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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과 내가, DNA 99.9%는 동일하다?

남편 아닌, 他男의 정자는 정말 ‘남의 유전자’일까
인간의 DNA 99.9%는 같지만 아이에게 물려주는 절반은 분명 다르다
정자 공여를 가로막는 것은 유전자의 거리인가, 마음속 혈통의 경계인가

 

용인신문 | “남의 정자로 낳은 아이를 과연 내 아이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정자 공여 이야기가 나오면 한국의 난임 부부가 가장 먼저 마주하는 질문이다.

 

의학적으로는 임신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더 생긴 것이지만, 당사자에게는 단순한 치료 선택지가 아니다. 남편의 정자가 아닌 다른 남성의 정자로 아이를 갖는다는 사실은 혈통과 성씨, 가족의 계보를 중요하게 여겨온 한국 사회에서 좀처럼 넘기 어려운 심리적 경계가 된다.

 

놀랍게도 유전학의 눈으로 보면 조금 흥미로운 장면이 펼쳐진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얼마나 다른 존재일까.

한국인 남성과 또 다른 한국인 남성의 유전자는 전혀 다른 설계도일까.

동양인 기증자의 정자를 사용하면 아이에게 ‘낯선 피’가 절반이나 들어오는 것일까.

 

미국 국립인간게놈연구소에 따르면, 사람과 사람의 DNA 염기서열은 99.9% 이상 같다는 것. 약 30억 개의 유전문자 가운데 대부분은 세계 어느 사람과 비교해도 동일하다는 뜻이다. 남편과 정자 기증자, 한국인과 일본인, 동양인과 서양인도 모두 인간이라는 하나의 종 안에서 거의 같은 유전적 문장을 공유한다.

 

그렇다면 정자 공여를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뜻일까.

 

이야기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사람을 서로 다르게 만드는 것은 바로 나머지 작은 차이다.

 

눈과 코의 생김새, 키와 체형, 피부와 머리카락의 특징, 특정 질환에 대한 취약성, 약물 반응 등 개인의 차이는 전체 유전체에서 극히 작은 비율을 차지하는 변이들이 복잡하게 조합되면서 만들어진다.

 

인간은 99.9% 같지만, 그 작은 차이로 서로 다른 얼굴과 체질, 개성을 가진다.

 

여기서 흔히 등장하는 것이 ‘동양인끼리는 유전적으로 더 비슷하지 않느냐’는 질문이다. 대체로 같은 조상 집단을 공유한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일부 유전적 변이를 더 많이 함께 지닌다.

 

하지만 ‘동양인의 염기서열은 몇 퍼센트 같다’는 식으로 선을 긋는 것은 정확한 설명이 아니다. 동아시아인은 하나의 균일한 유전집단이 아니며, 한국인 안에서도 개인별 유전적 차이는 존재한다.

 

최근 대규모 연구에서도 유전자 발현과 DNA 변이의 상당 부분은 대륙이나 인구집단 사이보다 같은 집단 내부의 개인 사이에 분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쉽게 말하면 한국인이라는 이름표가 유전자를 똑같게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같은 한국인 두 사람이 반드시 한국인과 다른 동아시아인 두 사람보다 유전적으로 더 가까운 것도 아니다.

 

우리는 민족을 선명한 경계로 구분하지만, 유전자는 국경선처럼 반듯하게 나뉘지 않는다.

 

수천 년 동안 사람은 이동하고 섞이고 자녀를 낳았으며, 오늘날 모든 인간의 유전체에는 수많은 조상의 흔적이 겹쳐 있다.

 

물론 남편의 정자와 다른 남성의 정자가 같은 것은 아니다.

 

정자는 아이에게 핵 DNA의 절반을 전달한다. 남편의 정자로 태어난 아이는 남편에게서 유전체의 절반을 물려받지만, 기증자의 정자로 태어난 아이는 그 절반을 기증자에게서 받는다.

 

99.9%가 공통된 인간의 DNA라 해도, 부모와 자녀를 연결하는 유전적 계보의 관점에서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과학적 유사성과 가족이 느끼는 감정적 거리가 갈라진다.

 

유전학자는 “모든 인간은 거의 같다”고 말하지만, 난임 부부는 “그래도 그 아이에게 내 남편의 유전자는 없다”고 느낀다. 두 문장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인류 전체의 차원에서는 거의 같은 유전체이지만, 가족의 계보라는 차원에서는 누가 절반을 제공했는지가 분명히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정자 공여에 대한 거부감이 큰 이유도 유전자의 실제 차이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대를 잇는다’, ‘피가 섞였다’, ‘내 핏줄이다’라는 표현이 일상적으로 사용될 만큼 한국 사회에서 가족은 오랫동안 혈연을 중심으로 정의돼 왔다.

 

아버지의 성씨를 물려받고 제사를 이어가며 족보에 이름을 올리는 문화 속에서 정자 공여는 단순히 세포 하나를 제공받는 일이 아니라 가문의 연속성이 끊기는 사건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정자 공여로 태어난 아이는 유전적 연결이 없는 아버지와 온전한 가족이 되기 어려울까.

 

지금까지 축적된 해외 연구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유전적 연결 하나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정자나 난자 공여로 태어난 아이들의 정서·행동 발달이 자연임신이나 일반적인 체외수정으로 태어난 아이보다 반드시 나쁘다는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오히려 가족관계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은 공여 사실 자체보다 부모의 양육 태도, 가족 내 의사소통, 출생 정보를 언제 어떻게 알려주는가와 같은 문제라는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이 사실은 ‘유전자는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자신의 생물학적 뿌리를 알고 싶어 하는 공여 출생인의 권리 역시 가볍게 볼 수 없다. 기증자의 의료정보와 유전질환 위험, 형제자매의 존재, 출생 기원을 알 권리는 정자 공여 제도를 설계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문제다.

 

실제로 여러 나라에서는 익명 기증보다 일정 연령이 된 자녀가 기증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를 바꾸고 있으며, 부모가 공여 사실을 숨기기보다 아이의 성장 단계에 맞춰 알려주는 흐름이 강해지고 있다.

 

과학은 인간의 DNA가 놀랄 만큼 비슷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0.1%의 차이보다 ‘누구에게서 왔는가’를 더 크게 받아들인다.

 

정자 공여 앞에서 느끼는 두려움은 무지해서 생기는 감정도,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도 아니다. 자신의 유전적 자녀를 바라는 마음 역시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욕망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순혈’이라는 표현은 문화적으로는 강력하지만 생물학적으로는 성립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세상에 완전히 섞이지 않은 민족도, 유전적으로 완벽하게 동일한 집단도 없다. 우리는 모두 수많은 조상이 남긴 변이의 조합이며, 부모에게 받은 유전자 역시 다음 세대에서 다시 새롭게 섞인다.

 

아이에게는 아버지에게서 받은 DNA 절반이 중요할 수 있다. 그러나 아이의 인생 전체가 그 절반만으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매일 밥을 먹이고, 열이 나면 밤을 새우고, 처음 걷는 순간을 지켜보고, 넘어질 때 손을 내미는 사람의 시간은 염기서열 검사로 측정되지 않는다.

 

정자 공여를 선택하든 선택하지 않든 그 결정은 누구에게도 쉽게 재단될 수 없다. 다만 혈통을 지켜야만 가족이 되는 것인지, 사랑하고 책임지면 가족이 될 수 있는 것인지 묻는 순간, 우리는 정자 한 개를 넘어 가족의 본질과 마주하게 된다.

 

거듭 강조한건데, 인간의 DNA는 99.9%가 같다. 그러나 한 아이를 내 아이로 받아들이는 마음은 숫자로 계산할 수 없다. 어쩌면 정자 공여의 가장 높은 문턱은 유전자 사이의 거리가 아니라, 우리가 오랫동안 마음속에 그어온 혈통의 경계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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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미국 국립인간게놈연구소(NHGRI)의 인간 유전체 자료와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 「휴먼 리프로덕션(Human Reproduction)」, 「생식의학 및 배아학(European Society of Human Reproduction and Embryology, ESHRE)」, 「미국생식의학회(American Society for Reproductive Medicine, ASRM)」의 공개 자료 및 관련 연구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특정 개인의 진단이나 치료를 대체하지 않으며, 실제 의학적 판단은 전문의 상담을 통해 이뤄져야 합니다.

 

※ 이미지: AI 생성 (ChatGPT, OpenAI) /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용 시각 자료입니다.

 

※ 이 기사는 아기성공연구소 제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