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우리를 살게 하는 힘, 적당한 스트레스
사람들은 흔히 스트레스를 인생의 적이라고 생각한다. 스트레스가 많으면 병이 생기고, 늙고, 우울해지고, 수명이 짧아진다고 믿는다. 실제로 만성 스트레스는 고혈압과 당뇨병, 우울증, 불안장애의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스트레스가 전혀 없는 삶을 꿈꾼다.
흥미로운 질문이 하나 있다. 정말 스트레스가 전혀 없는 삶이 인간에게 가장 좋은 삶일까.
생물학은 의외의 답을 내놓는다. 인간의 몸은 원래 적당한 자극과 긴장을 받도록 설계되어 있다. 근육은 운동이라는 스트레스를 받아야 강해진다. 뼈도 하중이라는 스트레스를 받아야 단단해진다. 면역계 역시 외부 자극을 경험해야 제대로 작동한다. 아무런 자극이 없는 환경은 오히려 신체 기능을 퇴화시킨다.
뇌도 마찬가지다.
최근 국내 연구진이 발표한 흥미로운 연구는 스트레스와 뇌의 관계를 새로운 시각에서 보여준다. DG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 유성운 교수 연구팀은 만성 스트레스 상황에서 뇌 해마의 신경줄기세포를 보호하는 유전자 p53의 역할을 규명했다.
p53은 원래 손상된 세포를 제거해 암을 막는 대표적인 '세포 사멸 유전자'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해마의 신경줄기세포에서는 오히려 세포를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만성 스트레스 환경에 놓인 생쥐를 관찰했다.
그 결과 p53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는 신경줄기세포가 보호됐지만, p53을 제거하면 신경줄기세포 사멸이 크게 증가했고 기억력 저하와 우울, 불안 행동도 심해졌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항암 후보물질인 RITA를 활용해 p53 기능을 유지하자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뇌세포가 보호되고 우울·불안 행동이 감소했다는 점이다.
이 연구가 말하는 핵심은 단순하지 않다. 스트레스 자체가 모든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인간의 뇌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복잡한 방어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물론 연구 결과가 "스트레스는 많을수록 좋다"는 뜻은 아니다. 만성적이고 통제 불가능한 스트레스는 분명히 위험하다. 문제는 스트레스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강도와 기간이다.
실제로 심리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인간의 수행 능력이 스트레스와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긴장이 너무 부족하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의욕도 사라진다.
반대로 스트레스가 지나치면 불안과 공포 때문에 능력이 무너진다. 그러나 적당한 긴장 상태에서는 집중력과 학습 능력, 문제 해결 능력이 가장 높아진다. 이를 흔히 '최적 스트레스 구간'이라고 부른다.
생각해 보면 우리 삶의 중요한 성장도 대부분 스트레스 속에서 이루어진다.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도, 사업을 시작하는 창업가도, 아이를 키우는 부모도 일정 수준의 부담과 긴장 속에서 성장한다. 아무런 걱정도, 도전도, 책임도 없는 삶은 편안할 수는 있어도 발전을 만들어내기는 어렵다.
현대인들이 종종 빠지는 함정은 스트레스를 완전히 제거하려는 데 있다. 하지만 인생은 원래 긴장과 이완의 반복으로 움직인다. 심장도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며 뛰고, 근육도 긴장과 휴식을 반복하며 강해진다.
뇌 역시 적절한 도전과 회복의 리듬 속에서 성장한다.
어쩌면 중요한 것은 스트레스가 없는 삶이 아니라 스트레스를 견디고 회복할 수 있는 힘일지 모른다. 인간은 유리처럼 깨지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적당한 압력 속에서 더욱 단단해지는 강철에 가깝다.
최근 DGIST 연구가 보여준 것처럼 우리 뇌는 스트레스 앞에서 무조건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방어 체계를 가동한다. 인간은 생각보다 훨씬 강인하게 설계된 생명체다.
그래서 오늘의 스트레스가 마냥 불행의 신호일 필요는 없다. 견딜 수 있는 수준의 긴장과 도전은 우리를 소모시키기보다 성장시키기도 한다. 문제는 스트레스가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것을 회복할 시간과 방법을 잃어버렸다는 데 있는지 모른다.
인간은 스트레스 때문에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적당한 스트레스가 있기에 살아남고, 배우고, 성장해 왔다. 인류의 역사 역시 편안함이 아니라 도전의 연속 속에서 만들어진 결과물이었다.
어쩌면 인간은 평생 스트레스를 없애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의미 있는 스트레스를 견디며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자식을 낳고 키우는 일도, 부모를 돌보는 일도, 생계를 책임지는 일도 결코 편안한 과정은 아니다. 우리는 늘 부담을 줄이고 싶어 하고, 걱정을 피하고 싶어 하며, 책임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우리를 아침에 일어나게 만드는 것도,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것도 결국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한 책임과 의무에서 비롯된 스트레스인 경우가 많다.
부모로서의 숙제, 자식으로서의 숙제,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서 감당해야 할 무게는 때로 버겁지만, 바로 그 긴장과 부담이 삶의 방향을 잃지 않게 붙들어 주는 힘이 되기도 한다. 어쩌면 인간을 끝까지 버티게 하는 것은 행복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감당하는 스트레스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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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이 기사는 DGIST 연구팀이 국제학술지 Autophagy에 발표한 연구 결과와 국내외 신경과학·정신의학 관련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 이미지: AI 생성 (ChatGPT, OpenAI) /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용 시각 자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