필요로 했지만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리틀용인은 창단부터 지금까지 용인지역 어린이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면서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다. 첫 오디션부터 50명 넘는 어린이들이 대거 몰려들면서 성황을 이뤘고, 그 열기는 해를 거듭할수록 더해가고 있다. 처음부터 인기가 넘친 것은 이효정 단장의 열정 때문이었다. 연극영화학과를 졸업하고 국립극단 연수배우로 활동했던 그녀
한익환 선생과 만남 백자의 매력에 빠져 무궁무진한 표현의 자유 만끽 최고의 예술 자유분방·현대적 감각 ‘분청’ 사랑에 풍덩 [용인신문] 백암도예 마순관 명장의 손을 보면 투박하게 얽어있다. 평생을 흙과 불을 만지면서 스스로 흙이고 불로 살아온 이 시대의 진정한 장인의 손이 아닐 수 없다. 마순관 명장은 고령토 생산지로 유명한 용인 백암면 고안리에서 태어났다. 자연스럽게 흙을 가지고 놀던 어린시절부터 이미 도예가의 길은 예견돼 있었다. 그가 본격적으로 도자기를 빚기 시작한 것은 군대 제대 후 부터였다. 고향 마을에 돌아와 보니 우리나라 백자의 일인자인 한익환 선생이 공방을 하고 있었다. 하얀 색이어서 백자라고 할 수 있을까. 한익환 선생은 신비로운 흰색을 표현하고 있었다. 단순하게 하얀색이 아닌,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오묘한 백색의 미를 발하고 있는 한익환 선생의 백자에 자신도 모르게 이끌렸다. 마순관 명장은 자연스럽게 백자로 입문했다. 태어나면서부터 흙을 빚기 좋아했던 마순관 명장은 하면할수록 겉잡을 수 없이 도자기의 매력에 점점 더 빠져들었다. “표현이 무궁무진 한 게 황홀했어요. 표현의 자유가 엄청났거든요. 묘한 매력에 강하게 이끌렸습니다. 도자기에
23년 간 손 바느질 ‘조각보’ 외길 인생 “정교하고 한없이 넓어 지루할 틈 없어” 올해 ‘클래식 블루’ 바다 색 매력에 빠져 [용인신문] “우리나라의 규방 공예는 단아하고 얌전합니다. 전통의 느낌을 계속 유지하면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내 임무는 전통을 살려서 후세대로 계승하는 것입니다.”용인문화원 부설 규방공예연구소 변인자 소장은 조각보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절제의 미라고 강조하면서 전통 손바느질을 이어가고 있다. 한땀한땀 정성스럽게 바느질 땀을 뜨는 가운데 그녀는 무념무상의 세계, 무아지경의 세계를 경험한다. 전통 보자기, 조각보는 원래 옛 조상들이 한복을 만들다 남은 자투리 천을 이용해서 만들었던 생활 공예품이다. 알록달록한 자투리천의 한계 내에서만 작업이 이뤄졌기 때문에 색과 질감과 세련미가 떨어졌다. 그러나 요새는 과거와는 달리 헝겊의 색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고 천의 재료도 많아졌기 때문에 창작의 세계가 넓고 세련돼졌다. 품격 있는 멋스러움 때문에 보자기보다는 발이나 액자 등 인테리어용품으로 각광을 받는다. 천의 색과 질감과 두께에다 문양의 형태까지 가미되면 창조의 세계가 실로 무궁무진한 게 규방공예다. 23년간 한시도 손에서 바느질을 놓은
[용인신문] “기억의 몽타주 작업을 통해 수몰된 어비리 마을의 풍경을 재현하고 싶습니다.” 어비리의 잊혀진 기억을 복원하라. 어비리 기억 프로젝트. 만약 이런 기획이 성사된다면 거대한 어비리저수지(이동저수지) 수면 아래 가라앉은 어비리 마을의 실체를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말만 들어도 얼마나 흥분되는가. 현재 어떤 현실적 계획도, 추진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지만 어비리 마을 재생의 꿈이 이뤄진다면 용인의 대단한 문화적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간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일을 생각해낸 사람은 조두호 문화재생기획가다. 그는 문화인류학 박사이자 수원미술전시관 학예연구팀장을 지냈고 수원시어린이미술체험관 총괄기획, 수원시 생태미술관 총괄기획, 서울, 안양, 군포, 양주 등의 문화재생 프로젝트를 다수 총괄 기획했다. 현재는 포천의 문화재생 기획 총감독을 수행 중에 있다. 그는 2016년에 처인구 이동읍 어비리 저수지 뚝방 바로 아래에 있는 밭을 사서 아트스페이스 어비움을 짓고 둥지를 틀었다. 미술관인 아트스페이스 운영을 위해 바로 옆에다 갤러리 카페 어비움을 지어 그 수익금으로 미술관을 운영하고 있다. 전적으로 사비로 문화공간을 유지하고 있다. 문화인류학자인 조 대표는
[용인신문] 사진작가 한향순씨의 작품은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시공의 스케일이 남다르다. 대 자연의 웅장함과 태고적 신비가 어우러져 벅찬 감동을 주는가 하면, 자연속에 숨어있는 원시종족의 삶은 인문학적 사유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녀의 사진은 깊고 폭 넓다. 그녀에게 사진은 단순한 대상의 재현이 아니다. 대상에 메시지를 입혀 재해석한다고 할까. 아름다우면서도 메시지를 담고 있는 사진. 때론 수필처럼 사진을 읽는 묘미를 준다. 사실 그녀는 사진 찍기 오래전부터 수필가로 활동해온 중진 수필가다. 79년 여성동아에 논픽션이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글쓰기를 시작했다. 한국일보문화센터에서 제대로 수필작법을 배우기도 했다. 그녀는 자아를 부풀리고 수사에 치중하는 글쓰기를 지양해 늘 자아성찰을 담아내는 철학적이고 인문학적인 글쓰기를 해왔다. 수필에 메시지를 담아내던 솜씨는 사진 찍기에 반영돼 남들보다 수월하게 메시지가 투영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그녀는 글의 힘으로 사진을 찍었고, 사진의 힘으로 수필을 써내려갔다. 그녀에게 사진은 언어였다. 그녀는 사진과 수필을 넘나들며 대상을 의미화 시키는 작업에 열정을 쏟았다. 그녀는 2008년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2007년
아름다운 전통·문양·조화로운 색감·화사한 꽃 조화 화폭에 행복 가득 부모들, 딸에게 ‘예단 선물’ 인기 [용인신문] “삶 자체가 그림이잖아요. 삶에는 고뇌도 있어야 하지만 행복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림으로 행복을 표현할 수도 있고, 고뇌를 표현할 수도 있지만 난 행복을 그리고 싶어요.” 서양화가 김영란씨의 작품은 기분 좋아지는 설레임이 가득한 그림이다. 혹자는 감성이 솟구친다고 말한다.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그림. 그녀의 작품은 조선왕실의 장신구, 한복, 그리고 규방공예 등에서 빌어 온 아름다운 전통의 문양과 조화로운 색감으로 충만하다. 거기에 그녀가 30여년을 그려온 화사한 꽃 그림이 한데 어우러져 부귀와 영예가 가득하다. 복을 부르는 그림. 최근 그녀의 그림은 혼사를 앞둔 딸에게 주는 부모의 예단 선물로 인기가 높다. 기업체에서도 그녀의 그림을 찾는 일이 많다. 누구나 그림을 보면 소장 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만드는 그림. 그녀는 처음에 꽃을 그렸는데 차츰 전통문양의 아름다움에 빠져들었다. 들꽃화가로 불리던 그녀는 어느덧 조각보, 골무, 댕기, 한복과 같은 우리의 전통문화를 그림에 배치해 나가기 시작했다. 요새 그녀는 우리의 전통문화와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