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 수·테스토스테론 감소 놓고 다시 불붙은 ‘정자 대재앙’ 논쟁
대기오염은 정자 DNA의 ‘유전자 스위치’까지 건드린다
용인신문 | 요즘 남자들의 정자는 정말 예전 남자들의 정자보다 약해졌을까. 남성난임을 진료하는 비뇨기과 의사인 필자도 자주 생각하는 문제다. 지난 수십 년간 세계 남성의 평균 정자 농도와 총 정자 수가 감소했다는 연구들이 축적됐고, 평균 테스토스테론 역시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는 주장도 이어졌다. 환경 속 내분비교란물질, 플라스틱, 농약, 대기오염 등이 남성 생식력을 서서히 떨어뜨리고 있다는 경고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정자 수가 감소했다는 관찰과 남성의 생식력이 붕괴하고 있다는 결론은 같은 말이 아니다. 정액검사 방법과 연구 대상은 시대마다 달랐고 비만, 당뇨병, 대사질환 증가도 무시할 수 없다. 수면 부족과 흡연, 음주, 스트레스 역시 테스토스테론과 정자 생성에 영향을 준다. 무엇이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그래서 최근 연구는 단순히 정자의 ‘숫자’만 세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 2026년 유럽생식의학회(ESHRE)에서 발표된 2000명 이상 규모의 연구에서는 정자가 만들어지는 기간의 대기오염 노출과 정자 DNA 메틸화의 연관성을 분석했다. DNA 메틸화는 유전자 염기서열 자체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어떤 유전자가 작동할지를 조절하는 일종의 ‘유전자 스위치’다.
연구진은 대기오염 노출과 연관된 39개의 정자 DNA 메틸화 변화를 확인했고, 특히 오존과 이산화질소와의 연관성이 두드러졌다고 보고했다. 우리가 마시는 공기가 폐와 심혈관뿐 아니라 정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에도 분자 수준의 흔적을 남길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메틸화가 달라졌다고 해서 곧바로 정자가 나빠졌다는 뜻은 아니다. 그것이 임신율 저하나 유산, 자녀 건강 문제로 이어지는지도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 환경이 정자에 흔적을 남길 수 있다는 사실과 그것이 실제 생식능력을 떨어뜨린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필자는 그래서 ‘정자 대재앙’이라는 표현을 조금 경계한다. 남성 생식력의 변화는 정자 수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다. 비만과 대사질환, 수면, 환경, 스트레스, 그리고 실제 성생활까지 모두 연결돼 있다.
오히려 진료실 밖에서 더 눈에 띄는 변화도 있다. 남녀가 사랑할 시간은 줄고, 결혼은 늦어지고, 부부관계 횟수도 줄고 있다. 서로 사랑하면서도 성관계가 거의 없는 ‘섹스리스 부부’ 역시 적지 않다.
정자 수가 몇 퍼센트 줄었는지를 연구하는 것도 중요하다. 대기오염과 환경호르몬의 영향을 밝히는 일도 필요하다. 하지만 인간의 생식력은 정액검사표 한 장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아무리 현실이 팍팍해도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남자의 생식력까지 사라졌다고 보지는 않는다. 어쩌면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정자가 사라지는 시대’보다, 사랑하고 관계를 맺을 시간 자체가 사라지는 시대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