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한일 강제병합 100년과 광복65주년과 6.25전쟁 60주년을 맞는 해다. 역사는 당시의 생활문화를 돌아봄으로서 알 수 있다. 모현면 서○○씨의 집에서 보관중인 우마차면허증 등 흥미로운 4점의 역사자료를 통해 당시를 반추해 보려고 한다. 6.25전쟁이나 해방전후사의 역사가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아 있어 실명을 사용하지 않았음을 이해 바란다. <편집자주>
■ 보험증서(1932년)
일제 말기 조선총독부 간이보험 및 민영 생명보험 가입자는 1222만9000여명으로, 당시 총인구의 47.2%에 달할 정도였다. 이에 따른 피해액은 1945년 해방 당시 기준으로 총 5억8500만원. 60년간의 물가상승률 및 현재의 화폐가치 등을 종합 고려하면, 무려 58조5000억원으로 추산되는 천문학적 금액이다. 그러나 정부는 지난 1965년 한일협정에서, 국민의 사적재산권을 일방적으로 포기시키고, 1975년 미온적인 개인보상으로 유야무야 처리해 버린 바 있다. 위 보험증서도 만기가 소화27년(서기 1952)년으로 되어 있어 재산피해를 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 전쟁포로우편카드(1945년)
壹千九百四拾五年 八月貳拾九日 小子 徐○○ ○上
1945년 8월 29일에 쓰여진 이 전쟁포로우편카드(Prisoner of war post cad)는 태평양전쟁에 일본군으로 징집되어 미국에서 포로생활을 한 모현면 徐○○씨가 전쟁이 끝나 부모님께 귀국을 알리는 내용이다. 전란중에 부모님의 안부는 어떠했는지를 묻고 미국의 후덕으로 잘지내고 곧 귀국하겠다는 내용이다.
■ 대한청년단원증(1949년)
대한청년단은 여순10.19사건 이후 군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가운데 남한 내 확실한 반공세력인 청년단체들을 통합하여 군경 보조역할을 맡기기 위해 설치된 준군사단체이다. 대한청년단은 호국군에 뒤이어 설치된 청년방위대의 산파역을 했고 또 전쟁 중에는 중공군의 개입에 따라 전선이 불리하게 된 상태에서 국민방위군 창설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 차량등록증(195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