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학교 갈 시간이 다 됐는데 반찬이 마땅치 않으면 어머니는 늘 같은 메뉴를 내놓으셨다. 따뜻한 밥 위에 노릇하게 부친 달걀프라이 하나를 올리고, 간장 한 숟갈과 참기름 몇 방울을 떨어뜨려 쓱쓱 비벼주셨다.
“이거라도 먹고 가.”
그 한마디와 함께 내밀던 계란간장비빔밥은 우리 세대의 가장 흔한 아침 식사였다. 그때는 그저 형편이 어려워 먹는 음식쯤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영양학을 접하고 글을 쓰면서 문득 깨닫게 된다. 어머니들은 이미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균형 잡힌 아침 식사를 만들어주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밥으로 탄수화물을 채우고, 달걀로 양질의 단백질을 보충하며, 참기름으로 지방을 더했다. 여기에 김치 한 접시만 곁들여도 식이섬유와 비타민까지 보완되는 훌륭한 한 끼가 완성됐다. 이름도 없고 유행도 없던 '균형식'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균형보다 유행을 먹기 시작했다. 저탄수화물, 키토, 고단백, 간헐적 단식…. 새로운 식단이 등장할 때마다 탄수화물은 죄인이 됐다가, 지방은 악당이 됐다가, 다시 단백질이 영웅이 되는 일이 반복된다. 음식은 그대로인데 평가만 바뀐다.
최근에는 삶은 달걀이 그 중심에 섰다. 다이어트 열풍 속에서 아침을 달걀 두어 개로 대신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간편하고 단백질이 풍부한 데다 포만감이 오래 유지된다는 이유에서다. 온라인에서는 식욕을 억제하는 비만치료제에 빗대 '천연 위고비'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하지만 반대 주장도 만만치 않다. 달걀만 먹으면 탄수화물이 부족해 오전 내내 머리가 멍하고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점심 무렵 허기가 한꺼번에 몰려 결국 과식하게 된다는 경험담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어느새 달걀은 살을 빼주는 음식이면서 동시에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음식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다면 정말 달걀 아침은 뇌로 가는 연료를 끊는 식사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탄수화물은 분명 우리 몸과 뇌의 중요한 에너지원이다. 하지만 아침 한 끼에서 탄수화물을 먹지 않았다고 해서 뇌에 공급되는 포도당이 곧바로 바닥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몸은 생각보다 훨씬 정교하다. 간에 저장된 글리코겐을 분해해 혈당을 일정한 범위로 유지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전의 무기력함을 달걀 탓으로만 돌리기는 어렵다. 전날의 수면 상태, 아침 식사량 자체, 수분 섭취, 활동량 등을 먼저 살펴보는 것이 맞다. 사람의 몸은 인터넷 댓글처럼 단순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사실 사람들이 놓치는 것은 탄수화물이 아니라 ‘식사의 총량’이다. 삶은 달걀 한 개의 열량은 약 70㎉다. 두 개를 먹어도 140㎉ 남짓이다. 오전 7시에 이 정도만 먹고 출근하거나 학교에 가서 정오까지 다섯, 여섯 시간을 버틴다면 허기를 느끼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럽다. 많은 사람은 이를 탄수화물 부족으로 해석하지만, 실제 원인은 아침 식사량 자체가 지나치게 적었던 경우가 훨씬 많다. 문제는 달걀이 아니라 ‘달걀만’ 먹는 식사다. 영양학에서도 탄수화물을 하루 총섭취 열량의 50~65% 정도 섭취하도록 권고하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침 한 끼가 아니라 '하루 전체' 식단의 균형이다.
달걀이 ‘천연 위고비’라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달걀이 포만감을 주는 것은 맞지만, 비만치료제처럼 호르몬에 작용해 식욕을 억제하는 것은 아니다. 과체중 성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달걀과 토스트로 구성한 아침 식사를 한 사람들이 시리얼을 먹었을 때보다 점심 섭취량이 적고 허기도 덜 느꼈다는 결과가 있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달걀’이 아니라 ‘달걀과 토스트’였다. 단백질과 탄수화물이 함께 들어간 균형 잡힌 한 끼였기에 가능했던 결과다.
특히 운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오전 운동 강도가 높다면 연료가 되는 탄수화물을 함께 먹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삶은 달걀에 통밀빵 한 조각이나 바나나 하나 정도만 더해도 단백질과 탄수화물을 함께 보충할 수 있다. 건강은 탄수화물을 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탄수화물을 선택하는 데 있다.
우리는 너무 자주 한 가지 음식에 모든 기대를 건다. 어제는 귀리가 기적의 음식이었고, 오늘은 달걀이 위고비를 대신한다고 한다. 그러나 건강은 단 한 가지 음식이 만드는 결과가 아니다. 여러 영양소가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정상적으로 기능한다. 생각해 보면 어머니들은 영양학 논문을 읽지 않았어도 그 사실을 알고 계셨다. “계란 하나 더 먹어.” 그러면서도 꼭 한마디를 덧붙이셨다. “밥도 같이 먹어.”
그 짧은 말은 단순한 잔소리가 아니었다. 아이가 오전 내내 공부하고 뛰어놀 수 있도록 만든 생활의 과학이자, 탄수화물과 단백질, 지방을 고루 갖춘 균형 잡힌 식단이었다. 계란간장비빔밥은 가난했던 시절의 추억이 아니다.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몸이 필요로 하는 영양을 자연스럽게 채워주던 가장 현실적인 건강식이었다.
달걀은 우리를 배신한 적이 없다. 배신한 것은 한 가지 음식만 먹어도 살이 빠지고 건강해질 것이라 믿는 우리의 조급함이었다. 어쩌면 가장 현대적인 건강식은 새로운 슈퍼푸드가 아니라, 어머니가 건네주시던 그 소박한 계란간장비빔밥 한 그릇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오늘날 영양학이 다시 말하고 있는 ‘균형의 식탁’ 그 자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