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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CAL FOCUS_용인 ‘명품도시’ 열쇠는 ‘소프트파워’

 

글로벌 반도체 심장 개발 대전환 전환점
수많은 문화예술인 잠든 ‘정신적 안식처’
남구만·남영로·남계우·이사주당·류희 등
문화유산·문학적 자산 ‘브랜드화’ 나서야

 

용인신문 | 세계 최대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으로 대한민국 첨단산업의 심장부로 도약 중인 용인특례시. 하지만 도시의 진정한 품격은 화려한 외형적 성장 너머, 그 땅에 깃든 역사와 문화예술의 뿌리에서 완성된다. 이번 ‘로컬포커스’에서는 수많은 문학 거장들이 영면한 용인의 인문학적 자산을 되짚어보고, 기술의 혁신 위에 문화예술의 숨결을 불어넣어 진정한 ‘역사문화예술도시’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 주>

 

■ 반도체 메카와 역사문화예술도시

어둠 속 불야성을 이루는 처인구 원삼면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 건립 현장. 이 역동적인 광경은 조만간 남사·이동읍 반도체 국가산업단지에서도 펼쳐진다. 여기에 플랫폼시티 조성과 광역교통망 확충까지 완성되면 용인은 가장 역동적인 첨단산업 중심지로 우뚝 서게 된다. 불과 30여 년 전 한적했던 농촌 도시는 이제 세계가 주목하는 미래 문명의 심장부로 대전환을 맞게 될 것이다.

 

하지만 눈부신 성장의 이면에는 우리가 잊고 지낸 전혀 다른 정체성이 숨 쉬고 있다. 사람들은 흔히 용인을 에버랜드나 한국민속촌 같은 관광지, 혹은 처인성 전투나 조광조·정몽주의 묘가 있는 ‘선비의 고장’ 정도로만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용인의 내면은 훨씬 다채롭다.

 

수많은 문화예술인, 특히 한국 문학사를 수놓은 거성들이 영면한 위대한 ‘역사문화예술도시(문학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도시를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외형적 성장만이 아니다. 척박한 콘크리트와 차가운 기술의 물리적 공간(Space)에 사람의 기억과 삶의 궤적이 깃든 문학적 서사가 더해질 때 비로소 그곳은 영혼이 숨 쉬는 장소(Place)로 변모한다.

 

역사적으로 한양의 관문이었던 용인은 고려 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인의 안식처이자 인문학적 토양이었다.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鎮川 死居龍仁)’이란 옛말은 명당을 넘어 용인이 지닌 자연의 평온함과 영원한 정신적 안식의 가치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 문학계 거목들 영면한 땅

실제로 현대문학의 물줄기를 바꾼 거장들이 용인의 품에 안겨 있다. 향토적 정서로 한국인의 감수성을 위로한 청록파 시인 박목월(1915~1978)을 비롯해, 전쟁의 상처를 승화시키고 삶의 비의를 예리하게 통찰한 현대 소설의 거목 박완서(1931~2011) 작가가 이곳에 영면해 있다. 또한 최초의 신체시를 발표한 근대 문학 개척자 최남선(1890~1957), ‘오발탄’으로 숭고한 인간애를 역설한 소설가 이범선(1920~1982), ‘고향의 봄’으로 동심을 심어준 아동문학가 이원수(1912~1981) 작가 역시 용인을 마지막 안식처로 택했다. 이들의 묘역은 무덤을 넘어 장소의 기억을 통해 서사가 완성되는 공간이자, 거장들의 문학적 영혼이 후대와 소통하는 정신의 도서관이다.

 

■ 약천 남구만 선생 ‘선비 정신’ 깃든 곳

역사적 문학 자산은 조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창이 밝았느냐’의 약천 남구만 선생이 모현읍 일대에 남긴 선비 정신은 인문학의 든든한 토대다. 남사 지역 의령남씨 가문의 남영로는 고전 판타지 소설 『옥루몽』을 집필해 조선 후기 문학의 정점을 찍었고, 나비의 인분까지 그려낸 ‘남나비’ 남계우의 예술 세계 역시 과학과 미학이 융합된 용인의 귀중한 자산이다.

 

여기에 태아를 하나의 완전한 인격체로 바라본 이사주당의 『태교신기』는 단순한 육아 지침을 넘어 세계 최초의 체계적 생명 존중 철학이자 인문학적 선언이었다.

 

또한, 만물의 명칭과 유래를 방대하게 엮은 서파 류희의 백과사전 『물명고』와 우리말의 과학적 원리를 탐구한 국어학서 『언문지』 등 실용과 합리를 중시했던 실학(實學) 정신은 용인이 당대 지식의 위대한 허브였음을 증명한다. 탁상공론을 배격하는 이러한 실사구시(實事求是)와 백성의 삶을 이롭게 하는 이용후생(利用厚生)으로 대변되는 용인의 실학 정신은 수백 년을 뛰어넘어, 오늘날 글로벌 경제를 이끄는 세계 최대 반도체 클러스터라는 현대적 혁신으로 이어지는 융합의 DNA가 되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왜 아직 용인을 역사문화예술도시로 뚜렷하게 인식하지 못할까. 이는 문화유산과 문학적 자산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흩어진 점들을 매력적인 선으로 잇고 시민의 일상 속에 서사로 녹여내는 작업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타 도시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들만의 고유한 역사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도시 브랜드를 완성했다. 이제 용인도 철학적 전환을 맞이해야 한다. 반도체가 용인의 미래 경제 경쟁력을 창출하는 차가운 하드웨어라면, 문학과 예술은 도시의 품격을 결정짓고 시민들의 마음을 연결하는 따뜻한 소프트웨어다.

 

■ 민선 9기 이상일 시장의 과제

민선 9기 이상일 시장을 비롯한 용인시 앞에는 중대한 과제가 놓여 있다. 산업과 도시 개발에서 이룬 거대한 성과를 바탕으로, 깊게 잠들어 있던 문학의 거성들과 문화예술 자산을 브랜드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

 

박목월, 박완서, 이원수, 이범선, 최남선 등 거장들의 숨결을 잇는 ‘문학 순례길’을 다듬고, 옥루몽과 태교신기의 서사를 메타버스와 가상현실(VR) 등 디지털 스토리텔링과 과감히 결합하여 시민의 일상과 관광, 청년 세대의 교육 속으로 생생하게 되살려내야 한다. 더 이상 거장들의 위대한 영혼이 잊히게 두어서는 안 된다. 이제 도시의 기억과 내면적 정체성을 키우는 문화 르네상스(2.0)를 선포해야 할 때다.

 

용인은 이미 ‘첨단의 빛’을 널리 비추며 1000조 원 규모 투자가 쏟아지는 눈부신 미래를 여는 데 성공했다. 남은 과제는 그 미래의 거대한 캔버스 위에 ‘천년의 결’을 가진 역사와 문화예술의 시간을 단단히 덧칠하는 일이다.

 

이 거대한 문화 르네상스로 향하는 여정에, 용인의 대지가 품고 있는 위대한 문학가들의 불멸의 문장들이 가장 빛나고 흔들림 없는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 <김종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