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용인 출신인 안정구(1828~1881) 선생이 조선말 국정에 참여한 다양한 계층의 주요 인물 27인으로부터 받은 32통의 편지 희귀본이 144년 만에 그의 증손자인 안재식 작가에 의해 한글 번역으로 발간됐다.
이번 ‘조선말 사대부 27인의 편지, 우경 안정구 선생 간찰집’(학자원)은 당시의 시대상과 생활사를 반영하고 있어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또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격변의 시기를 거치면서도 원형 그대로 보존해 출간된 사실도 높게 평가받고 있다.
이 책은 안정구 선생이 충주영장으로 재직하던 1879년 6월부터 1880년 6월까지 받은 32통의 친필 편지를 한지 양면에 배접해 서첩으로 엮었다. 서첩 표구는 35폭 병풍 모양으로 접었을 때 두께는 3cm, 크기는 가로 17cm, 세로 29.7cm, 펼쳤을 때 길이 595cm다.
안정구 선생은 본관이 죽산으로 안향 선생의 후손이며 죽산안씨 대교공파종중의 중시조인 대교공신손의 14세 손이다. 25세에 식년시 무과 급제후 인차외만호, 사천현감, 부호군을 거쳐 정3품 당상관 통정대부에 오르고, 1879년에 충주영장 관직을 제수 받았다. 1880년 종2품 오위장에 이어 평안북도 삭주 부사로 있을 때 대홍수가 발생, 수습 과정에서 54세에 순직하자 나라에서 생가가 있는 용인 백암면 용천리 선영으로 운구 예장했다. 백암 용천마을은 죽산안씨 세거지며 집성촌과 선영이 있는 명문가다.
충주영장은 중앙에서 파견한 정3품 당상관으로 충주목사와 동급이었다. 충주, 제천, 단양, 괴산, 음성 등 8개군을 관장하는 사령관급 최고 지휘관이다.
이 책은 간찰문(초서·행서) 서체의 원형 그대로 게재해 예술성을 살린 것이 특징이다. 탈초 한자에 한글로 독음을 달아 한문 공부에 도움을 줬다. 간찰집에 등장하는 인물의 프로필이 기록됐고, 주석을 상세히 달아 낱말이나 문장의 뜻을 쉽게 풀이했다.
친필 편지 27인은 흥친왕 이재면을 비롯해 충정공 민영환, 영의정 김병국, 대제학 민태호로부터 유생 심능호, 기사장 정약풍 등 철종과 고종 시대를 살았던 유생부터 영의정에 이르는 다양한 계층을 포괄하고 있다.
안정구 선생이 받은 이들 편지 가운데 시대상을 반영하는 내용들이 눈길을 끈다.
민영환은 “조카가 못낸 세금을 그의 삼촌에게 대신 내라고 하는 것은 부당하니 바로잡아줄 것”을 요청했고, 금군별장 허습은 “상주인 처지에 초(燭)를 구하기 매우 어렵다”고 해 딱한 사정을 볼 수 있다. 흥친왕 이재면은 “왕세자 이척(훗날 순종)이 천연두에 걸렸다가 회복된 소식”을 전하고 있고, 형조판서 홍재현은 “왕대비를 10여년 모시며 명을 전달하던 정 지사가 아랫사람에게 치욕을 당했으니 그 분함을 풀어달라”고 부탁하는 내용도 있다. 또 포도대장 김기석은 “이웃 마을 임 상서 어른의 집안 사정을 전하며 독촉을 늦춰 체면을 살려달라”는 청탁도 나온다.
편저자인 안 작가는 “조선말 사대부들의 유려한 필치와 당시 생활상, 꾸밈없는 시대상황, 벼슬아치들의 청탁과 처세 등 민낯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생활사 연구와 인물 탐구에 중요한 자료”라고 말했다.
안재식 작가는 시인이며 동화작가, 작사가다. 한국녹색문학회장을 역임했고, 한국아동문화상, 대한아동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