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어릴 적에는 아무 생각 없이 읽었다. 흥부는 착한 사람이고, 놀부는 욕심 많은 사람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흥부전』을 다시 펼쳐보니 전혀 다른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흥부는 먹을 쌀도 없어 아이들과 함께 굶주리는데도 자식은 열두 남매나 된다.
반면 놀부는 기와집에 곳간이 넘치고 논밭과 재산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도 '놀부네 열두 남매'라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오늘의 시선으로 보면 흥부는 다산의 상징이고, 놀부는 적은 자녀를 둔 현대 부모의 모습과 묘하게 겹쳐 보인다.
물론 『흥부전』의 작가가 저출생을 염두에 두고 이런 설정을 했을 리는 없다. 하지만 고전은 시대가 바뀌면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다시 읽는 『흥부전』은 권선징악을 넘어 출산과 경제의 관계를 돌아보게 하는 사회학 교과서처럼 읽힌다.
오늘날의 상식으로는 흥부의 삶이 이해되지 않는다. 먹고살기도 힘든데 어떻게 아이를 열둘이나 키웠을까. 지금 같으면 "집도 없는데 애를 또 낳는다고?", "사교육비는 어떻게 감당하려고?"라는 말부터 들었을 것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너무도 익숙한 대화다.
그러나 흥부가 살던 시대에는 계산법이 달랐다. 농경사회에서 아이는 부모의 지갑을 비우는 존재가 아니라 집안을 일으키는 노동력이었다. 들에서 일하고 가축을 돌보며 부모의 노후를 책임질 가장 확실한 버팀목이었다. 먹을 입이 늘어나는 만큼 일할 손도 늘어났기에 흥부의 다산은 특별한 영웅담이 아니라 당시에는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삶의 풍경이었다.
산업화와 도시화는 이 공식을 완전히 뒤집었다. 아이는 더 이상 노동력이 아니라 부모 인생 최대의 프로젝트가 됐다. 산후조리원부터 어린이집, 영어유치원, 사교육, 대학 등록금, 결혼 자금까지 부모가 감당해야 할 몫이 끝없이 이어진다. 과거에는 자녀가 부모를 먹여 살렸다면 지금은 부모가 자녀를 위해 인생의 절반 이상을 투자한다.
흥부전을 뒤집어 보면 보이는 가족의 경제학
아이를 바라보는 경제적 의미가 달라지면서 부모의 선택도 달라졌다. 아이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한 명에게 더 좋은 교육과 더 많은 기회를 주고 싶기 때문이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자녀의 양보다 질에 투자하는 사회'라고 설명한다.
이런 변화는 부촌에서 더욱 뚜렷하다. 교육 경쟁이 치열한 지역일수록 자녀 수를 줄이고 교육 투자에 집중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아이를 키울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한 아이에게 투자하는 수준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사랑은 커졌지만 양육 부담은 그보다 더 빠르게 커졌다.
그래서 저출생은 종종 오해를 받는다. 젊은 세대의 가치관이 변해서 생긴 문제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말 변한 것은 사람일까. 흥부가 지금 서울의 전셋값과 교육비를 계산해야 하는 현실에 놓였다면 과연 열두 남매를 두었을까. 놀부 역시 오늘날을 살았다면 재산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자녀를 여럿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달라진 것은 흥부와 놀부가 아니라 시대다. 조선 시대에는 아이가 생계를 책임지는 자산이었다면, 지금은 부모가 모든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 존재가 됐다. 출산은 사랑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주거와 교육, 돌봄, 일자리와 미래에 대한 불안까지 함께 계산해야 하는 문제가 됐다.
정부는 아이를 낳으라고 말한다. 하지만 부모가 정말 듣고 싶은 말은 "아이를 낳으세요"가 아니라 "아이를 함께 키우겠습니다"라는 약속일 것이다. 출산율은 구호만으로 높아지지 않는다. 믿을 수 있는 돌봄과 감당할 수 있는 주거, 과열되지 않은 교육환경을 만드는 것이 먼저다. 정부와 지자체가 경쟁해야 할 것도 출산장려금 액수가 아니라 '아이 키우기 가장 좋은 도시'를 만드는 일이다.
『흥부전』의 진짜 결말은 흥부가 부자가 된 데 있지 않다. 모든 것을 잃은 놀부를 다시 품어주고 함께 살아가는 데 있다. 공동체가 무너진 관계를 다시 이어 붙인 것이다. 저출생도 마찬가지다. 부모 혼자 아이를 키우는 사회에서는 흥부도, 놀부도 둘째를 망설일 수밖에 없다. 아이를 함께 키우겠다는 사회의 약속이 있을 때 비로소 『흥부전』의 결말은 오늘의 대한민국에서도 다시 시작될 수 있다.
※ 이 기사는 아기성공연구소 제공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