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국민연금이 ‘신청해야 받을 수 있는 연금’에서 ‘자격이 되면 알아서 지급하는 연금’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수급 연령이 됐는데도 청구 절차를 몰라 연금을 늦게 받거나, 세금 공제를 받기 위해 고령자가 직접 세무서를 찾아다녀야 했던 불편을 줄이는 것이 핵심이다. 은행을 이용하기 어려운 농어촌 고령자에게는 통장에 입금된 연금을 현금으로 찾아 집까지 전달해주는 서비스도 도입된다.
국민연금 제도가 단순히 돈을 지급하는 데서 벗어나 수급자의 연령과 생활 여건까지 고려해 ‘먼저 찾아가는 서비스’로 방향을 틀고 있는 것이다.
국민연금공단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제출한 2026년 하반기 주요 업무보고에 따르면 공단은 오는 9월부터 일부 노령연금 수급자를 대상으로 별도의 청구 절차 없이 연금을 지급하는 자동지급 서비스를 시범 운영한다.
연금 받을 나이 됐는데 왜 신청해야 하나
현재 국민연금은 연금을 받을 수 있는 나이가 됐다고 해서 자동으로 통장에 들어오는 구조가 아니다. 수급권자가 직접 국민연금공단에 노령연금을 청구해야 지급 절차가 시작된다. 공단 지사를 방문하거나 온라인 등을 통해 신청해야 한다.
문제는 고령층일수록 이런 절차 자체가 장벽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자신이 언제부터 연금을 받을 수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거나 신청 방법을 몰라 지급 시기를 놓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공단이 9월부터 도입하는 자동지급 서비스는 이런 구조를 바꾸는 첫 단계다.
우선 보험료 미납 내역이 없고 반환일시금 반납이나 추후 납부 가능성이 없는 등 연금 수급 관계가 비교적 단순하고 명확한 가입자를 대상으로 시범 운영한다. 공단이 보유한 자료만으로 수급 요건을 확인할 수 있다면 본인이 별도로 청구하지 않아도 노령연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모든 국민연금 가입자에게 당장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공단은 시범사업을 통해 지급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점검한 뒤 자동지급 대상을 단계적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세금 깎으려 세무서 가던 일도 없앤다
연금을 받기 시작한 뒤에도 고령 수급자가 직접 처리해야 했던 세금 관련 절차가 줄어든다.
국민연금 보험료 가운데 납부 당시 소득공제를 받지 않은 금액은 나중에 연금을 받을 때 과세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다. 이미 세제 혜택을 받지 않은 돈에 다시 세금을 부과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제도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수급자가 이를 입증해야 했다. 세무서를 찾아가 ‘연금보험료 등 소득·세액 공제확인서’를 발급받은 뒤 다시 국민연금공단에 제출해야 과세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었다.
연금 수급자가 세제 혜택을 받기 위해 세무서와 국민연금공단을 오가야 했던 셈이다.
앞으로는 이 과정도 전산으로 처리된다. 국민연금공단이 국세청으로부터 소득공제를 받지 않은 보험료 내역을 직접 받아 확인하고, 해당 금액을 과세 대상에서 제외한 뒤 연금소득세를 원천징수하는 방식으로 바뀐다.
수급자가 별도의 증명서를 발급받지 않아도 공단과 국세청이 보유한 정보를 서로 확인해 세금을 계산하는 구조다.
행정기관이 이미 가지고 있는 정보를 국민에게 다시 제출하라고 요구해온 관행을 줄인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통장에 있어도 못 찾는 연금…집까지 가져다준다
연금 지급 방식도 수급자의 생활환경에 맞춰 달라진다.
도시에선 은행이나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쉽게 찾을 수 있지만 농어촌 지역은 사정이 다르다. 금융기관까지 거리가 멀고 대중교통이 부족한 데다 고령이나 건강 문제로 이동 자체가 어려운 주민도 적지 않다.
매달 연금이 통장에 정상적으로 입금되고 있어도 정작 현금이 필요한 고령자가 돈을 찾으러 가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는 이유다.
공단은 이런 고령 수급자를 위해 연금을 현금으로 인출해 가정까지 전달하는 서비스를 시행한다.
우선 강원·전북·전남·경남의 군 단위 농어촌 지역에 거주하는 75세 이상 고령자 가운데 우체국 계좌로 국민연금을 받는 수급자가 대상이다.
은행까지 이동하기 어려운 고령자가 연금을 받기 위해 가족이나 이웃에게 부탁하거나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불편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신청주의’ 넘어서는 국민연금 실험
이번 변화에서 주목할 부분은 개별 서비스보다 그 방향이다.
그동안 각종 복지와 연금 제도는 자격을 갖춘 국민이 스스로 제도를 확인하고 신청해야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이른바 ‘신청주의’에 크게 의존해왔다. 제도를 잘 아는 사람은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정보가 부족하거나 몸이 불편한 사람은 오히려 지원에서 멀어지는 문제가 반복됐다.
노령연금 자동지급과 세금 자동정산, 현금 배달 서비스는 이 같은 구조를 거꾸로 돌리는 시도다.
국민이 서류를 들고 행정기관을 찾아가는 대신 행정기관이 보유한 데이터를 활용해 받을 사람을 먼저 확인하고, 필요한 서비스까지 찾아 제공하는 방식이다.
특히 국민연금 수급자가 대부분 고령층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행정 절차를 단순화하는 것 자체가 복지의 일부가 될 수 있다. 연금액을 늘리는 것만큼이나 ‘받아야 할 사람이 제때,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9월 시작되는 노령연금 자동지급은 아직 대상이 제한된 시범사업이다. 그러나 시범운영을 거쳐 적용 범위가 확대될 경우 국민연금의 오랜 원칙이었던 ‘본인이 청구해야 지급한다’는 구조에도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국민연금이 가입자의 노후를 위한 돈을 쌓아두는 제도를 넘어, 받을 권리까지 먼저 찾아주는 제도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