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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 질 법도 할 만큼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애니메이션 덕분인지 요즘 중학교 어린 학생들조차도 하니를 알고, 임춘애도 안다.
물론 만화 속 주인공 하니가 임춘애를 모델로 하지는 않았지만 당시 방송 시기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마치 만화 주인공처럼 여겨졌다.
지난 86 아시안게임에서 육상 사상 첫 3관왕을 차지했던 한국 육상의 영웅 임춘애씨가 마라토너 이봉주씨와 함께 오는 4월 26일(토) 용인종합운동장에서 열리는 용인마라톤 대회 홍보대사로 시민과 함께 달린다.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 요즘 3남매의 어머니로 살아가고 있는 그녀를 용인 죽전에서 만났다.
수지로 내려와 용인시민으로 산 지 벌써 13년째다.
짧은 커트머리에 깡말랐던 17세 소녀는 오간데 없고, 미모의 얼굴에 훤칠한 키, 멋진 외모로 변신한 중년 여성이 눈앞에 있다. 말이 중년이지 도저히 중년이라고 할 수 없는 동안 외모다.
모녀가 방송에 출연한 후 화제를 몰고 왔던 미모의 딸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튀어나올밖에.
길거리 캐스팅도 종종 될 정도로 예쁜 딸 이야기에 신이 난(?) 임 선수는 “요즘은 라면 이야기 안하고 딸 이야기들만 한다”며 지수가 자신의 눈을 닮았다고 자랑도 덧붙였다.
이야기를 구수하니 재밌게 하는 그녀는 3관왕 이후 오랜 세월 그녀를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니던 라면 소녀에 대한 오해도 별것 아닌 듯 대수롭지 않게 털어놨다.
라면 먹고 운동했다고 해서 헝그리 정신의 대명사로 등극했던 임춘애 아니던가.
자신이 직접 인터뷰를 한 것도 아니고, 당시 코치가 열악한 육상 환경을 강조 하느라 학교에서 간식으로 라면을 먹고 달린다고 했던 것이 그만 영원한 라면 소녀가 탄생하는 순간이 됐다.
아시안 게임과 관련한 그녀에 대한 화제는 더 있다. 짧은 머리에 여성적 성숙이 덜 됐던 당시의 외모 때문에 남자 선수라는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결국 염색체 검사를 두 번씩이나 해서 성판별을 해야 했다. 요즘 자신과 같은 오해에 싸여있는 박은성 선수한테 격려를 부탁하는 인터뷰가 종종 들어온다며 그럴 때마다 “그게 뭐 별거냐. 나중에 애 낳고 살아가는 모습 보면 다들 알텐데 뭘 그러냐”고 털털하게 대답 한다고 한다.
그녀는 성장기에 너무 혹독한 훈련을 했기에 골반에 실금이 가고 대퇴골두가 제대로 성장하지 않는 등의 이유로 통증이 매우 심했다. 88올림픽을 마치고 이화여대 3학년 재학 중 결국 은퇴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그때도 국민들은 먹고 살만하니 그만둔다는 식의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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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다 추억이 돼 버린 그때 그 시절 웃지 못할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싶다.
요즘은 큰 딸 지수 아래로 쌍둥이 형제도 어느 정도 커서 점차 사회 활동에 관심을 갖고 있다.
그녀는 대한육상경기연맹 여성위원으로서 후배 선수들을 격려하는 등 스포츠계의 맏 선배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녀는 앞으로 여자 지도자로 활동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지난 3월 초부터는 송파구청에서 마련해 준 새봄맞이 ‘임춘애 달리기 교실’에 나가서 꿈나무들을 지도하고 있다. 일주에 두 번 정도는 자신의 건강을 위해 자신만의 달리기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반드시 준비 운동으로 몸을 풀고 뛰어야 부상을 막을 수 있습니다. 또 자세가 바르지 않아도 몸에 무리가 올 수 있으니 바른 자세가 중요합니다.”
이번 용인마라톤대회 출전자들을 위해 한마디 부탁하니 그녀는 달리는 자세와 워밍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일단 달리게 되면 내장 기능이 좋아져 속병이 없어지고 피부도 고와지니 폼이 좀 좋지 않더라도 꼭 시작하라”고 당부한다.
800미터, 1500미터, 3000미터 중장거리 선수로서 스피드와 지구력을 동시에 겸비했던 임춘애 선수. 왕년의 화려했던 신화를 미래 꿈나무에게 심어줄 수 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