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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 김종경의 포커스 인(Focus In) 용인

‘의령남씨 세장지’ 사라질 것인가? 부활할 것인가?

 

용인신문 | 용인 처인구 남사읍 창3리 사람들은 예로부터 이곳을 ‘꽃골(화곡)’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불렀다. 이 마을은 지금 대한민국은 물론 전 세계 반도체 업계의 이목이 쏠리는 거대한 변화의 한복판에 서 있다. 국내 최대 규모로 조성될 삼성반도체 국가첨단산업단지의 핵심 시설인 팹(Fab) 1기 예정지가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최첨단 산업의 심장이 용인에 들어선다는 사실은 분명 가슴 벅찬 일이다. 그런데 거대한 개발로 인해 무려 600년의 세월 동안 꽃골을 지켜온 의령남씨(宜寧南氏) 세장지(世葬地)는 이제 사라질 처지가 됐다.

 

용인신문사 주최로 열린 학술대회를 통해서도 확인되었지만 이곳은 단순한 문중의 선산이 아니다. 조선 개국공신 남은(南誾, 1354~1398)을 비롯해 당대 정치를 이끌었던 인물들의 숨결이 배어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나아가 섬세한 필치로 조선 제일의 나비 그림을 남긴 남계우(南啓宇, 1811~1888)의 예술혼이 잠들어 있으며, 한국 고전소설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남영로(南永魯, 1810~1857)의 『옥루몽(玉樓夢)』이 잉태된 인문학적 토양이기도 하다. 14세기부터 17세기에 이르는 묘제 양식과 당대 최고 수준의 석물 조각이 고스란히 남아 있으니, 그 자체로 거대한 야외 역사 박물관이나 다름없다.

 

국가적 대의명분 앞에서 문화유산의 ‘원위치 보존’만을 고집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하지만 물리적인 공간을 내어준다고 해서 그 안에 담긴 600년의 시간과 인문학적 가치마저 잊혀지거나 사라지도록 방관할 수 또한 없는 일이다. 따라서 사라져가는 것들을 기록으로 꼼꼼히 남기고, 나아가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창조적 계승을 해야하는 후손들의 숙제가 남게 됐다. 

 

이번에 열린  ‘화곡 의령남씨 묘역의 가치 재조명’ 학술대회는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음을 밝혀둔다. 공론의 장에서는 정밀 발굴조사를 통한 ‘디지털 기록 보존’은 물론, 흩어질 위기에 처한 장묘 문화를 한데 모은 ‘분묘유적공원’ 조성이라는 매우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대안들이 제시됐다.

 

그중에서도 무엇보다 학술대회 참석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옥루몽』과 남계우의 예술 세계를 융합한 복합 문화 공간 건립 제안이었다. 기자 또한 시를 쓰는 문학 전공자로서, 흙 속에 묻혀 있던 고전이 현대적인 문학관으로 재탄생해 시민들과 교감하는 풍경은 상상만해도 가슴이 뛰었다.

 

과거의 역사와 문화를 잊고 철근과 콘크리트로만 쌓아 올린 첨단 도시는 삭막한 모래성일 뿐이다. 차가운 반도체 칩의 이면에 600년 역사의 향기와 문학적 온기를 불어넣는 일이야말로 개발의 광풍 속에서도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용인의 미래 가치다. 꽃골의 문화유산이 국가산단 개발로 사장되지 않고, 새로운 문화를 꽃피우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이유다.  

 

선조들의 영면처를 내어주어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에서도 대안 모색에 발 벗고 나서 준 의령남씨 강무공파 남장희 회장님과 찬성공파 남명우 회장님을 비롯한 문중 임원진께 깊은 경의와 감사를 전한다. 이제 용인시와 사업 시행사가 그 진정성에 지혜롭게 화답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