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발기부전 치료제로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비아그라가 암 치료 연구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단순히 혈류를 개선하는 약으로 알려졌던 비아그라가 암세포가 다른 장기로 퍼지는 과정 자체를 차단할 가능성이 확인되면서다. 특히 기존 콜레스테롤 치료제인 스타틴과 함께 사용할 경우 암 전이를 더욱 강하게 억제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까지 나오면서 '약물 재창출(Drug Repurposing)' 분야에서도 관심이 커지고 있다.
비아그라의 주성분인 실데나필(sildenafil) 은 원래 발기부전 치료를 위해 만들어진 약이 아니었다. 협심증과 같은 심혈관질환 치료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혈관을 확장시키는 효과가 확인됐고, 임상시험 도중 발기 기능 개선이라는 예상 밖의 결과가 나타나면서 1998년 발기부전 치료제로 승인됐다.
실데나필은 혈관이 쉽게 좁아지지 않도록 해 혈액이 더 잘 흐르게 만드는 약이다. 우리 몸은 필요할 때 혈관을 넓혀 혈류를 늘리지만, 시간이 지나면 혈관을 다시 원래 상태로 되돌린다. 실데나필은 이 되돌리는 작용을 늦춰 혈관이 더 오래 이완된 상태를 유지하도록 한다. 그 결과 혈액이 말초 조직까지 원활하게 공급되고 산소와 영양분의 전달도 늘어난다. 이런 작용은 음경 혈관뿐 아니라 폐동맥에서도 나타나기 때문에 실데나필은 발기부전 치료제와 폐동맥고혈압 치료제로 함께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연구진은 여기서 예상치 못한 사실을 발견했다. 혈관을 넓혀 혈액순환을 돕는 실데나필이 암세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것이다.
암세포는 다른 장기로 퍼지기 위해 엄청난 에너지와 재료가 필요하다. 그 핵심 재료 가운데 하나가 바로 콜레스테롤이다. 흔히 콜레스테롤은 혈관 건강을 해치는 물질로 알려져 있지만, 세포 입장에서는 세포막을 만들고 증식하는 데 꼭 필요한 '건축자재'다. 특히 빠르게 자라고 이동하는 암세포는 정상세포보다 훨씬 많은 콜레스테롤을 소비한다.
연구팀은 실데나필이 암세포로 들어가는 콜레스테롤 공급을 방해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다시 말해 암세포가 전이를 위해 필요한 연료와 자재를 제때 공급받지 못하도록 만든 것이다. 그 결과 암세포의 움직임이 둔해졌고 주변 조직을 파고들거나 다른 장기로 퍼지는 능력도 크게 떨어졌다. 실제 쥐를 이용한 실험에서는 암 전이가 눈에 띄게 감소했다.
하지만 암세포도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외부에서 콜레스테롤이 들어오지 않자 이번에는 스스로 더 많은 콜레스테롤을 만들어 살아남으려는 '비상 대책'을 가동했다.
연구진은 이 점을 노렸다. 몸속에서 콜레스테롤 합성을 억제하는 스타틴 계열 약물을 함께 투여한 것이다. 밖에서 들어오는 길은 실데나필이 막고, 안에서 만드는 길은 스타틴이 차단하자 암세포는 필요한 콜레스테롤을 확보하지 못했다. 결국 전이 능력은 실데나필 단독 투여 때보다 더 크게 떨어졌다.
사람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다. 연구팀이 이스라엘 최대 의료기관인 클라릿 회원 약 500만 명의 20년간 의료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암 진단 전 실데나필과 스타틴을 함께 복용했던 환자들이 가장 높은 생존율을 보였다. 연구진은 두 약물을 함께 사용하는 전략이 암 환자의 예후를 개선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설명했다.
물론 이번 연구만으로 비아그라가 암 치료제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번 결과는 동물실험과 암세포 연구, 의료 빅데이터 분석을 종합한 것으로 실제 환자에서 효과를 입증하는 임상시험은 아직 진행되지 않았다.
연구를 이끈 아옐렛 에레즈 교수는 "동물실험과 실제 환자 데이터에서 같은 방향의 결과가 확인됐다"며 "다음 단계는 여성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해 효과를 검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삼중음성 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신약 하나를 개발하는 데는 보통 10년 이상의 시간과 수조 원의 비용이 든다. 반면 이미 안전성이 검증된 약에서 새로운 치료 효과를 찾는 '약물 재창출'은 개발 기간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심장약으로 출발해 발기부전 치료제가 됐던 비아그라가 이번에는 암 전이를 막는 치료 전략으로 또 한 번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