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아시안게임 직접 요리 음식봉사 ‘전설’
양성평등 남녀 화합… ‘건강한 도시’ 만들어야
용인신문 | 한 사람의 인생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도서관이자 역사이다. 110만 인구의 거대 도시, 글로벌 반도체 허브로 눈부시게 성장한 오늘날의 용인은 수많은 이들의 땀방울과 묵묵한 헌신 위에 세워졌다. 본지는 용인의 과거와 현재를 잇고, 지역사회의 숨은 주역들의 삶을 생생하게 기록하는 ‘휴먼 아카이브: 용인을 만든 사람들’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1986년 아시안게임 당시, 예산 한 푼 없이 단합으로 만든 ‘빈대떡의 기적’을 아십니까?”
척박했던 지역 여성 운동의 씨앗을 뿌리고 8년간 용인 여성의 리더로 활약했던 황근숙 용인시여성단체협의회 초대 회장을 만났다. 한국부인회 회장을 맡고 있던 황 회장은, 지난 1986년 전국적으로 여성단체가 조직되면서 용인여협의 초대회장으로 추대돼 8년간 회장직을 맡았다. 강력한 리더십으로 용인여협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황 회장의 85세 나이가 믿기지 않는 당당한 목소리와 지혜로운 혜안은 과거의 전설이 아닌, 미래를 향한 제언이었다.
Q. 초대 회장으로서 용인시여성단체협의회(여협)를 처음 만들었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열악했던 순간은 언제인가?
A. 당시에는 군청에서 지원해 주는 예산이 없었죠. 86아시안게임 때 음식 봉사를 해야 하는데 돈은 없고, 결국 단체장들이 “너는 빈대떡 해라, 나는 잡채 한다” 이렇게 분담해서 행사를 치렀어요. 수십명이 운동장에서 빈대떡을 부쳤죠. 우리집에서 직접 닭 300마리를 삶았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예산은 없었지만, 마음은 가장 풍족했던, 행복했던 시절이었죠.
Q. 86 아시안게임, 88올림픽 당시, 용인대학교 운동장에서 펼쳤던 대규모 봉사 활동은 지역사회의 전설이다. 어떻게 일사불란한 조직력이 가능했는가?
A. 서로 마음이 뭉치는 게 중요하죠. 경기를 구경하러 온 모든 손님들한테 무료로 대접하는 회원들 표정이 그렇게 밝고 행복할 수가 없었어요. 올림픽 때는 조직위에서 예산을 지원받아서 사전에 300명 봉사자 신청을 받아 교육을 시켜서 했어요. 행사 후 체육부 장관이 준 격려금으로 봉사자 중 180명이 설악산 여행을 갔다가 폭설로 고립된 일도 이젠 웃으면서 말하는 추억이죠. 그 열정이 우리 용인을 건강한 도시로 만든 힘이었다고 확신합니다.
Q. 여협 후원회 조직을 만들어 오늘날 여협의 기반을 만든 것으로 알고 있다.
A. 예산이 너무 없으니까요. 유명 탤런트 부모, 기업 회장 부인 등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로 구성했는데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우리 이런 행사가 있어요” 그러면 십시일반으로 후원을 해주셨어요. 정말 힘이 나고 잘 달려왔죠.
Q. 아들 선호 사상이 엄청나던 시절에 여성으로서 당당히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서 공무원으로, 여성계 리더로, 사업가로 끊임없이 도전 변신한 여성으로서 후배 여성들에게 조언은?
A. 제 능력은 30%밖에 안 되는데 주위에서 받은 거는 100%였어요. 여성들이 서로 연대하고 지지하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합니다. 훌륭한 여성이 있으면 기꺼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후배 여성들이 성공한 것만큼 우리 사회가 발전한다고 믿고, 그들에게 정당한 평가와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Q. 현재 110만 반도체 도시 용인에서 여성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시대가 바뀌었어요. 과거처럼 맹목적인 봉사보다는 양성평등을 바탕으로 남녀가 화합해서 용인을 더 ‘건강한 도시’로 만들어야 합니다. 특히 청소년 교육을 비롯해 취업, 환경 같은 문제에 여성들의 섬세하고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해요. 나이가 들었지만 용인의 발전을 위해 순수하게 동참하고 지원할 수 있는 새로운 연대 모임이 있다면 함께 하고 싶습니다. 과거의 뿌리에서 더 크고 건강한 나무가 자라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