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인류는 노화를 멈추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고 있다. 세계적인 빅테크 거물들은 노화한 세포를 젊은 상태로 되돌리는 기술에 투자하고, 미국에서는 이미 손상된 눈 세포를 젊게 만드는 인체 임상시험까지 시작됐다.
그런데 이미 100년 이상 살아온 사람들의 삶에서 발견되는 장수법은 첨단기술과는 거리가 멀다.
많이 먹지 않고, 생활 시간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술과 담배를 멀리하는 것. 여기에 사람들과 관계를 이어가며 살아가는 평범한 생활습관이 100세 장수인의 공통점으로 나타났다.
노화를 되돌리려는 과학은 이제 막 사람을 대상으로 시험을 시작했지만, 현실의 장수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절제와 규칙’이라는 생활방식을 실천해 온 셈이다.
10년 새 2.7배 늘어난 ‘100세 인구’
지난해 11월 1일 기준 국내 만 100세 이상 인구는 8604명이다. 2015년 3159명과 비교하면 10년 만에 약 2.7배로 늘었다.
인구 10만 명당 100세 이상 고령자도 같은 기간 6.4명에서 17.3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지난해 국내 최고령자는 116세였다.
100세 이상 인구 가운데 여성은 7176명으로 전체의 83.4%를 차지했다. 절대 숫자는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증가 속도는 남성이 더 빨랐다. 2015년과 비교한 증가율은 남성 233.6%, 여성 162.8%였다.
이들이 생각하는 장수의 이유는 의외로 단순했다.
100세 이상이면서 요양시설이 아닌 자신의 집에서 생활하는 4280명을 조사한 결과, 가장 많은 59.7%가 장수 비결로 ‘절제된 식생활’을 꼽았다.
이어 규칙적인 생활이 44.5%였고, 유전적 요인 32.1%, 낙천적인 성격 25.8% 순이었다.
태어날 때 결정되는 유전보다 ‘어떻게 먹고 어떻게 생활했느냐’를 장수 이유로 꼽은 사람이 더 많았던 것이다.
술·담배 멀리하고 사람은 가까이
100세 장수인들의 생활에서는 또 하나 뚜렷한 특징이 나타났다. 술과 담배를 하지 않은 사람이 많았다는 점이다.
조사 대상자의 79.6%는 평생 술을 마신 적이 없다고 답했고, 86.9%는 담배를 피운 경험이 없다고 했다. 음주와 흡연을 모두 경험하지 않은 사람도 75.8%에 달했다.
장수한다고 해서 질병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100세 이상 고령자의 90.0%는 한 가지 이상의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었다. 고혈압이 56.7%로 가장 많았고 관절염 39.9%, 치매 29.1%, 당뇨병 15.7% 순이었다.
중요한 것은 질병을 완전히 피했다기보다는 질환을 가진 상태에서도 오랫동안 생활을 유지했다는 점이다.
인지기능 역시 모두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조사 대상자의 40.4%는 자신의 이름과 나이를 알고 가족을 알아보며 돈 계산도 가능한 수준의 인지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사람들과의 접촉도 계속됐다. 따로 사는 자녀나 이웃, 요양보호사 등을 만나는 횟수는 월평균 12.7회였다.
장수의 조건에 음식과 생활습관뿐 아니라 사회적 관계 역시 무시하기 어려운 요소라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세계 최고령자 후보의 하루도 ‘평범한 반복’
세계의 초고령자들에게서도 비슷한 생활방식이 발견된다. 코스타리카의 호세 플로레스 씨는 출생 기록상 1907년 7월 11일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가족들은 국제 장수 검증기관인 노인학연구그룹(GRG)의 인증을 준비하고 있다.
스페인 매체 ‘엘 파이스’가 지난 7월 전한 그의 생활은 특별한 건강법과는 거리가 멀다.
평생 농장에서 일했던 그는 고령에도 매일 오전 6시에 일어나고 스스로 식사를 한다. 보행 보조기를 이용해 외출도 한다.
아침에는 쌀과 콩을 섞은 코스타리카 전통음식 ‘가요 핀토’에 치즈를 곁들이고, 저녁에는 옥수수로 만든 따뜻한 음료를 마신다.
그가 밝힌 장수 비결 역시 거창하지 않았다. 많이 일하고, 건강하게 먹으며 살아왔다는 것이다. 현재 국제적으로 공식 인증된 최고령 생존자는 영국의 에설 캐터햄 씨로 알려져 있다.
결국 실제 초고령자들의 삶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것은 특별한 약이나 건강보조제가 아니라 오랫동안 유지해 온 생활의 규칙성이다.
반대편에선 ‘노화를 되돌리는’ 실험
하지만 과학계는 전혀 다른 길에서도 장수의 해답을 찾고 있다. 노화를 늦추는 수준을 넘어 이미 늙은 세포를 다시 젊은 상태로 돌려놓겠다는 ‘역노화’ 연구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올해 1월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노화는 해결 가능성이 매우 높은 문제”라고 말했다.
샘 올트먼 오픈AI CEO는 2022년 바이오 스타트업 ‘레트로 바이오사이언스’에 1억8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목표는 인간의 건강수명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것이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 역시 노화 연구기업 ‘알토스 랩스’에 투자하며 역노화 기술 개발에 뛰어들었다.
연구는 이제 동물실험을 넘어 사람에게까지 접근하고 있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가 최근 소개한 미국 생명공학 기업 라이프 바이오사이언스의 연구는 세포의 발달 상태를 일부 되돌리는 ‘부분 리프로그래밍’ 기술을 이용한다.
노화한 세포를 완전히 초기화하지 않으면서 젊은 상태의 특성을 일부 회복하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연구진은 손상된 눈 세포의 기능을 회복시켜 녹내장 등 노화 관련 안과 질환을 치료하는 것을 목표로 인체 임상시험에 들어갔다.
‘회춘’은 시작됐지만 아직 장수약은 없다
부분 리프로그래밍은 동물실험에서는 이미 가능성을 보였다. 2016년 미국 솔크연구소 연구팀은 조기 노화 질환을 가진 생쥐에서 특정 세포 리프로그래밍 기술을 적용했을 때 수명이 늘어나고, 늙은 생쥐의 근육과 췌장 조직 재생 능력이 개선되는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사람에게 같은 효과가 나타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세포의 상태를 인위적으로 되돌리는 과정에서 세포 변이나 종양 발생 같은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현재 진행되는 임상시험은 사람의 몸 전체를 젊게 만드는 연구가 아니다. 노화와 관련된 특정 안구질환 치료 가능성을 확인하는 단계다.
올트먼 CEO가 투자한 레트로 바이오사이언스도 노화 세포에서 손상된 단백질을 제거하는 ‘자가포식’ 기능을 활성화하는 후보물질 ‘RTR242’의 초기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알츠하이머병과 관련된 비정상 단백질 축적을 줄일 수 있는지가 주요 연구 대상이다.
인간이 먹는 약 하나로 10년, 20년을 더 살거나 늙은 몸 전체를 젊게 만드는 단계와는 아직 상당한 거리가 있다.
100세 시대, 먼저 확인된 답은 ‘생활’이었다
세계의 거대 자본은 이제 노화를 질병처럼 치료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보고 있다. 세포의 시간을 되돌리고 노화한 장기를 젊게 만드는 기술이 성공한다면 인간의 수명 개념 자체가 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미래가 언제 현실이 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반면 현재 100세를 넘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장수의 조건은 이미 현실에 존재한다.
적게 먹고, 일정하게 생활하고, 술과 담배를 멀리하며,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하는 삶이다.
첨단 바이오기술이 ‘어떻게 다시 젊어질 것인가’를 연구하고 있다면 100세 장수인의 삶은 그보다 먼저 다른 질문에 답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오래도록 무너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가. 지금까지 확인된 답은 의외로 가장 오래된 생활습관에 가까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