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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멈췄는데 약은 돌았다…낙태법 공백 6년의 경고

국회가 비운 자리를 불법시장이 채웠다

 

용인신문 | 2019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지 6년이 지났지만 국회는 아직 새로운 제도를 만들지 못했다. 법은 바뀌지 않았고, 의료현장은 혼란 속에 남았다. 그 사이 온라인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임신중지 약물이 거래되고, 정부는 이를 제도권 안으로 들여오려 한다. 그러나 의료계에서는 "제도가 먼저냐, 약이 먼저냐"를 둘러싼 우려가 거세지고 있다.
최근 정부가 임신중지 의약품 도입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산부인과 의료진 사이에서는 안전성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의사들은 "약 자체보다 관리체계가 없는 상태에서의 도입이 가장 위험하다"고 입을 모은다.


산부인과 전문의들은 약물을 이용한 임신중지가 단순히 알약을 복용하는 수준의 의료행위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을 순차적으로 사용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자궁 수축과 출혈이 발생하며, 일부에서는 응급수술이나 수혈이 필요한 상황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자궁외임신을 사전에 확인하지 못한 경우에는 약물 복용으로 치료되지 않은 채 난관이 파열될 위험이 있으며, 잔류 조직이 남으면 추가적인 소파수술이 필요한 사례도 적지 않다고 의료진은 설명한다. 감염이나 패혈증 등 드물지만 중대한 합병증 역시 지속적인 의료관찰이 필요한 이유로 꼽힌다.


의료계는 해외에서 약물이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국내 도입의 안전성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해외 역시 초음파 검사, 임신 주수 확인, 응급의료 접근성, 사후 진료 체계를 함께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설명이다.


반면 현실에서는 이미 제도 밖 시장이 먼저 움직이고 있다. 온라인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판매되는 이른바 '미프진'은 정품 여부조차 확인하기 어렵고 가격도 수십만 원에 거래된다. 복용 방법이나 성분을 확인하기 어려운 불법 유통 제품이 적지 않아 오히려 여성 건강을 더욱 위협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와 여당은 이러한 음성시장을 양성화하기 위해 제도권 도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임신중지를 음성화할수록 불법 약물 사용과 의료 사각지대가 커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일부 개정안은 약물 사용을 제도권 안으로 편입하고 건강보험 적용까지 검토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산부인과계는 건강보험 적용 논의 이전에 명확한 의료 기준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임신 주수 확인, 초음파 검사, 응급진료 연계, 합병증 발생 시 치료체계 등 기본적인 안전장치 없이 약물만 허용될 경우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증가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쟁점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국회에 발의된 일부 법안에서는 기존 모자보건법상 임신 주수 제한 규정을 삭제하거나 대폭 완화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이에 대해 의료계 일부에서는 태아의 생명권 보호 기준이 불명확해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반면, 여성단체들은 임신중지 여부를 국가가 형사적으로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맞서고 있다.


결국 논쟁의 핵심은 '찬성과 반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제도를 만들 것인가에 있다. 의료현장에서는 "약물 도입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는 의료 시스템"이라고 말한다. 정부가 여성의 건강권을 보호하겠다면 응급의료체계와 상담, 사후관리, 정확한 복약지침을 포함한 종합적인 제도 설계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낙태죄는 사실상 사라졌지만 새로운 기준은 아직 없다. 법률 공백이 길어질수록 불법 거래는 커지고 의료현장의 혼란도 깊어진다. 생명권과 자기결정권이라는 첨예한 가치가 충돌하는 가운데, 이제 필요한 것은 이념이 아니라 의료와 법률, 사회가 함께 작동하는 현실적인 제도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