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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맨 끝줄 소년'이 던지는 불편한 질문

글이 사람을 집어삼킬 때…글은 사람을 어디까지 지배할 수 있는가
심리 스릴러를 넘어 인간을 읽다... 글은 칼보다 깊게 사람을 찌른다

 

용인신문 | 좋은 글은 사람을 움직인다. 위대한 소설은 한 시대를 바꾸기도 한다. 그러나 넷플릭스 신작 '맨 끝줄 소년'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글은 사람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지배할 수도 있다는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이 작품은 살인이나 추격전으로 긴장감을 만드는 일반적인 스릴러가 아니다. 한 편의 과제, 한 줄의 문장, 그리고 그 문장을 읽는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삶을 파괴하는지를 차갑게 보여주는 심리 서스펜스다. 스페인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의 동명 희곡을 원작으로 한 작품은 한국적 정서와 대학이라는 공간을 입혀 새로운 이야기로 재탄생했다.

 

이야기의 출발은 단순하다. 실패한 작가이자 국문학과 교수 허문오는 학생들의 평범한 과제를 읽다가 강의실 맨 끝줄에 앉아 있던 공대생 이강의 글을 발견한다. 다른 학생들의 글은 모두 비슷했지만 이강의 글만은 달랐다. 다음 문장이 궁금했고,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게 만들었다. 작가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살아온 허문오는 자신이 평생 갈망했던 재능을 학생에게서 발견한다. 문제는 감탄이 곧 집착으로 변한다는 점이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점차 뒤틀리고, 교육은 통제를 잃으며, 문학은 현실을 침범하기 시작한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힘은 '범인이 누구인가'가 아니라 '인간은 왜 타인의 삶을 훔쳐보고 싶어 하는가'를 묻는 데 있다. 이강은 친구의 집을 관찰하고 그 가족의 일상을 글로 기록한다. 처음에는 관찰자였던 그는 점차 현실에 개입하고, 허문오는 그런 글을 읽으며 더 자극적인 이야기를 요구한다. 독자는 어느 순간 작가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작가에게 끌려가는 존재가 된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무너질수록 긴장은 더욱 커진다.

 

겉으로는 천재 학생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인 주인공은 허문오다. 그는 재능 없는 교수가 아니라 재능을 끝내 꽃피우지 못한 사람이다. 누구보다 문학을 사랑했지만 작가가 되지 못했고, 성공한 동기를 평생 질투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이강을 만난 순간 그의 감정은 존경보다 소유욕에 가까워진다. 천재를 키우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천재를 통해 자신의 실패를 보상받고 싶었던 것이다. 작품은 인간의 열등감이 얼마나 위험한 욕망으로 변할 수 있는지를 집요하게 따라간다.

 

배우들의 연기도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다. 최민식은 분노를 폭발시키기보다 침묵 속에서 무너지는 인물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글 한 줄에 흔들리고, 제자의 재능 앞에서 흔들리는 눈빛만으로도 허문오의 결핍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최현욱 역시 감정을 절제한 연기로 긴장감을 끌어올린다. 무표정한 얼굴과 차분한 말투는 오히려 상대를 압도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두 사람의 대결은 선과 악의 충돌이 아니라 결핍과 재능이 맞부딪히는 심리전이다.


'맨 끝줄 소년'이 지금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오는 이유는 우리가 이미 관찰의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만 열면 타인의 식탁을 보고, 여행을 보고, 가족을 보고, 일상을 본다. SNS는 모두를 관찰자로 만들었고 동시에 모두를 전시자로 만들었다. 작품은 바로 그 지점을 파고든다. 어디까지가 호기심이고 어디부터가 침해인가.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행위는 언제 폭력이 되는가. 작품 속 이강은 극단적인 사례이지만, 화면 밖의 우리는 얼마나 다를까.


원작이 품고 있는 철학적 질문도 여전히 유효하다. 문학은 현실을 모방하는가, 아니면 현실을 만들어내는가. 허문오는 학생의 글을 읽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자신의 삶이 그 글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결국 독자가 텍스트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가 독자를 소비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이 작품이 단순한 스릴러를 넘어 오래 여운을 남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 OTT 콘텐츠는 빠른 전개와 강한 자극을 앞세우는 작품이 많다. 그러나 '맨 끝줄 소년'은 속도보다 심리를, 사건보다 문장을 선택했다. 화려한 액션도, 피비린내 나는 범죄도 없다. 대신 한 줄의 문장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차분하고 집요하게 보여준다. 자극은 적지만 긴 여운은 훨씬 깊다.


결국 '맨 끝줄 소년'은 천재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누군가의 재능을 바라보는 인간의 욕망, 실패를 인정하지 못하는 자존심, 타인의 삶을 엿보고 싶어 하는 본능을 해부한 작품이다. 강의실 맨 끝줄에 앉은 한 학생은 단지 글을 썼을 뿐이다. 그러나 그 글은 한 교수의 삶을 흔들었고, 시청자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이야기를 읽고 있다고 믿지만, 어쩌면 가장 먼저 이야기 속에 읽히고 있는 존재는 우리 자신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