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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명문가 묘역’ 잠든 역사·문화 깨우자

LOCAL FOCUS_용인 화곡 의령남씨 묘역의 가치 재조명 학술대회

 

삼성반도체 국가첨단산업단지 조성 구역 편입 전면 이전 불가피
향후 정밀 발굴조사 데이터 확보·디지털 아카이브 구축 등 필요

 

용인신문 | 용인시 처인구 남사읍 창3리 화곡(꽃골) 마을 일대가 삼성반도체 국가첨단산업단지 조성 구역에 편입됨에 따라, 600여 년간 이 지역에 자리해 온 의령남씨(宜寧南氏) 세장지(世葬地)의 전면적인 이전이 불가피해졌다. 이에 용인신문사는 지난 22일 용인시청 에이스홀에서 ‘용인 화곡 의령남씨 묘역의 가치 재조명’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유진선 용인시의회 의장과 임영선 용인시 문화예술국장을 비롯해 시민 400여 명이 참석, 지역 문화유산 보존 방안에 대한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 주요 역사적 인물들 영면처

삼성반도체 국가첨단산업단지 내 팹(Fab) 1기 건립 예정지인 처인구 남사읍 창리 소재 ‘화곡 의령남씨 세장지’는 조선 시대를 관통하는 주요 역사적 인물들의 영면처다. 조선 개국 1등 공신에 책록되어 태조 이성계 묘정에 배향된 남은(南誾)의 묘소를 필두로,  영의정을 지낸 약천 남구만의 부친 남일성(南一星)의 묘역이 자리하고 있다. 아울러 조선 미술사에서 나비 그림의 대가로 꼽히는 일호 남계우(南啓宇), 한국 고전소설의 백미 『옥루몽(玉樓夢)』의 저자 남영로(南永魯) 등 당대 정치·문학·예술을 주도한 인물들이 안장되어 있어, 조선 인물사 및 문화사 연구의 핵심 대상지로 평가받는다.

 

■ 생애와 업적 입체적 조명

이날 학술대회는 두 건의 기조발표로 시작되었다. 먼저 제1발제를 맡은 성당제 박사(전 규장각한국학연구원)가 ‘화곡에 잠든 의령남씨 인물들의 행적’을 주제로 묘역 내 역사적 인물들의 생애와 업적을 입체적으로 조명했다. 이어 제2발제를 맡은 김성태 박사(아주대학교)는 화곡 묘역의 고고학적·미술사적 가치를 실증적 사료를 바탕으로 분석했다. 발표에 따르면, 이곳은 소론의 영수 약천 남구만 일문 9세대, 약 250년에 걸친 묘제 양식의 변천을 한 공간에서 살필 수 있는 조선후기 소론계 가문 묘장 제도의 귀중한 표본 유적이다. 특히 강무공 남은의 묘소는 조선 묘제가 제도화되기 이전인 14세기 사대부 무덤의 전형을 유지하고 있다. 부인 강릉김씨의 묘를 남편 무덤 아래에 조성하는 부하형(附下形) 배치를 띠고 있으며, 양 무덤의 조성 시기가 30년 이상 차이가 나 조선 전기 장례 관습의 변화를 추적할 수 있다.

 

현재 남은 묘 봉분 일부가 훼손되었으나 친형 남재(南在)의 묘제 양식을 참고해 원형 복원이 가능하다. 국내 14세기 사대부 무덤 중 표준 복원이 가능한 사례는 학술적 희소성이 매우 높다.

또한, 남은 묘역 내 현존하는 고려 후기 양식의 동자석 크기 문인석은 희소성이 매우 높은 석물로 원형이 그대로 보존돼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영의정에 추증된 남일성의 묘역은 17세기 석물 조각의 정수를 보여준다. 문인석, 망주석, 향로석 등은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당대 왕실 종친의 묘역 석물과 견주어도 조각 수법이 매우 정교하고 우수한 당대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되었다.

 

 

■ 묘역 지형·출토 유물 위치 등 데이터화 필요

산업단지 조성 절차가 본격화됨에 따라, 발제자들은 화곡 일대가 개발 구역으로 확정된 현실적 여건을 고려하여 실효성 있는 매장 문화유산 보존 방안을 논의했다.

 

김 박사는 남은과 남일성 묘소가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요건을 충분히 갖추었으나, 원위치 보존을 고수할 경우 발생할 경제적 매몰 비용과 정책적 한계를 지적했다. 대안으로는 정식 발굴조사에 준하는 정밀 학술조사를 선행하고, 그 결과를 매장문화유산 발굴조사보고서 수준으로 발간하는 ‘기록 보존’ 방식이 제시되었다.

 

이는 3D 스캐닝과 정밀 측량 등 첨단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묘역 지형과 석물 배치, 출토 유물 위치 등을 수치화된 데이터로 영구 기록하는 작업이다. 아울러 이전이 불가피한 주요 분묘와 석물들을 특정 부지에 모아 ‘용인분묘유적공원’을 조성하는 방안도 심도 있게 논의되었다. 이는 조선 시대 장묘 문화를 대중에게 알리는 전시 및 교육 공간이자, 대규모 토목 공사 과정에서 출토되는 역사적 유산을 체계적으로 수집·관리하는 선진적인 정책 모델로 주목받았다.

 

■ 옥루몽·남계우 성취 ‘문화 공간’ 조성해야

종합토론에서는 남기혁 군산대 교수가 좌장을 맡은 가운데, 발제자인 성당제·김성태 박사를 비롯해 강혜선(성신여대), 김종욱(서울대), 김양진(경희대), 김용국(아시아문화연구원장), 류준경(성신여대), 박학래(군산대), , 서길덕(도원문화유산연구원장), 이기대(고려대) 교수 등 8명이 종합토론자로 나서 화곡 묘역이 품은 인문학적 무형 자산을 현대적 문화 시설로 구현하는 방안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이 자리에서 김종욱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일본 교토부 우지시의 ‘겐지 모노가타리 뮤지엄’ 성공 사례를 소개했다. 이 박물관은 11세기 고전소설 『겐지 이야기』를 디오라마(축소 모형), 영상 미디어, 향기 체험 등 공감각적 기법으로 재현해 관람객의 호응을 얻고 있다.

 

토론 참석자들은 한국 고전소설의 걸작인 남영로의 『옥루몽』 역시 이러한 실감형 전시 기법을 적용하기에 탁월한 서사적 매력을 지녔다고 입을 모았다. 나아가 『옥루몽』의 문학적 가치와 남계우의 미술적 성취를 결합한 복합 문화 공간을 조성한다면, 향후 첨단산업단지 배후 도시의 품격을 높이는 핵심 문화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는 구체적인 비전이 제시되었다. 무엇보다 대규모 국가 개발 사업에 직면한 화곡 묘역의 역사적 중량감을 객관적 사료로 입증하고, 합리적인 매장 문화유산 보존 방안을 모색하는 공론의 장이었다는 평가다.

 

묘역의 물리적 이전이 기정사실화된 만큼, 향후 정밀 발굴조사를 통한 데이터 확보,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 나아가 분묘유적공원 및 문학관 조성 등 실질적인 후속 조치가 이어져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이를 실현하려면 용인특례시와 사업 시행사(LH·삼성전자), 그리고 유적 연고자인 의령남씨 문중 간의 긴밀한 실무 협의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이번 학술대회 대회장인 박숙현 용인신문사 회장은 대회사를 통해 “국가 첨단산업단지 조성이라는 거대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600년 역사를 품은 화곡 묘역의 인문학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보존과 개발의 상생 대안을 공론화하게 되어 매우 뜻깊다”며 참석자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