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인공지능(AI) 산업의 경쟁축이 바뀌고 있다. 지금까지는 더 큰 모델, 더 높은 성능, 더 많은 반도체가 승부를 결정했다.
그러나 AI가 사람 대신 스스로 판단하고 업무를 수행하는 ‘AI 에이전트’ 시대로 접어들면서 진짜 경쟁력은 얼마나 적은 전력으로 같은 일을 해내느냐로 이동하고 있다.
최근 공개된 국내 연구는 이러한 변화를 수치로 보여준다. 대형언어모델(LLM)을 기반으로 외부 프로그램을 호출하고 여러 단계를 스스로 수행하는 AI 에이전트는 단순 생성형 AI보다 훨씬 많은 연산을 반복하며, 질문 한 건을 처리하는 데 가정용 냉장고를 8시간 이상 가동할 수 있는 수준의 전력을 사용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단순 질의응답 방식과 비교하면 전력 소비는 100배 이상 증가했다.
이 연구가 주목받는 이유는 숫자 자체보다 AI 산업이 맞이할 새로운 병목현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AI는 이제 질문에 답하는 수준을 넘어 문서를 읽고, 인터넷을 검색하고, 데이터를 분석하며, 여러 프로그램을 연결해 실제 업무를 수행한다.
겉으로는 몇 초 만에 끝나는 작업이지만 내부에서는 수십 차례의 추론과 외부 시스템 호출이 반복된다.
그 과정에서 그래픽처리장치(GPU)는 장시간 작동하고, 외부 도구가 응답하는 동안에도 서버는 대기 상태를 유지한다. AI가 똑똑해질수록 연산량과 전력 소비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구조다.
전문가들은 AI 산업이 더 이상 반도체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단계에 들어섰다고 진단한다.
과거 AI 경쟁은 누가 더 많은 GPU를 확보하느냐가 핵심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충분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발전설비와 송배전망, 열을 식히는 냉각기술, 데이터센터 운영 효율까지 모두 AI 경쟁력의 일부가 된다. 다시 말해 AI 산업의 핵심 인프라는 반도체에서 전력 시스템 전체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세계 주요 빅테크 기업들은 AI 모델 개발만큼이나 데이터센터 확보 경쟁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데이터센터는 이제 단순한 서버 건물이 아니라 전기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첨단 산업시설로 바뀌고 있다. AI 서비스가 늘어날수록 발전소와 변전소, 초고압 송전망 구축이 함께 요구되는 이유다.
이 변화는 산업 전반에도 새로운 성장 기회를 만들 것으로 전망된다.
가장 먼저 수혜가 예상되는 분야는 전력 산업이다. AI 시대에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곧 국가 경쟁력이 된다.
이에 따라 발전설비와 송배전 인프라, 에너지저장장치(ESS), 스마트그리드 등 전력 생태계 전반의 중요성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데이터센터 산업도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AI 에이전트는 기존보다 훨씬 긴 시간 GPU를 사용하기 때문에 초대형 AI 전용 데이터센터 수요가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동시에 서버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열을 처리하기 위한 액침냉각, 수냉식 냉각, 열관리 장비 시장 역시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도체 산업의 경쟁 방식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는 더 빠른 연산 성능이 핵심이었다면 앞으로는 같은 성능을 얼마나 적은 전력으로 구현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경쟁력이 된다.
AI 전용 반도체와 저전력 신경망처리장치(NPU), 주문형 반도체(ASIC), 차세대 광반도체 기술이 주목받는 이유다.
소프트웨어 역시 예외가 아니다. AI를 무작정 크게 만드는 시대는 끝나고, 적은 연산으로 동일한 결과를 내는 알고리즘과 경량화 기술, GPU 활용률을 극대화하는 시스템 최적화가 핵심 기술로 부상하고 있다.
전력 생산 방식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AI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할수록 안정적인 전력 공급원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원자력발전과 소형모듈원전(SMR), 재생에너지, 가스복합발전이 함께 활용되는 새로운 에너지 믹스 전략이 중요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결국 AI 혁명의 본질은 더 이상 ‘더 똑똑한 AI’를 만드는 경쟁이 아니다.
같은 일을 더 적은 전기로 처리하는 기술, 같은 전력으로 더 많은 AI를 운영하는 시스템,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국가 인프라가 새로운 경쟁력이 되고 있다.
19세기 산업혁명은 석탄이 움직였고, 20세기는 석유가 세계 경제를 이끌었다. 21세기 들어 반도체가 디지털 혁명의 핵심 자원이 됐다면, AI 에이전트 시대에는 전력이 그 자리를 이어받고 있다.
AI는 더 이상 소프트웨어 산업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발전소에서 데이터센터를 거쳐 반도체와 냉각기술, 전력망과 에너지 저장장치까지 연결되는 거대한 산업 생태계가 새롭게 형성되고 있다.
AI 시대의 승자는 가장 뛰어난 모델을 만든 기업이 아니라, 가장 효율적으로 전기를 쓰는 기술과 가장 안정적인 전력 인프라를 확보한 국가가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