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수 대표 53년 요리인생 결정체
내공 가득한 볶음밥도 입맛 호사
테이블 단 두 개 찐맛집 아쉬운 폐점
용인신문 | 용인 처인구 김량장동, 중앙시장 뒷골목엔 ‘콩짜장’이라는 간판을 내건 ‘향리반점’이 있다. 식당 이름보다는 메뉴 이름으로 더 크게 기억되는 곳. 허름한 단독주택 한켠의 4평 남짓한 홀에 테이블이라곤 단 두 개, 벽면을 따라 길게 놓인 테이블까지 합쳐봐야 고작 열 명 남짓 앉을 수 있는 이 작은 노포(老鋪)가 4월 26일, 18년의 세월을 뒤로하고 문을 닫는다.
이곳의 주인장 정병수(63) 씨는 인생의 대부분을 중식당의 뜨거운 불꽃 앞에서 보냈다. 그의 요리 인생은 5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0살 어린 나이에 보육원을 뛰쳐나와 배고픔을 견디기 위해 선택한 길은 중국집 설거지였다. 1974년, 짜장면 한 그릇이 300원 하던 시절부터 그는 중국집에서 잔뼈가 굵었다. 나이들어 서울에서 몇 차례 사업 실패로 재산을 탕진하기도 했지만, 다시 일어선 곳이 바로 이곳 김량장동이었다.
향리반점의 주력 메뉴는 이름도 생소한 ‘콩짜장’이다. 남들과 똑같은 것은 하기 싫어 독학으로 개발했다는 이 짜장면에는 고기가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 대신 콩을 주재료로 하여 담백하고 고소한 맛을 낸다. 고기를 먹지 않는 외국인(이주 노동자)들이나 담백한 맛을 찾는 서민들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보양식이 없었다.
맛만큼이나 놀라운 것은 가격이다. 18년 전 3000원으로 시작한 짜장면은 10여년 전 딱 한 번 1000원을 올린 뒤 문을 닫는 날까지 4000원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고물가 시대에 짜장면 한 그릇이 최소 7000~8000원을 호가하는 것에 비하면 절반 수준이다. 배달도 없이 오직 홀 장사만 고집해 온 그는 “나를 찾아주는 손님들에게 은퇴할 때까지는 가격을 올리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했고,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어 다행”이라며 웃어 보였다.
인터뷰를 위해 찾은 날, 점심 식사를 마친 후였지만 예의상 정 사장이 직접 볶아낸 5000원짜리 볶음밥을 주문했다. 여느 중국집에서 흔히 보는 푸석한 쌀이 아니라 찰기가 도는 밥알이 입 안에서 정성스럽게 굴려졌다. 그 위에 툭 얹어진 계란 후라이와 향리반점의 자랑인 콩짜장 소스를 곁들여 한 입 먹어보니, 53년 공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입안 가득 느낄 수 있었다.
정 사장에게는 독특한 습관이 하나 있다. 계절에 상관없이 식사를 마치고 나가는 손님들에게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하는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들도 많이 오는데, 그들에게나 우리에게나 가장 기분 좋고 기억에 남는 공통 언어가 무엇일까 고민하다 시작한 인사”라고 그는 설명했다. 이 인사를 들으면 무더운 여름날에도 손님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그에게 가장 보람찼던 순간을 묻자, 옛 단골 학생들이 성인이 되어 찾아왔을 때를 꼽았다. 주머니 가벼운 학생 시절 콩짜장으로 배를 채우던 아이들이 이제는 변호사, 검사, 경찰이 되어 나타나 “사장님 덕분에 공부 열심히 해서 성공했다”며 배고팠던 시절의 고마움을 전할 때, 정 사장은 비로소 자신의 굴곡진 인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고 말한다.
이제 그는 무거운 일을 내려놓으려 한다. 쉬지 않고 일해온 탓에 몸은 여기저기 쇠약해졌고, 이제는 자신을 돌볼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앞으로 20년은 더 살 텐데, 이제는 좀 돌아보고 싶다”는 것이 그의 진심이다. 은퇴 후에는 그동안 가보지 못한 곳들을 여행하며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또한, 자신이 가진 기술과 마음을 나누기 위해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자원봉사 활동을 하며 제2의 인생을 설계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2026년 4월 26일, 김량장동 뒷골목의 작은 등불이었던 향리반점은 사라지지만, 정병수 사장이 건네던 따뜻한 “메리 크리스마스”의 온기는 그곳을 거쳐 간 수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노포의 마지막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정 사장의 앞날에 매일이 크리스마스 같은 축복이 가득하길 기원한다. <글/사진: 김종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