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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2 - 저출산 시대 극복을 위한 '서주태 원장의 건강칼럼'

잠 못 드는 남자들, 무너지는 정자

서주태 서주태비뇨의학과의원 대표원장(연세대 의대 졸업·전 대한생식의학회 회장·전 제일병원 병원장)

AI이미지

 

용인신문 | 혹시 ‘생활습관형 남성난임’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과거 남성불임은 주로 선천적 이상이나 호르몬 문제, 정계정맥류 같은 구조적 질환 중심으로 설명되곤 했다. 하지만 최근 난임 진료 현장에서는 조금 다른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특별한 질환은 없는데 정자 수가 감소하고, 운동성이 떨어지고, 정자 DNA 손상도가 높게 나오는 남성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공통적으로 무너진 생활패턴이 자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현대 남성들은 자신의 생식력을 지나치게 과신하는 경향이 있다. 여성에게는 “난소 나이가 중요하다”, “가임력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반복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몸은 밤을 새워도 괜찮다고 믿는다. 새벽 2~3시에 잠드는 생활,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습관, 과도한 카페인, 만성 스트레스, 수면 부족. 그런데 문제는 정자가 생각보다 훨씬 예민한 세포라는 점이다.

 

정자는 단순히 고환 안에서 자동 생산되는 존재가 아니다. 체온, 혈류, 호르몬, 산화스트레스, 생체리듬이 정교하게 맞물려야 건강하게 만들어진다. 특히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은 깊은 수면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수면 시간이 줄고 수면의 질이 떨어지면 테스토스테론 분비 역시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실제 일부 연구에서는 며칠간의 수면 제한만으로도 젊은 남성의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유의하게 감소한 결과가 보고되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수면 부족이 단순 피로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만성적으로 잠이 부족하면 코르티솔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이 증가하고, 몸속 염증 반응과 산화스트레스가 커진다. 정자는 이런 환경에 매우 취약하다. 특히 활성산소 증가는 정자 DNA 손상과 연결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정자의 질은 조용히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실제 필자의 진료실에서도 생활패턴이 심하게 무너진 사례들은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밤샘 근무가 반복되는 직장인, 교대근무자, 새벽까지 게임이나 영상 콘텐츠를 보는 남성들, 심한 코골이와 수면무호흡증을 가진 경우들이다. 이들은 종종 “몸은 건강하다”고 생각하지만, 정액검사 결과에서는 예상 밖의 수치가 나오기도 한다.

 

흥미로운 것은 사회 분위기다. 우리는 여전히 과로를 능력처럼 소비한다. “잠은 죽어서 자면 된다”는 말은 아직도 성실함처럼 포장된다. 하지만 생식의 관점에서 몸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인간의 생식 시스템은 생각보다 원시적이고 보수적이다. 몸이 지속적인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 상태를 감지하면 번식 기능부터 후순위로 돌리려는 경향이 있다. 생존이 우선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특히 남성들은 “정자는 계속 새로 만들어지니까 괜찮다”고 쉽게 말한다. 그러나 계속 생산된다는 것과 건강하게 생산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공장을 밤새 돌린다고 제품 품질까지 자동으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수면 부족 상태의 몸은 결국 산화된 몸에 가깝고, 정자는 그 산화스트레스에 매우 민감한 세포다.

 

물론 모든 남성난임이 생활습관 때문이라는 뜻은 아니다. 유전적 문제, 정계정맥류, 호르몬 이상, 비만, 흡연, 음주 같은 원인들은 여전히 중요하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제 남성불임 역시 생활 전체를 함께 봐야 하는 시대가 됐다는 점이다. 정자는 단순히 고환의 결과물이 아니라, 그 남자가 어떻게 먹고, 얼마나 자고, 어떤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생체 보고서에 가깝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