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인신문 | 올더스 헉슬리는 대중에게 『멋진 신세계』에 구현한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의 소설로 유명한 인물이다. 『멋진 신세계』는 독재정치가의 강력한 권력아래 물신 포드를 숭배한다. 이와 달리 『아일랜드』는 유토피아가 그려진다. 그곳은 독재도 없고, 독점기업도 없다. 차별도 없다.
팔라는 거의 모든 면에서 완벽한 곳이다. 그곳의 지도자들은 자신이 속한 공간이 지속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석유개발을 억제하고 절제된 삶을 영위한다. 그곳 사람들은 외부에 비해 노이로제나 심장질환이 현저히 낮다. 간호사들이 교육을 받는 과정에서 암송하는 시를 봐도 팔라는 위대한 곳임을 알 수 있다. “‘나’는 나를 구성하고 있는 많은 법칙들을 따르는 복합체입니다. ‘나의’ 존재는 화학적 불순물입니다. 한 가지 원인에서 일어나는 일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유일한 치료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소설에 그려진 팔라는 물질적 풍요보다는 인간의 안정과 행복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공간이다.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거의 완벽에 가깝게 이상적인 사회이기도 하다. 그런데 후반부로 갈수록 미심쩍은 면이 고개를 들며 이웃 나라 디파의 욕망으로부터 팔라가 무사할지 걱정이 짙어진다.
소설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할 만큼 소개할 장점이 많았던 팔라였다. 너무나 안정되었기 때문에 강력한 지도자도, 군비 확장도 필요 없었다. 그런데 지나친 이상이 오히려 현실 인식에 무뎌지게 만든 것은 아닐까? 1960년대 소설이지만 오늘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