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기도
김현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落葉)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謙虛)한 모국어(母國語)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肥沃)한
시간(時間)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百合)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약력: 김현승(1913~1975) 시인은 1934년 동아일보를 통해 등단했다. 조선대와 숭실대 교수를 역임하며 후학을 양성했다. 고독과 신앙을 바탕으로 인간의 정신적 깊이를 탐구하여 한국 주지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특히 《가을의 기도》, 《눈물》, 《견고한 고독》 등을 발표하며 한국 서정시의 영역을 넓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