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E.H. 카의 명제는 묵직하다. 여기에 조금 더 투박한 목소리를 보태고 싶다. “역사는 곧 살아있는 교훈”이라고 말이다. 역사는 박제된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비어 있는 과거의 행간을 현재의 시선으로 메워 나가는 능동적인 작업이다. 기록이란 결국 인간이 쏟아낸 욕망의 흔적을 갈무리하는 과정이며, 우리는 그 속에서 오늘의 이정표를 찾는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주인공 오나라 부차는 초심을 잃고 권력의 단맛에 취해 자만하다가, 끝내 자신이 살려준 월나라 구천에게 멸망했다. 이미 조짐은 있었다. 부차의 아버지 합려는 그를 태자로 삼기 전, 아들을 가리켜 “우둔하고 착하지도 않다(愚而不善)”라고 평한 바 있다. 그런데도 부차는 자신을 태자로 만들고 국가에 헌신했던 오자서를 멀리하고, 달콤한 언변으로 현혹하는 백비를 중용했다.
초나라 망명객 출신 백비는 관계 관리에 탁월했다. 그는 오자서의 입지를 시기하여 모함했고, 결국 죽음으로 내몰았다. 부차 곁에는 전략가 손무도 있었으나, 부차는 구천을 제압한 것이 오로지 자기 능력이라 과신했다. 원칙을 중시하는 오자서나 병법의 대가 손무보다 제 입맛에 맞는 백비를 곁에 두는 것이 훨씬 편안했으리라. 아부하지 않는 자들에 대한 거부감과 교활한 측근을 제 손아귀에 쥐고 흔들 수 있다는 독선(獨善)이 부차의 내면을 파고들었다.
2,500년 전 춘추시대의 역사는 단지 과거의 기록이 아니다. 민심을 외면한 권력의 선민의식과 오만이 빚어낸 파국은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경고다.
이상일 시장과 장정순 의장의 체제와 함께 용인특례시는 새로운 시대적 과제를 마주했다. 용인은 그 어느 때보다 ‘통합의 리더십’과 ‘명확한 행정력’을 요구받고 있다.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과 동·서 균형 발전, 광역 교통망 확충은 소모적인 정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이상일 시장에게는 시민의 요구를 구체적으로 수렴하는 열린 시정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시민이 체감하는 현안을 신속하게 해결하는 ‘일 잘하는 시장’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다. 한편 장정순 의장은 의회가 지닌 권한에 대한 엄중한 성찰을 보여야 한다. 시민의 목소리를 제도화하고 정책의 타당성을 치열하게 검토하는 지방자치의 보루가 되어야 마땅하다. 용인 시민은 갈등을 조정하고 일상 속에 구체적인 성과를 일궈내는 ‘통합의 행정가’를 원한다. 정쟁을 멈추고 시민의 삶을 향한 실질적인 현안에 매진할 때 비로소 용인의 진정한 도약이 가능하다. 두 리더가 각자의 위치에서 시민을 향한 ‘열린 자세’를 가져야만, 용인의 지방자치는 시민의 일상을 든든하게 받치는 토대가 될 것이다
민주주의의 성패는 리더가 자기 능력을 과신하지 않고, 끊임없이 겸허한 태도로 민의를 살피느냐에 달려 있다. 부차의 몰락은 간신 때문이 아니라 자만심 과잉에서 시작되었다. 스스로의 능력이 누구보다 높다고 믿는 ‘우둔함’과 확신에 찬 ‘유능함’은 종이 한 장 차이일 뿐이다. 한 사람의 독선이 빚어낸 결과가 얼마나 비참할 수 있는지를 역사는 증명한다.
용인의 미래는 시민의 준엄한 시선과 역사의 엄정한 기록 앞에 놓여 있다. 2026년 오늘, 우리 앞에 펼쳐진 시간이 지방자치의 모범적 이정표가 될지, 혹은 뼈아픈 실책으로 남을지는 오직 리더가 감당하는 실천의 무게에 달려 있다. 110만 용인 시민은 리더가 뿌리는 변화의 씨앗을 마지막 순간까지 역사의 한 페이지에 새길 것이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자세, 치열한 초심을 잊지 말아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