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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2 - 저출산 시대 극복을 위한 '서주태 원장의 건강칼럼'

숙제가 된 사랑, 뇌는 발기를 거부한다

서주태 서주태비뇨의학과의원 대표원장(연세대 의대 졸업·전 대한생식의학회 회장·전 제일병원 병원장)

본 이미지는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제작한 이미지입니다. 기사 내용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등장인물은 모두 가상의 인물이며 실제 인물·과 무관합니다.

 

용인신문 | “여보, 오늘 디데이야. 알지?”

 

많은 남성들에게 배란일은 아내의 말을 통해 알게 되는 일정이다. 그 순간부터 평범했던 하루는 조금 달라진다. 사랑하는 아내와의 시간이 아니라 반드시 결과를 내야 하는 중요한 과업처럼 느껴지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난임 치료를 받는 부부들 사이에는 ‘숙제 관계’라는 말이 있다. 임신 가능성이 높은 시기에 맞춰 계획적으로 성관계를 갖는 것을 의미한다. 자연임신을 시도하는 부부는 배란 초음파를 통해 시기를 예측한 뒤 관계를 권유받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인간의 성기능이 의지만으로 작동하는 기계가 아니라는 점이다. 남성의 발기는 혈관, 신경, 호르몬, 심리 상태가 동시에 작동해야 가능한 매우 복잡한 생리 현상이다. 특히 성적 흥분은 부교감신경이 우세할 때 가장 잘 일어난다. 반대로 긴장과 불안이 증가하면 교감신경이 활성화된다. 교감신경은 인간이 위험 상황에서 생존하기 위해 발달시킨 시스템이다. 쉽게 말해 뇌가 “지금은 번식보다 생존이 우선이다”라고 판단하는 상태다.

 

배란일이라는 사실 자체가 부담이 되는 순간 문제가 시작된다. “오늘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어떡하지”, “의사가 오늘 하라고 했다”는 생각은 남성의 뇌를 성적 흥분 상태가 아니라 시험 직전의 긴장 상태로 만든다.

 

실제 난임 치료 과정에서는 평소 성기능에 문제가 없던 남성이 배란일에만 발기가 잘 되지 않거나 사정이 어려워지는 경우를 종종 경험한다. 스포츠 경기에서 결정적 순간에 몸이 굳어지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남성의 성기능은 생각보다 뇌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스트레스가 증가하면 코르티솔 분비가 늘어나고 교감신경 긴장이 높아진다. 이 과정은 성욕 저하와 발기력 감소로 이어질 수 있으며, 반복될 경우 성관계 자체에 대한 부담감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장기적으로는 테스토스테론 분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새로운 환경이 이러한 긴장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여행지나 호텔, 평소와 다른 공간에서는 일상에서 반복되던 압박감이 줄어들고 뇌의 보상회로가 활성화된다. 새로운 경험에 대한 기대감은 도파민 분비를 증가시키는데, 도파민은 성적 동기와 성적 흥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신경전달물질이다.

 

그래서 일부 부부들은 집에서는 반복적으로 실패하다가 여행 중 자연임신에 성공하기도 한다. 물론 장소 자체가 임신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달라진 환경이 긴장을 완화하고 부부관계를 보다 자연스럽게 만들어 주는 것에 가깝다.

 

남성의 정액검사 수치가 평균보다 다소 낮더라도 지나친 압박은 오히려 역효과가 될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정자 수와 운동성을 중요한 지표로 평가하지만, 임신은 결국 정자와 난자만의 만남이 아니라 부부의 신체와 정신, 그리고 관계의 질이 함께 만들어내는 결과다.

 

난임 치료를 오래 해온 의사들이 “숙제인 줄 모르게 숙제하라”고 조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임신은 일정표대로 진행되는 프로젝트가 아니다. 때로는 배란일 계산보다 중요한 것이 부부가 서로를 부담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배란일의 하트 스티커를 보는 순간 사랑은 업무가 된다. 그리고 업무가 된 성관계는 설렘보다 긴장을 먼저 불러온다. 임신을 간절히 원할수록, 때로는 ‘임신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한 걸음 물러나는 여유가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