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새시대 담아낸 ‘도자 산실’ 베일 벗는다

  • 등록 2025.04.07 09:4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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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CAL FOCUS 용인 서리 고려백자 요지

 

 

 

 

 

 

 

용인신문 | 처인구 이동읍 서리 산23-11번지에 있는 ‘용인 서리 고려백자 요지’는 국내에서 가장 중요한 가마 유적이다. 서리 고려백자 요지는 지난 1984년~88년까지 호암미술관이 3차례 발굴조사를 하여 1989년 국가지정문화유산(사적329호)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그 전까지 이 가마 유적은 천 년간 잊혀져 있었고 다른 지자체들이 도자 문화를 부흥시키는 동안 용인에서는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어 사람들의 머릿 속에 용인이 도자 생산의 근거지였다는 인식이 자리잡을 수 없는 여건이었다.

 

늦게나마 용인시가 사적 지정 27년 만인 지난 2015년~2016년에 1차 종합정비계획을 세워 토지매입과 발굴조사를 추진하면서 그 진면모가 속속 드러남에 따라 이곳에 대한 활용 필요성이 급격히 대두되고 있는 상황이다.

 

재발굴조사 귀추 주목

오랜 시간, 철제 울타리로 둘러진 좁은 구역만 문화유산으로 보호되고 있던 상황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가마 주변의 공방 등 건물지를 포함한 구역까지 발굴 조사하기 위해 넓은 면적의 보호구역을 지정한 후 토지매입과 4차, 5차 발굴조사를 진행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현재 관람객 편의를 위해 주차장과 임시홍보관을 조성하여 가마의 유래와 발굴조사 경과에 대해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고 시기별로 대표적인 유물을 선별해 전시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가장 중요한 구역인 가마부와 퇴적구에 대한 재발굴조사에 착수하여 그 결과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용인시가 재발굴조사에 돌입한 이유는 여러 차례 가마를 보수 및 중수하면서 중첩된 가마가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 중첩 양상을 정밀하게 확인하기 위해서다. 아울러 오랜 세월에 걸쳐 부산물이 쌓인 퇴적구릉의 토층을 정확하게 조사하려는 목적이다.

 

현재 발굴조사 성과가 속속 발표되면서 서리 고려백자 요지에 대한 학계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오는 6월에는 용인시와 한국중세고고학회, 서경문화유산연구원이 함께 서리 고려백자 요지의 학술적 가치에 대한 학술대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그동안 서리 고려백자 요지의 가치는 학계에서는 이미 잘 알려져 있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고려 정부가 국가적 차원에서 조성을 주도한 초기 도자(청자, 백자) 생산 단지라는 점, △국가 제례용 자기를 생산한 곳이었다는 점, △전축요(벽돌가마)와 토축요(진흙가마)가 모두 확인되어 그 변화상을 알 수 있다는 점, △초기에는 청자 생산의 비율이 높다가 점차 백자 생산의 비중이 월등히 높아져 고려백자 생산이 주를 이루었다는 점, △가마의 길이가 국내 최장이라는 점, △한 지점의 가마를 최장기간 사용했고 그로 인해 거대한 퇴적 구릉이 생성되었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국가 주도 형성된 가마

서리 백자요지는 고려 전기인 10세기 초반에 국가가 주도해 형성된 가마다. 당시 중국 월주요에서만 사용하는 자기 생산 도구가 이곳에서 발견돼 중국의 최신 자기 생산기술을 도입했음을 증명하고 있다.

 

김대순 용인시 학예연구사는 “고려 초기에 중국의 5대 10국 중 오월의 월주요에서 기술이 들어왔음이 확실함을 증명하는 유물이 발견됐습니다. 4차 발굴조사에서 월주요에서만 사용하는 ‘점권’이라는 도구가 이곳 서리 고려백자 요지에서 출토되었습니다. 점권은 자기를 구울 때 굽 아래에 받치는 동그란 고리형 받침입니다. 이는 분명히 월주에서 장인들이 넘어와서 이곳에서 자기를 구우면서 고려 사람들한테 기술을 전수를 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중국은 국가적으로 불안한 때였고, 고려는 나라를 세우고 새로운 정권에 대한 정당성 부여를 위해 새로운 문물을 들여올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국가적으로 움직인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려의 입장에서 자기는 ‘새로운 시대의 그릇’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용인 고려 왕실 제기 생산

지난 2021년 4차 발굴조사 과정에서 왕실 제기가 다수 발견돼 국가 제례에 사용된 용인 왕실 제기 생산 체제를 파악할 수 있게 됐다. 당시 건물지 외곽 구덩이 한 곳에서 보(寶·벼와 조를 담는 네모난 형태의 그릇)와 궤(籄·기장을 담는 둥근 형태의 그릇) 등 30~40cm 규모의 왕실 제기가 20여 점 이상 출토됐는데, 이처럼 양호한 상태의 제기가 다량으로 출토된 사례는 용인 서리 고려백자요지가 처음이다.

 

또 이곳은 국내 최초로 확인된 전축요(塼築窯, 벽돌가마)이다. 또 길이가 약 83m인 국내 최대 규모의 가마터다.

 

초기에는 전축요를 축조해 운영하고, 이후 토축요(진흙가마)를 축조해 운영한 시기적 변화상을 보여주고 있는 서리 가마터는 현재 발굴조사를 통해 83미터나 되는 규모에 대한 비밀이 벗겨질지 궁금증을 모으고 있다. 보통 가마 길이가 20~40m인 점과 달리 이곳은 특이하게도 길이가 약 83m로 국내 최대 규모를 가지고 있다.

 

이와 함께 보통 가마의 사용 연한이 50년인 것과 달리, 이곳 서리 백자요지는 150년 동안 사용된 가마라는 사실이다.

 

김 학예연구사는 “주변에 땔감도 떨어지고 흙도 떨어지면 옮겨서 하게 되죠. 그런데 여기는 한 군데서 이토록 오래 한 거죠. 되게 특이한 겁니다”라고 설명한다.

 

실제 가마 양측에 높이 6~7m에 이르는 거대한 요업 부산물인 갑발 등으로 이뤄진 퇴적 구릉이 거대하게 쌓여있다. 이는 용인 이외의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독보적인 규모다.

 

이같은 사실은 한 지점에서 약 150년 간 요업을 이어 왔기 때문에 가능한 규모라고 할 수 있다. 이 퇴적 구릉이 고려 초~중기의 자기 생산의 역사를 모두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도자사 연구의 시간적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는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곧 구릉에 대한 정밀 조사도 실시할 계획이다.

 

이번 정밀 재발굴조사를 통해 여러 궁금증이 풀리고 용인 고려 왕실 제기의 제작과 납품 과정과 서리 유적의 역사적 의미가 새롭게 인식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2차 종합정비계획까지 완료돼 공원화가 완료되면 거대한 도자유적의 면모가 세상에 널리 알려질 것으로 기대된다.

박숙현 기자 yongince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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