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그녀…예술의 설계자

  • 등록 2006.11.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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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칠줄 모르는 미술의 열정’
미술계 거목들과 교류…고(故) 백남준 선생과의 우정
Close-up/ 김 윤 순 한국미술관장

   
 
김윤순(75) 한국미술관장은 40여년의 삶을 미술과 함께 걸어온 우리나라 현대미술계의 산증인이다.

김 관장은 비전공자이면서도 미술 전공자 이상 가는 안목과 식견을 겸비하고서 국립현대미술관의 현대미술관회 상임이사와 현대미술아카데미를 개설 운영하는 등 우리나라 미술 애호가와 미술인구 저변 확대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우리나라 미술계의 거목들과의 교류는 물론 작고한 세계적인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과의 오랜 만남과 그의 아내 구보다 시케코와의 우정을 간직하고 있기도 한 그녀는 지금 용인 마북동에 위치한 한국미술관 관장으로 있으면서 지칠 줄 모르는 청년의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체질적으로 타고난 ‘미술’사랑
김윤순은 함경남도 함흥 출신이다. 1.4 후퇴 때 월남해 중앙대 예술대학에 편입해서 문학을 전공했다.
어쩌면 김윤순의 미술 인생은 오빠로부터 비롯됐는지 모른다. 동경음대에 다니던 오빠가 방학 때 선물로 가져오는 화가의 그림책과 엽서는 김윤순을 매료시켰다.

중대를 졸업하고 여유 있는 집안의 남편을 만나 결혼한 김윤순은 미술에 대한 막연한 사랑을 구체화 시키게 된다. 서울공대 화공과 출신인 남편은 학회 등의 일로 외국에 나가면서 미술관련 서적 등을 꾸준히 사다 줬다. 공부하기 좋아하고 보는 것 좋아하는 그녀는 그에 만족하지 않고 직접 외국서적을 파는 충무로의 서점을 찾아 미술책을 사서 봤다.

“그림을 체질적으로 좋아했어요. 보는 눈도 있었구요. 화가들의 스토리도 많이 읽었죠.”
그러다가 결정적인 계기가 찾아온다. 첫 아이를 명문 사립학교인 계성초등학교에 입학시키면서 서울미대출신 교수와 화가들을 학부모의 입장에서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 것이다. 그는 그때부터 본격적인 미술 공부와 미술안목을 키웠다. 김남조씨의 남편으로 서울대 미대학장을 지낸 조각가 김세중, 동양화가 서세옥 등 굴지의 화가들과 가깝게 교류하면서 김윤순은 남산동에 저택을 짓고 콜렉션을 시작했다. 그리고 서세옥으로부터 그림 이론을 배우면서 본격적인 미술 공부를 시작했다.

“지인들에게도 미술 작품을 권하게 됐는데 그때 내가 남들보다 더 많이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열심히 공부 했죠.” 그녀는 그때부터 미술에 조예가 깊은 여사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그가 1981년 국립현대미술관에 처음 개설된 현대미술아카데미의 초대 상임이사가 됐을 때 미술계에서는 비전공자가 임명된 부분에 대해 놀라워 했다. 적어도 서울대 미대 출신이 맡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 멤버십 후원 제도인 현대미술관회도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이나 보스톤 뮤지엄에서 보고는 관장한테 건의해 1978년부터 도입됐다. 미술관회 역시 상임이사를 맡았다.

현대미술아카데미의 산증인
올해로 25주년을 맞는 현대미술아카데미. 1만 명이 넘는 수강자를 배출한 우리나라 대표적인 교양 강좌로 권위를 지키게 한 교육의 바탕에는 김윤순이 처음 세운 원칙이 자리하고 있다. 결코 결석을 용납하지 않았고 강의 시작 5분이 지나면 강의실 문을 잠궜으며 수강 노트도 검사 했다. 제대로 수강을 하면서 필기를 한 것인지를 검사하는 필기 검사는 당시 큐레이터였던 오광수(전 국립현대미술관장·미술평론가)씨 한테 맡겼다.

직접 커리큘럼과 강사진을 정하는 김윤순은 강사를 함부로 정하는 법이 없었다. 강사를 정하기 위해 대학 강의실을 찾아가 일일이 청강을 했고, 미술아카데미 교육도 빠짐없이 수강하면서 강사의 재선정 여부를 판단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25년 동안 이어진 모든 강좌를 한번도 거르는 법 없이 들었으니 어떤 미대 졸업생도 김윤순보다 더 잘 알지 못한다. 그가 기초를 잡은 현대미술아카데미 대부분의 강좌가 대학원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현대미술아카데미는 수강자의 면면으로도 유명했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부인 홍라희(호암미술관장), 전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 부인 정희자, 고 S K 최종현 회장 부인 고 박계희(워커힐 미술관 관장) 등 상류층 부인들을 확보했다. 상류층 부인들이 포진됐다는 소문이 나면서 150명을 뽑는 강좌가 5대 1의 경쟁을 보이면서 모 장관 부인과 모 언론사 사장 부인 등은 남편의 빽을 써가면서까지 수강하려고 했을 정도다.

김윤순은 1983년 가회동에 한국미술관을 개관했다. 84년 현대미술아카데미 상임이사를 그만두고 그때부터 본격적인 한국미술관 미술아카데미 시대를 열게 된다. 현대미술관은 이사로만 남아 있다가 지난해 고문이 됐다. 민간 미술관인 한국미술관 아카데미 역시 쟁쟁한 인사들로 강사진을 구성했다.

첫 강의가 작고한 삼불 김원룡 서울대 교수의 한국미술사였다. 상류층 부인이 많이 수강한 강의였는데 어느 날 김 교수가 강의 도중 갑자기 뒷자리로 이동해 인사를 했다. 수강생들의 시선이 모인 그 자리에는 당시 김상협 국무총리 부인인 김인숙 여사가 앉아 있었다. 그 후 서울대 박물관장을 지낸 안휘준 교수와 이종상 화백이 차례로 한국미술사 강의를 맡아 호평을 받았고 신영훈씨는 창덕궁에서 고건축 현장 강의를 진행해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
“문인화 실기반을 맡은 이종상 화백은 아주 철저한 분이었어요. 나는 바쁜 사람이다. 유한마담들하고 놀러온 사람 아니라면서 시험까지 봤어요.”

한중일 서예계의 일인자로 꼽히는 여초 김응현 선생도 서예 지도를 했다. 홍라희, 박계희씨 등은 10년 동안 수강을 했다.

용인미술사를 다시 쓰고 있는 한국미술관
백자 김익영, 분청 일인자 윤광조도 모두 한국미술관에서 교육했다. 정양모 국립박물관장은 당시 경주박물관장에 발령받은 가운데도 일주일에 한번씩 꼭 서울에 올라와 강의했다.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의 부인이었던 배인순 전 동아갤러리 관장,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맏며느리인 고 이양자씨 등 수많은 저명인사들이 한국미술관 미술아카데미를 거쳐 갔다. 한국미술관 미술아카데미는 23년간 단 한번의 결강도 없었다. 개인의 힘으로 이뤄낸 크나큰 업적이 아닐 수 없다.

1994년 서울 가회동에서 용인 마북동으로 옮겨온 한국미술관은 수준 높은 전시와 미술아카데미를 통해 용인의 새로운 미술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백남준씨와 84년부터 오랜 교분을 가져온 김윤순은 마북동 한국미술관에서 제1회 광주비엔날레를 마치고 백남준을 포함한 참여 작가들과 함께 파티를 개최하기도 했다.

“백남준씨가 96년 쓰러졌을 때 병원에 누워있으면서 나를 찾았어요. 내가 백남준을 병원에서 가장 마지막에 본 사람이지요. 그 와중에도 누구누구를 만나라며 챙겨줬어요.”
백남준 부인 구보다 시케코는 올해 한국미술관을 방문한 자리에서 경기도박물관 옆에 짓고 있는 백남준 미술관 준공과 함께 자신의 미술 전시를 한국미술관에서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렇게 미술을 좋아하면서도 직접 미술을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한 가지 일에 깊이 빠져드는 성격상 미술을 하느라 다른 일을 전혀 할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고 답한다. 그가 운영하는 한국미술관은 건축가 우경국씨가 설계한 1000평 규모의 작지만 큰 미술관이다. 한국미술관은 김환기, 권진규, 노은님, 박노수, 박생광, 서세옥, 이경성, 이종상, 이우환, 오세창, 이상범, 변관식, 김기창, 장욱진, 김봉태, 황규백, 김기림 등 우리나라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망라해 소장하고 있다.

용인 한국미술관에서는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특별상을 수상한 이불씨의 퍼포먼스를 비롯해 조각가 윤영자, 보리밭 작가 이숙자, 김원숙, 차우희, 노은님, 정경연, 박영숙 등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작가들이 작품을 선보였고 지난 9월에는 ‘조영남과 용인사람들 10년 전’이 열리기도 했다.

김윤순 관장은 그의 미술인생을 정리하면서 세계미술관 기행, 작은 미술관 이야기 등의 책을 펴냈고 2004년에는 한국박물관협회에서 주는 상으로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최순우를 비롯 석주선 등이 수상한 자랑스런 박물관인상을 수상했다. “힘든 데서 벗어나는 날은 죽는 날일 겁니다.”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온 김윤순 관장은 여전히 열정적인 삶으로 존경받고 있다.
박숙현 기자 europa@yongi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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