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인신문 | 오는 6월 3일 실시되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8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거리에는 예비후보들의 명함이 뿌려지고 있지만, 정작 이들이 뛰어야 할 ‘운동장’인 선거구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어느 동네가 내 선거구인지, 내가 투표해야 할 후보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초유의 사태가 반복되고 있다. 민주주의의 축제가 되어야 할 선거가 국회의 직무 유기로 인해 ‘깜깜이 선거’라는 조롱 섞인 오명을 뒤집어썼다.
공직선거법이 정한 선거구 획정 시한은 이미 지난해 12월 5일이었다. 법이 정한 약속을 국회가 스스로 어긴 지 벌써 3개월이 지났다. 이번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는 지방선거 163일 전에야 겨우 구성되었고, ‘역대 최악’이라는 부끄러운 기록을 세웠다. 그마저도 여야의 극한 대치로 사실상 가동이 중단된 상태다.
중앙 정치권의 갈등이 지방자치를 인질로 삼는 행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번엔 그 정도가 심각하다. 중앙 정계의 힘겨루기에 지방선거가 부속물처럼 취급받고 있는 셈이다. 이는 입법 기관인 국회가 스스로 법을 어기는 것을 넘어, 국민의 참정권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위다.
특히 용인시의 상황은 전국 어느 곳보다 엄중하다. 용인은 인구 유입이 가파른 대한민국 대표 대도시다. 지난 총선 당시 처인구를 제외한 기흥·수지구의 대대적인 선거구 조정이 있었다. 국회의원 선거구가 바뀌면 연쇄적으로 광역 및 기초의원 선거구 조정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지금 용인의 출마 예정자들은 행정동 하나가 옆 동네로 넘어가느냐 마느냐를 두고 피를 말리는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다. 헌법재판소가 결정한 인구 편차 기준(3:1)을 고려할 때, 용인시는 당연히 의원 정수 증원을 논의해야 한다. 그러나 정개특위의 공전으로 인해 증원 여부조차 결정되지 않으면서, 시민의 목소리를 대변할 의원 정수는 제자리걸음인 ‘대표성 실종’ 사태가 현실화되고 있다.
선거구 획정 지연은 단순히 행정적 문제를 넘어 공정한 경쟁의 룰을 파괴한다. 가장 큰 피해는 정치 신인들이다. 이미 조직과 인지도를 갖춘 현역들에게는 획정 지연이 기득권을 지키는 방패막이가 된다. 반면, 지역을 위해 봉사하겠다며 새로 뛰어든 신인들은 명함을 돌릴 구역조차 확정되지 않아 유권자에게 이름 석 자 알릴 기회조차 박탈당하고 있다.
어느 동네가 내 선거구인지도 모른 채 표를 달라고 하는 후보와, 누구를 검증해야 할지 모르는 유권자가 벌이는 이 기이한 현상의 책임은 전적으로 국회에 있다. 정치 세대교체를 가로막고 기득권의 담장을 높이는 국회의 게으름이 민주주의를 고사시키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선거일이 임박해 이뤄질 ‘졸속 처리’다. 시한에 쫓기다 보면 지리적 여건이나 생활권은 뒷전으로 밀리고, 오로지 인구수 맞추기와 정당의 이해득실에 따른 ‘게리맨더링’이 횡행할 가능성이 크다. 지연된 정의가 정의가 아니듯, 지연된 획정은 결국 왜곡된 민의를 낳을 뿐이다.
과거에도 선거를 불과 며칠 앞두고 생활권이 전혀 다른 지역이 하나의 선거구로 묶이는 기형적인 사례가 빈번했다. 이는 지역 공동체의 화합을 저해하고 유권자의 정치 불신을 심화시킨다. 국회가 정쟁을 이유로 시간을 끄는 사이, 풀뿌리 민주주의의 골든타임은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다.
지방선거는 중앙 정치의 대리전이 아니다. 우리 마을의 교육 환경을 개선하고, 교통 문제를 해결하며, 주민의 복지를 살필 일꾼을 뽑는 삶의 현장이다. 국회 정개특위는 당장 문을 열고 선거구 획정안을 확정해야 한다.
유권자에게는 후보자를 검증할 시간을, 후보자에게는 공정하게 경쟁할 환경을 보장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최소한 원칙이다. 국회의 직무 유기로 인해 이번 지방선거가 유권자의 외면을 받는 ‘그들만의 리그’가 된다면, 그 모든 책임은 여야 정치권이 져야 할 것이다. 국민은 더 이상 국회의 무능과 오만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