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아이들이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병원을 찾아야 하는 아이들은 오히려 늘고 있다.
저출생으로 우리나라 소아·청소년 인구가 빠르게 감소하는 가운데 당뇨병과 비만, 성조숙증 등 지속적인 검사와 치료가 필요한 소아 내분비질환 환자는 가파르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 수 감소를 이유로 소아의료 기반은 위축되고 있지만 정작 한 명의 아이에게 필요한 의료의 양과 기간은 더 늘어나는 ‘저출생의 역설’이 현실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눈에 띄는 변화는 성조숙증이다. 6년 만에 환자가 거의 두 배로 늘었고, 그동안 상대적으로 드물다고 여겨졌던 남자아이의 증가 속도가 여자아이를 크게 앞질렀다.
국제학술지 ‘Epidemiology and Health’에 최근 실린 연구에 따르면 국내 연구진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2017~2023년 진료자료를 분석한 결과, 0~19세 소아·청소년의 당뇨병과 비만, 성조숙증 환자가 모두 증가했다.
아이는 줄었는데 환자는 늘었다
소아·청소년 당뇨병 환자는 2017년 1만2839명에서 2023년 1만6747명으로 30.4% 늘었다.
비만으로 의료기관을 찾은 소아·청소년도 같은 기간 2253명에서 3468명으로 53.9% 증가했다.
증가폭이 가장 컸던 질환은 성조숙증이었다. 2017년 10만6238명이던 환자는 2023년 20만6251명으로 증가했다. 6년 사이 94.1%, 사실상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단순히 아이가 많아져 환자가 증가한 것도 아니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 소아·청소년 인구는 오히려 감소했다.
전체 아동 인구라는 ‘분모’는 작아지는데 치료가 필요한 아이의 숫자는 커지고 있다는 의미다.
이는 저출생 시대 소아의료를 단순히 출생아 수나 학령인구만으로 설계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성조숙증, 남자아이 증가세가 더 가팔랐다
성조숙증의 변화는 더욱 뚜렷하다. 전체 환자 수는 여전히 여아가 많지만 증가 속도는 남아가 훨씬 빨랐다.
남아 성조숙증 환자는 2017년 1만113명에서 2023년 4만1177명으로 307.2% 증가했다. 같은 기간 여아는 9만6125명에서 16만5074명으로 71.7% 늘었다.
이에 따라 전체 성조숙증 환자 가운데 남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7년 9.5%에서 2023년 약 20%까지 높아졌다. 불과 6년 만에 두 배 이상으로 커진 셈이다.
특히 5~9세 남아의 변화가 두드러졌다.
이 연령대 남아 성조숙증 환자는 2017년 3443명에서 2023년 1만9069명으로 5.5배 증가했다. 인구 감소까지 반영한 연간 유병률도 같은 기간 0.29%에서 1.88%로 6.5배 높아졌다.
성조숙증을 사실상 ‘여자아이 질환’처럼 인식해왔던 기존의 시각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코로나 때 ‘한 단계 상승’…원인은 아직 단정 못해
성조숙증 환자 증가 과정에서는 코로나19 유행 시기인 2020년을 전후해 한 차례 뚜렷한 변화가 관찰됐다.
연구진은 코로나19 당시 아이들의 신체활동 감소와 체중 증가, 스크린 이용시간 확대, 심리적 스트레스 등이 사춘기 시작 시기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부모가 자녀의 신체 변화를 이전보다 일찍 발견해 병원을 찾았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코로나19 이후에도 증가세가 계속됐다는 이유만으로 감염병 유행이 성조숙증 증가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게 연구진의 판단이다.
실제로 비만 환자는 코로나19 이후인 2021년 7589명까지 급증한 뒤 2023년 3468명으로 감소했다. 반면 소아 당뇨병은 특정 시기에 집중되기보다 조사기간 전반에 걸쳐 꾸준한 증가 흐름을 나타냈다.
질환별로 증가 원인과 양상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얘기다.
환자 증가 넘어 ‘장기관리 의료’가 늘어난다
더 큰 문제는 이들 질환이 감기처럼 한두 번 진료로 끝나는 질환이 아니라는 데 있다. 당뇨병은 혈당 관리와 합병증 예방을 위해 장기적인 추적관찰이 필요하다. 성조숙증 역시 성장 상태와 골연령, 호르몬 수치 등을 지속적으로 확인해야 하고 경우에 따라 수년간 치료가 이어진다. 비만도 성장기부터 관리하지 않을 경우 성인기 대사질환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
환자 1명이 만들어내는 의료 수요가 일회성 진료가 아니라 수년간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질환 증가세는 의료비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세 질환의 건강보험 적용 진료비는 2017년 약 8억3600만원에서 2023년 약 13억2100만원으로 58.0% 증가했다.
성조숙증 관련 진료비는 같은 기간 약 4927만원에서 1억524만원으로 113.6% 늘어 증가폭이 가장 컸다.
이마저도 건강보험이 적용된 주진단 청구액만 집계한 결과다. 비급여 진료와 검사, 부진단 관련 비용 등을 포함하면 실제 가정이 체감하는 비용은 더 클 가능성이 있다.
줄어드는 소아과, 늘어나는 만성질환
문제는 환자 증가와 반대 방향으로 소아의료 공급 기반이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저출생이 장기화하면서 소아·청소년 인구 감소와 낮은 진료 수익성을 이유로 소아청소년과 진료 기반 위축에 대한 우려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아이 수 감소=소아의료 수요 감소’라는 단순한 공식이 더 이상 맞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신생아와 소아 인구는 줄더라도 당뇨병이나 성조숙증처럼 전문의의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환자가 늘어나면 필요한 의료인력과 진료시간은 오히려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소아기에 시작된 비만과 당뇨병 같은 내분비·대사질환은 성인기 건강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어린 시절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질환이 수십 년 뒤 심혈관질환과 대사질환 등으로 이어질 경우 저출생 시대에 태어난 한 세대의 건강 문제를 넘어 향후 국가 의료비 부담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
“성조숙증, 방치하면 최종 키 성장에도 영향”
성조숙증 증가가 특히 주목되는 이유는 단순히 사춘기가 남들보다 빨리 시작되는 데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성호르몬 분비가 이른 나이에 증가하면 처음에는 또래보다 키가 빠르게 자라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뼈의 성숙 속도인 ‘골연령’도 함께 빨라진다. 결국 성장판이 또래보다 일찍 닫히면서 최종 성인 키가 기대했던 수준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어린 나이에 2차 성징이 나타나거나 짧은 기간에 키가 급격히 자라는 경우, 골연령이 실제 나이보다 크게 앞서는 경우에는 정확한 진단과 추적관찰이 중요하다.
성조숙증 환자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적절한 진료 시기를 놓칠 경우 단순한 사춘기 문제를 넘어 아이의 성장과 신체 발달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조기 발견과 전문적인 관리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