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 유교적 이상정치를 현실에 구현하려는 개혁을 시도하다 시대를 앞서간 정암 조광조 선생의 위패가 모셔있는 심곡서원이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은 지난달 25일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호인 용인 심곡서원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 예고했다.
‘용인 심곡서원’은 조선 중종 때 사림파의 영수였던 정암 조광조(1482~1519년)를 주향(主享)으로 하는 서원이다.
용인은 조광조가 부친의 시묘(侍墓)살이를 한 곳이자 조광조의 묘소가 있는 지역으로, 1605년 그의 묘소 인근에 사우(祠宇)가 조성됐다.
이 사우가 조선 효종 원년(1649)에 ‘심곡(深谷)’이라는 이름과 현판, 토지, 노비 등을 받으면서, 사우를 현 위치로 옮기고 강당(講堂) 등을 중창한 것이 현재의 심곡서원이다.
강당이 전면에 위치하고, 사우가 뒤쪽에 배치된 전학후묘(前學後廟) 형식을 갖춘 심곡서원은 조선 시대 서원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심곡서원은 1871년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시 조광조를 모신 서원 중 유일하게 훼손되지 않고, 현재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어 가치가 크다.
사우와 강당은 각각 1636년과 1657년 작성된 상량문(上樑文, 건물을 새로 짓거나 고친 내력을 적은 글)이 최근 발견되었으며, 우암 송시열이 지은 심곡서원 강당기(講堂記, 강당 건축을 기념하여 지은 기문 / 1673년)를 비롯해 △심곡서원 학규(學規, 서원 등에서 독자적으로 정하여 지키고자 한 규칙 / 1747년) △숙종 대왕 어제(御製, 임금이 지은 글 / 1740년) 등이 전하고 있어 심곡서원의 역사와 내력을 알 수 있다.
심곡서원은 그동안 이 같은 역사적 가치에도 불구, 지역사회로부터 조명 받지 못해 왔다. 그러나 심곡서원이 위치한 수지지역 한선교 국회의원이 정암 선생의 유교적 현실정치를 위한 개혁시도 등을 재조명하며 관심이 되살아났다.
특히 한 의원은 지난 2012년부터 정암 선생을 본받기 위한 정암문화제 ‘큰선비 조광조’를 비롯해 학생들의 방학기관을 활용, 서예·예절 교실 등을 운영해 왔다.
한선교 의원실 관계자는 “정암 선생은 사회 의식이 강한 인물로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뜻을 갖추고 있다“며 “이번 문화재 지정이 용인시의 문화 위상을 높이고, 시민의 문화적 자부심을 높이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30일간의 예고 기간을 통해 의견을 수렴한 후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지정 여부를 최종적으로 확정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