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조시대 달마가 중국에 건너와 선종(禪宗)과 달마상법을 후세에 전한다. 이른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이다. 후당(後唐)때 삼베옷을 입고 지내던 마의(衣)가 제자 진박(陳搏)에게 달마조사가 남긴 상학(學)을 화로상법(火爐相法)으로 전한다.
강호 고수들만이 할수 있다는 그 가르침에는 책도 붓도 종이도 없다. 스승은 말이 없어도 제자는 가슴으로 배우고 귀로 듣고 몸으로 외운다. 조선의 석봉 한호가 금강산 일초거사에게 붓글씨를 배운 것을 끝으로 화로상법의 가르침은 이 땅에서 사라졌다.
백범 김구가 안중근 아버지께 논어 맹자를 배울 때 화로상법을 익혔다는 구전이 있으나 기록은 없다. 바꾸어 말하면 더 이상 목숨 걸고 가르치는 스승도 전 생애를 걸고 배우는 제자도 없어졌다는 얘기다.
제자가 이해를 못하면 활활 타오르는 화로에 스승은 검지를 들어 글을 쓴다. 뜨거운 화로 속에 스승의 손이 타는 냄새가 동굴 안을 가득 메운다. 놀란 제자는 당혹스러워하며 스승 손을 빼려하자 스승은 침묵으로 일갈, “왜 손가락 타는 게 아깝더냐?” 라는 말을 내함(內含)한다.
교육은 가르침이 아니다. 건곤일척(乾坤一擲)의 가르침이란 이를 두고 한말이다.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이 관상학의 바이블이라는 마의상법이다. 마의상법을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는 하나다. ‘앞에 오는 범은 속여도 뒤따라오는 팔자는 못 속인다’ 가 그것이다. 쉽게 말해서 얼굴에 칼 대지 말라는 얘기다.
옛사람은 ‘신체발부 수지부모’라는 이름으로 몸에 성형을 금기시 했다. 너희가 염려한다고 해서 키를 한자나 더하게 할 수 있느냐.(눅12:25)라며 예수도 이에 동의한다. 얼굴에 칼 대면 관상이 바뀌고 태어날 때 가져온 관상이 아니면 50대 후반 부터 그 인생 딱 두 글자로 압축된다. 작살(作殺)이 그것이다. 스스로 죽음을 만든다는 작살 말이다.
사람의 얼굴에는 다섯 개의 크고 작은 집이 있다. 오관(五官)이 그것이다. 오관중 하나가 무너진 사람이 여민이다. 여민(與民)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절명엔 두 가지 설이 있다. 눈에 칼 댄 것과 풍수가 관상을 극하는 것. 여민의 죽음은 한국 풍수지리와 관상학의 영원한 미제사건이다.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 명지하라 하늘이 사람을 만들 땐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