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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주의 음식이야기 - 식탁 위의 오해와 진실

빨갛게 익을수록 몸도 웃는다

 

용인신문 | 여름이 되면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더워도 삼계탕 한 그릇을 뚝딱 비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밥 한 숟갈 넘기기도 힘들어 냉장고만 열었다 닫았다 하는 사람도 있다. 이상하게 입맛은 사라지고 찬 음료만 찾게 되는 계절이다.

 

하지만 끼니를 거를 수는 없다. 땀을 많이 흘리는 여름일수록 몸은 오히려 더 많은 영양소를 필요로 한다. 이럴 때 냉장고에서 가장 먼저 꺼내야 할 음식이 있다. 빨갛게 잘 익은 토마토다.

 

토마토는 참 신기한 식품이다. 과일처럼 생으로 먹어도 되고, 채소처럼 볶고 끓여도 된다. 샐러드가 되었다가 주스가 되고, 달걀과 만나면 훌륭한 한 끼가 되며, 파스타 소스로 변신하면 세계인이 사랑하는 음식이 된다. 이렇게 변신을 잘하는 식재료도 드물다.

 

유럽에는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유명한 속담이 있다.

 

"토마토가 빨갛게 익으면 의사의 얼굴은 파랗게 된다."

 

토마토를 많이 먹는 계절에는 병원을 찾는 사람이 줄어든다는 뜻이다. 다소 과장된 표현처럼 들리지만, 현대 영양학은 이 속담에 적지 않은 근거가 있다고 말한다.

 

토마토의 약 95%는 물이다. 그래서 여름철 갈증을 달래고 수분을 보충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런데 단순히 물만 많은 것이 아니다. 비타민 C와 칼륨, 식이섬유, 엽산, 비타민 K까지 골고루 들어 있다. 수분을 마시면서 영양까지 함께 먹는 셈이다.

 

게다가 칼로리도 놀랍도록 낮다. 중간 크기 토마토 한 개가 30kcal 안팎이다. 사과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배는 적당히 부르지만 칼로리 부담은 거의 없다. 그래서 다이어트 식단에서 토마토는 늘 단골손님이다.

 

토마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할 이름은 바로 라이코펜이다. 빨간색을 만드는 천연 색소이자 강력한 항산화 성분이다. 활성산소는 우리 몸을 조금씩 녹슬게 만든다. 혈관은 탄력을 잃고 피부는 주름이 생기며 세포는 손상된다. 라이코펜은 이런 산화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 도움을 주는 대표적인 성분이다.

 

그런데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놀라는 사실이 하나 있다.

 

토마토는 생으로 먹는 것보다 익혀 먹을 때 라이코펜 흡수가 훨씬 잘된다. 열을 가하면 세포벽이 부드러워지면서 라이코펜이 밖으로 더 쉽게 나온다. 흡수율은 생토마토보다 2~3배 높아질 수 있다.

 

여기에 올리브유를 조금 넣으면 더 좋다. 라이코펜은 지방과 함께 먹을 때 몸속 흡수가 더욱 잘된다. 지중해 사람들이 토마토소스에 올리브유를 듬뿍 넣어 먹는 이유가 단순히 맛 때문만은 아니다.

 

토마토는 피부도 좋아한다. 자외선이 강한 여름철에는 피부 속에서 활성산소가 많이 만들어진다. 라이코펜은 이런 산화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되는 성분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선크림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피부 건강도 식탁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식품이다.

 

혈관 역시 토마토를 반긴다. 토마토 속 칼륨은 몸속 나트륨 배출을 도와 혈압 관리에 도움이 된다. 여름에는 냉면이나 국물 음식처럼 짠 음식을 자주 먹게 되는데 토마토 한두 개가 균형을 맞추는 데 힘을 보탤 수 있다.

 

장도 토마토를 좋아한다. 수분과 식이섬유가 함께 들어 있어 장운동을 돕고 변비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비타민 K는 뼈 건강에, 엽산은 세포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작고 평범해 보이는 토마토 안에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영양소가 숨어 있는 셈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퀴즈 하나.

 

토마토는 채소일까, 과일일까?

 

식물학에서는 과일이다. 꽃이 진 뒤 씨를 품고 자라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리에서는 채소다. 샐러드와 볶음요리, 스튜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1893년 미국에서는 토마토를 채소로 볼지 과일로 볼지를 두고 법정 다툼까지 벌어졌다는 점이다. 당시 미국 대법원은 관세를 부과하는 기준에서는 '채소'로 보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식물학과 요리, 그리고 법률이 서로 다른 답을 내린 셈이다.

 

방울토마토와 큰 토마토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좋을까.

 

정답은 둘 다 좋다. 다만 방울토마토는 같은 무게 기준으로 비타민 C와 베타카로틴이 조금 더 많은 경우가 있고, 큰 토마토는 한 번에 먹기 쉬워 수분 보충에 유리하다. 중요한 것은 크기가 아니라 꾸준히 먹는 습관이다.

 

또 하나. 토마토는 냉장고에 오래 넣어두면 맛이 떨어질 수 있다. 너무 차가운 온도에서는 향을 만드는 성분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아직 덜 익었다면 실온에서 후숙한 뒤 먹고, 완전히 익었을 때 짧게 냉장 보관하는 편이 맛과 향을 살리는 데 도움이 된다.

 

케첩은 어떨까.

 

토마토가 들어 있으니 몸에 좋을 것 같지만, 대부분의 케첩에는 당분과 나트륨이 적지 않다. 물론 토마토를 가열해 만들기 때문에 라이코펜은 들어 있지만, 건강을 생각한다면 신선한 토마토나 토마토소스를 선택하는 편이 낫다.

 

최근에는 생식 건강 분야에서도 토마토가 주목받고 있다. 특히 라이코펜은 남성 정자를 산화 스트레스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에 대한 연구가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일부 연구에서는 정자의 운동성과 기능 개선 가능성이 제시됐지만 아직 치료 효과가 확립된 것은 아니다. 다만 토마토를 비롯한 채소와 과일이 풍부한 식단이 생식 건강과 심혈관 건강에 긍정적이라는 점은 여러 연구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토마토에도 주의할 점은 있다. 위산 역류가 심한 사람은 공복에 많이 먹으면 속이 쓰릴 수 있고, 만성 신장질환으로 칼륨 섭취를 제한해야 하는 경우에는 의료진과 상담하는 것이 좋다.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토마토 요리는 의외로 단순하다. 잘 익은 토마토를 큼직하게 썰어 올리브유를 한 바퀴 두르고 약간의 소금과 후추를 뿌린 뒤 달걀프라이 하나를 곁들이는 것이다. 여기에 바질 잎 몇 장만 올려도 근사한 여름 식사가 된다. 입맛이 없던 사람도 어느새 접시를 비우게 된다.

 

여름은 입맛을 빼앗는 계절이지만, 가장 좋은 식재료를 선물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냉장고 속 빨간 토마토는 그저 흔한 채소도, 평범한 과일도 아니다. 수분과 비타민, 식이섬유, 라이코펜까지 한 번에 담은 자연이 만든 영양 꾸러미다.

 

비싼 건강기능식품을 찾기 전에 시장에서 잘 익은 토마토 몇 개를 담아보자. 어쩌면 올여름 우리 몸이 가장 반가워할 보약은 약국이 아니라 채소 가게에 놓여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