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한말 용인지역의 뜨거웠던 민족의식 성장을 재조명하는 학술의 장이 열렸다. 용인문화원과 용인학연구소는 지난 10일 용인시청 국제회의실에서 ‘한말 용인지역 민족의식의 성장과 민족운동’을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번 세미나는 그간 가려져 있던 용인 지역 동학운동의 실체와 이름 없는 의병들의 투쟁, 근대 교육 및 국채보상운동 등을 학문적으로 처음 조명해 학문적 토대와 함께 실체를 규명했다. 이와함께 민영환, 이한응의 자격순국 의의를 다룬 뜻깊은 자리였다.
성주현(경희대 평생교육원)은 제1주제 ‘경기지역 동학농민혁명과 용인’에서 “경기지역 동학농민군의 활동은 호남지역보다 늦은 9월 이후에 집중되었고, 경기남부지역에만 머물지 않고 북부까지 확대되는 가운데, 용인의 동학농민군 활동은 직곡과 김량, 서이면 도촌 등지에서 활발히 전개됐다”고 밝혔다. 또 용인의 동학농민군 활동은 죽산부사 이두황에 의해 진압되었고, 동학 지도자 이용익, 정용전, 이삼준, 이주영, 주성칠 등이 희생됐다“고 했다. 또 ”용인의 동학농민군이 충청도 회인읍에서도 활동했음이 확인돼 지역을 넘어서는 활동 상황을 보여준다“고 했다.
한편, 동학이 1905년 천도교로 전환된 이후 용인교구가 설립돼 종교활동으로 유지됐다고 했다.
제2주제 ‘대한제국기 용인지역의 의병전쟁과 무명의병’을 발표한 심철기(한남대)는 ”용인지역 의병전쟁을 이동성, 분산성, 연합성, 지속성을 동시에 지닌 복합적 항쟁 구조로 이해할 수 있으며, 이런 구조 속에서 다수의 무명의병이 형성됐다“며 무명의병 형성 배경을 밝혔다. 즉 ”소규모 부대 중심 활동, 빈번한 이동과 재편성, 체포 이후 기록 단절, 일본군 기록의 집단적 처리 방식 등은 개별 의병의 이름과 행적이 기록되지 못하게 하는 조건으로 작용했다“고 했다. 따라서 ”무명의병은 단순한 예외적 존재가 아니라 의병전쟁의 구조 속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했다“고 밝혔다.
제3주제인 ‘한말 용인지역 근대교육과 국채보상운동’을 발표한 김형목(사단법인 선인역사문화원)은 ”용인지역 근대교육운동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을사늑약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며 ”1907년까지 8개교가 설립됐다“고 밝혔다.
또 용인군 국채보상운동의 신호탄은 명륜학교 학생에 의해서였고, 읍내를 비롯해 수여면 13개 동리, 양지군, 죽산지역 등 용인곳곳으로 번졌고, 여성들도 참여했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