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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AI 버블, 가장 먼저 흔들린 곳은 한국이었다“

외신들 잇단 경고…"코스피 급락은 시작일 수도“
세계가 한국 증시를 'AI 거품 리트머스 시험지'로 본다

 

용인신문 | 세계 인공지능(AI) 투자 열풍이 거대한 전환점을 맞고 있다. 그 변화의 첫 신호가 미국도, 중국도 아닌 한국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앞세워 AI 반도체 최대 수혜국으로 떠올랐던 한국이 이제는 AI 투자 거품의 위험성을 가장 먼저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를 비롯해 파이낸셜타임스(FT), ​블룸버그 등 주요 해외 언론은 최근 잇따라 한국 증시를 집중 조명하며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이 곧 세계 시장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들의 공통된 시각은 하나다. AI 산업의 성장 가능성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AI 기대감이 끌어올린 주가가 현실보다 너무 앞서 달려갔다는 것이다.

 

한국은 AI 시대 최대 승자로 꼽혀왔다. 엔비디아의 AI 가속기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사실상 양분하면서 글로벌 AI 투자 확대의 직접적인 수혜를 누렸다. AI 데이터센터가 늘어날수록 두 기업의 실적도 함께 뛰었고, 국내 증시는 AI 반도체를 중심으로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갔다.

 

문제는 기업의 성장과 주가의 상승 속도가 같지 않았다는 점이다.

 

AI에 대한 기대감이 커질수록 투자자들은 실적보다 미래를 먼저 사기 시작했고, AI 관련 종목에는 막대한 자금이 집중됐다. 여기에 정부의 증시 활성화 정책과 개인투자자의 공격적인 투자까지 겹치면서 시장은 점점 과열 양상을 보였다. 특히 개별 종목 레버리지 ETF까지 등장하면서 상승장에 베팅하는 자금은 더욱 빠르게 불어났다.

 

그러나 시장은 언제나 기대보다 현실을 먼저 확인한다.

 

최근 메모리 반도체 업황이 정점을 지나고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중국 업체들의 기술 추격 가능성과 공급 확대 우려가 커지자 분위기는 순식간에 바뀌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차익 실현 매물이 쏟아졌고, 레버리지 투자자들의 반대매매까지 겹치면서 변동성은 급격히 확대됐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를 단순한 한국 증시 조정으로 보지 않았다. 한국을 "국가 자본주의와 시장 투기가 극단적으로 결합한 실험장"​이라고 표현하며, AI 투자 열풍 속에서 가장 먼저 과열됐던 시장이 가장 먼저 흔들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한국 증시가 앞으로 글로벌 AI 투자 시장에서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을 미리 보여주는 '전조(harbinger)'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엔비디아와 젠슨 황 최고경영자에 대한 평가다.

 

이코노미스트는 젠슨 황이 AI 생태계에 막대한 투자와 자신감을 불어넣으며 시장을 떠받치고 있지만, 그 영향력이 오히려 투자 열기를 과도하게 키우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AI 산업에 대한 낙관론이 계속될수록 투자자들은 더 높은 가격을 정당화하게 되고, 반대로 기대가 흔들리는 순간 충격도 그만큼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도 한국 투자자들이 AI 반도체 랠리의 막바지에 대거 뛰어든 뒤 조정을 맞고 있다고 분석했다. 블룸버그 역시 최근 코스피 하락을 '빙산의 일각'이라고 표현하며 AI 투자 열풍이 어디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세계 금융시장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렇다고 AI 산업 자체의 성장성이 꺾였다는 의미는 아니다.

 

AI 인프라 확대와 데이터센터 증설, HBM 수요 증가는 중장기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전망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역시 여전히 AI 공급망의 핵심 기업이라는 평가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외신들이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좋은 기업이 반드시 좋은 주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산업의 성장과 주가의 상승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지만, 속도는 언제나 다르다. 기대가 현실보다 앞서 달릴수록 조정의 폭도 커질 수밖에 없다.

 

결국 지금 세계가 한국 증시를 바라보는 이유는 단순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 때문이 아니다. AI 혁명이 어디까지 이어질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형성된 투자 열기가 얼마나 견고한지를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는 시장이 한국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AI 혁명은 이제 막 시작됐을지 모른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모든 혁명은 거대한 기대를 낳았고, 그 기대는 언제나 거품을 동반했다. 그리고 그 거품은 늘 가장 뜨거웠던 곳에서 가장 먼저 균열을 보였다. 지금 세계가 한국 증시를 주목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