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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현의 생각의 온도

1500년의 길, 용인의 역사가 말해주는 미래

 

용인신문 | 110만 인구를 넘어선 용인은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성장하는 도시 가운데 하나다.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서고 수도권 남부의 핵심 도시로 자리 잡으면서 용인은 미래 첨단산업의 중심지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용인이 지닌 전략적 가치는 반도체 산업이 들어선 오늘날에 비로소 시작된 것이 아니다. 시간을 1500여 년 전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용인은 이미 백제와 고구려, 신라가 차례로 차지하며 치열하게 경쟁했던 전략적 요충지였다. 시대와 형태는 달라졌지만 사람과 물자가 모이는 핵심 길목이라는 도시의 가치는 지금까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삼국시대 초기 용인은 백제의 영역이었다. 백제가 한성을 수도로 삼던 시기, 용인은 한강 남쪽을 방어하는 배후 지역이자 충청과 남부 지방으로 이어지는 내륙 교통의 중심이었다. 한성에서 남쪽으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한 지리적 특성상 평상시에는 물자와 사람이 활발히 오갔고, 전쟁이 일어나면 군대가 반드시 지나야 하는 요충지였다.

 

용인의 운명이 바뀐 것은 475년이었다. 고구려 장수왕이 백제의 수도 한성을 함락하면서 한강 유역 대부분이 고구려의 지배 아래 들어갔고, 용인 역시 새로운 주인을 맞이했다. 고구려는 한강 남쪽까지 세력을 확장하며 이 일대를 행정구역으로 편입하고 남진 정책의 주요 거점으로 활용했다.

 

다시 역사가 바뀐 것은 553년이었다. 신라 진흥왕은 한강 유역을 확보하면서 용인을 포함한 경기 남부 지역을 신라의 영토로 편입했다. 한강을 차지한 신라는 중국과 직접 교류할 수 있는 교통로를 확보했고, 이는 훗날 삼국 통일의 결정적인 기반이 되었다. 용인이 백제, 고구려, 신라 세 나라의 지배를 모두 받은 지역으로 기록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삼국이 용인을 차지하려 했던 이유는 단순히 영토 확장만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용인은 한강 유역과 남부 내륙을 연결하는 교통의 핵심 요충지였다. 병력과 군수물자를 이동시키려면 반드시 지나야 하는 길목이었고, 전쟁의 승패를 좌우할 수 있는 전략적 위치였다. 성 하나를 차지하는 것보다 길 하나를 확보하는 것이 더 중요했던 시대에 용인은 그 길의 중심에 서 있었다.

 

150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용인의 경쟁력은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 경부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가 교차하고 수도권 광역도로망과 철도망이 집중되는 교통 여건은 첨단산업 입지의 핵심 경쟁력이 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한 세계적 반도체 기업들이 용인을 선택한 배경에도 수도권 접근성과 넓은 개발 공간, 그리고 우수한 교통망이 자리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결국 용인의 역사는 ‘길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국시대에는 군대와 군수물자가 지나던 길이었고, 조선시대에는 장터와 고을을 잇는 길이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수여선 철도가 놓인 길이었다. 산업화 이후에는 고속도로가 도시를 관통했고, 이제는 반도체 산업과 첨단기술이 모이는 대한민국 산업지도로 다시 쓰이고 있다. 백제와 고구려, 신라가 차지하려 했던 전략적 입지는 1500년이 지난 오늘에도 형태만 달라졌을 뿐, 여전히 용인의 성장과 발전을 이끌어가는 가장 큰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거대한 산업적 성장 뒤에 자리한 1500년의 역사를 돌아보는 일은 이 도시에 대한 애정과 정체성을 깊이 파악하는 출발점이 된다. 110만 용인이 거둔 외형적 성과를 넘어, 그 길 위에 살아가는 주민들의 삶의 질과 인문학적 풍요로움이 함께 어우러질 때 도시의 품격은 비로소 완성된다. 과거 삼국이 치열하게 다투었던 전략적 길목이 오늘날 세계를 잇는 첨단 산업의 중심지로 변모했듯, 용인이 사람과 미래, 그리고 기술을 잇는 지속 가능한 도시로 끊임없이 발전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역사의 깊이만큼이나 용인이 걸어갈 내일의 길 역시 더욱 견고하고 명확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