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인신문 | 한 때 공동체를 위한 개인의 희생이 숭고하게 받들어지고 그 목적이 아름답던 시기가 있었다. 굳이 과거형을 빌어 말하는 이유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기는 숭고함보다는 이해관계가 더 강조되는 듯한 인상이 더 강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문경민의 『앤서』는 가상의 시간과 사건을 빌어 숭고와 이해관계 사이에서 갈등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주인공 유이가 사는 세계는 아르굴이라는 괴물이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방벽은 점점 무너졌고 방벽 안의 셸터는 물자가 부족해 서로 반목하고 있다. 마낙은 군사력을 기반으로 하는 마낙은 다른 셸터까지 침략한다. 마낙은 유이가 있던 발안 셸터에 들어와 유이의 가족을 죽음으로 내몬다. 반면 파비언은 포털를 이용해 앤서의 여론을 만들어 정책을 수행해 나가는 대통령이다. 여기에 제3의 인물 킨은 사람들을 이야기로 매혹시켜 원하는 일을 추진하려 한다.
유이는 마낙 개인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마낙과 같은 인물들이 남발한 “달콤한 약속에 자기 욕망”을 투영해 마낙과 같은 인물을 지도자로 올린 이들을 생각한다. 파비언은 누구라도 이용가치가 있다면 누구와도 손잡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렇다면 유이가 한 때 사랑했던 킨은 어떨까? 킨의 목적은 유이가 보기에 정당했을까? 괴로워하는 유이에게 “네가 사랑하는 것을 찾고, 돌볼 것과 지킬 것을 잡아”라고 말하는 주한 중사는 “그렇게 산다면 끝이 와도 슬프지 않을 거야.”라고 말한다.
파비언의 제안도 킨의 제안도 거절한 유이가 선택한 결말은 우리의 가치관을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