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전기를 많이 썼나 싶어 아이들한테 에어컨 좀 그만 틀라고 했죠. 그런데 관리비 고지서를 자세히 보니까 전기료만의 문제가 아니더라고요.”
수지구의 한 아파트에 사는 40대 주민 A씨는 30만 원을 훌쩍 넘는 관리비 고지서를 받고는 “여름이라 전기나 물을 많이 쓴 탓”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데 고지서를 들여다 본 후 생각이 많아졌다.
경비비, 청소비, 관리 인건비, 장기수선충당금처럼 내가 얼마나 쓰느냐와 관계없는 비용도 상당했기 때문이다.
아파트 관리비 고지서를 받아든 주민이라면 한 번쯤 가져봤을 의문이다. 같은 용인이고 흔히 ‘34평형’이라고 부르는 전용 84㎡ 안팎의 아파트인데도 한 달 관리비는 생각보다 크게 벌어진다.
전기를 많이 썼거나 난방을 많이 틀어서 생기는 차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관리비를 뜯어보면 이야기는 훨씬 복잡하다.
용인신문이 공동주택관리정보시스템(K-apt) 공개자료를 토대로 수지구·기흥구·처인구에서 각각 10개 아파트 단지를 선정해 관리비를 비교했다.
단지마다 관리비 부과면적 기준이 달라 고지서 총액을 그대로 맞대는 대신 1㎡당 관리비를 기준으로 전용 84~85㎡급을 가정해 85㎡로 환산했다.
이는 실제 개별 가구의 고지서 금액이 아니라 단지 간 관리비 수준을 비교하기 위한 수치다.
K-apt 역시 실제 세대별 관리비는 난방방식과 세대수, 층수, 관리인원, 경비방식, 주민편의시설, 개별 사용량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결과는 예상보다 컸다. 이번 조사 대상 30개 단지 가운데 높은 곳은 85㎡ 환산 월 35만 원 안팎에 달한 반면 낮은 곳은 12만 원대에 그쳤다.
최고와 최저의 차이가 한 달 약 22만 원을 넘었다. 같은 차이가 1년간 이어진다고 단순 계산하면 270만 원이 넘는다.
△ 같은 34평 … 관리비는 ‘딴 세상’
조사 대상 가운데 수지구 서홍마을벽산블루밍은 1㎡당 관리비가 4125원으로 85㎡ 기준 약 35만 1000원 수준이다.
반면 처인구 용인보평역서희스타힐스리버파크는 1㎡당 1449원으로 같은 면적을 적용하면 약 12만 3000원 수준이었다. 두 단지의 차이는 약 22만 7000원이다.
이번 조사에서 선정한 각 구별 10개 단지씩의 단순 평균을 계산하면 85㎡ 환산 관리비는 수지구가 약 22만 7000원, 기흥구 약 21만 5000원, 처인구 약 15만 9000원이었다.
다만 이는 각 구 전체 아파트의 공식 평균이 아니라 이번 조사 대상 10곳씩을 단순 비교한 값이다.
△ 난방비가 주범 아니었다
관리비 차이의 원인은 의외로 전기료와 난방비가 아니다.
서홍마을벽산블루밍의 1㎡당 관리비 4125원을 분석하면 공용관리비가 2186원, 개별사용료가 1409원, 장기수선충당금이 530원이다.
85㎡로 환산하면 공용관리비 약 18만 6000원, 개별사용료 약 12만 원, 장기수선충당금 약 4만 5000원이다.
반면 용인보평역서희스타힐스리버파크는 공용관리비가 1㎡당 687원, 개별사용료 681원, 장기수선충당금 81원으로 나타났다.
85㎡ 기준으로 각각 약 5만 8000원, 5만8000원, 7000원 수준이다. 두 단지 전체 관리비 격차 가운데 공용관리비 차이만 약 12만 7000원에 달한다.
경비비도 크게 벌어졌다. 서홍마을벽산블루밍의 경비비는 1㎡당 644원으로 85㎡ 환산 약 5만 5000원인 반면, 보평역서희스타힐스리버파크는 206원으로 약 1만 8000원이다.
청소비 역시 각각 322원과 149원으로 85㎡로 환산하면 약 2만 7000원과 1만 3000원이다. 관리사무소 직원 급여 관련 비용도 각각 558원과 173원으로 약 4만 7000원과 1만 5000원 수준으로 벌어졌다.
인건비와 경비비, 청소비 세 항목만 놓고도 한 달 수만 원의 차이가 발생하는 셈이다.
수지구 주민 A씨는 “관리비가 많이 나오면 가족들이 전기를 많이 썼거나 물을 많이 쓴 탓이라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이렇게 주변 단지와 비교해보면 오히려 내가 줄이기 어려운 공용관리비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고 말했다.
전기료 차이도 있었지만 공용관리비만큼 결정적이지 않았다. 7월의 경우 난방비 역시 전체 20만 원대 격차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했다.
결국 적어도 여름철 관리비의 경우 “에어컨을 많이 켜서 우리 집 관리비가 비싸다”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한 셈이다.
△ 관리비도 ‘규모의 경제’
두 단지에서 눈에 띄는 또 하나의 차이는 세대수다. 서홍마을벽산블루밍은 246세대인 반면 용인보평역서희스타힐스리버파크는 1963세대다.
같은 1억 원의 비용이라도 250가구가 나눠 내는 것과 2000가구가 나눠 내는 것은 가구당 부담이 크게 달라진다.
대단지에서 이른바 ‘규모의 경제’가 나타날 수 있는 이유다.
하지만 아파트 관리사무소 운영비와 경비·청소비, 각종 시설 유지비 가운데 상당수는 단지 규모에 비례해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처인구의 한 대단지에 거주하는 50대 주민 B씨는 “주변의 작은 아파트에 사는 지인과 관리비 이야기를 해보면 우리 단지가 세대수가 많아서 그런지 상대적으로 적게 나온다는 이야기를 종종 한다”며 “하지만 관리비가 싸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라고 본다. 경비나 청소 인력이 충분한지, 시설관리가 제대로 되는지도 함께 봐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단지라고 무조건 관리비가 싼 것은 아니다. 커뮤니티센터와 수영장, 사우나, 피트니스센터, 게스트하우스, 대형 조경시설 등을 갖춘 신축 대단지는 관리 인력과 공용전기 사용량이 많아 오히려 관리비가 높아질 수도 있다.
반대로 소규모 단지라도 경비 방식을 무인화하거나 관리 인력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면 상대적으로 관리비가 낮을 수 있다.
결국 단지 규모는 중요한 변수지만 관리비를 결정하는 유일한 변수는 아니다.
△ 경비비‧청소비용 등 비교 ‘필요’
주민들이 비교하기 가장 쉬운 항목 가운데 하나는 경비비와 청소비다.
두 비용은 아파트의 경비 방식과 인력 규모, 근무 방식, 용역계약 금액 등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발생한다.
경비원이 직접 근무하는 초소가 많은 단지인지, 통합경비 시스템을 사용하는지, 지하주차장이나 출입구가 몇 곳인지, 택배와 주차관리 업무까지 경비원이 담당하는지 등에 따라 필요한 인원이 달라진다.
청소비 역시 마찬가지다. 동 수와 승강기 수, 지하주차장 면적, 공용시설 규모가 크면 청소 인력이 더 필요하다.
따라서 관리비 총액이 높은 아파트라면 먼저 자신의 단지 1㎡당 경비비와 청소비를 주변의 규모와 연식이 비슷한 단지와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 장기수선충당금 높다고 ‘바가지’는 아니다
관리비 고지서를 볼 때 주민들이 특히 헷갈려하는 항목이 장기수선충당금이다. 이번 비교에서도 단지별 장기수선충당금은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서홍마을벽산블루밍은 1㎡당 530원으로 85㎡ 기준 약 4만 5000원이지만 용인보평역서희스타힐스리버파크는 81원으로 약 7000원 수준이다. 이 항목 하나에서만 한 달 약 3만 8000원의 차이가 난다.
그러나 장기수선충당금이 높다고 곧바로 관리비를 많이 걷는 단지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장기수선충당금은 지금 당장 경비원 급여나 전기료로 사용하는 돈이 아니다. 향후 엘리베이터 교체, 외벽 도색, 옥상 방수, 배관 교체 등 아파트의 주요 시설을 고치기 위해 미리 적립하는 돈이다.
오래된 아파트일수록 향후 대규모 수선공사가 발생할 가능성도 커진다.
반대로 당장 관리비를 낮춰 보이기 위해 장기수선충당금을 지나치게 적게 쌓는다면 수년 뒤 대규모 보수공사가 필요할 때 주민 부담이 한꺼번에 커질 수도 있다.
기흥구의 50대 주민 C씨는 “예전에는 장기수선충당금이 몇만 원씩 찍혀 있으면 ‘쓰지도 않은 돈을 왜 이렇게 많이 걷나’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며 “그런데 승강기나 외벽, 배관을 교체할 때 쓰는 적립금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무조건 적다고 좋은 것도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따라서 아파트 관리비를 비교할 때는 장기수선충당금을 포함한 총액과 장기수선충당금을 제외한 실제 관리비를 함께 보는 것이 필요하다.
△ 여름 관리비와 겨울 관리비 순위는 달라진다
이번 조사는 여름철 자료를 기준으로 했다. 난방비라는 큰 계절 변수를 줄이고 단지 자체의 관리비 구조를 비교하기 위해서다.
겨울에는 순위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지역난방과 개별난방 아파트는 단순한 관리비 총액 비교가 어렵다. 지역난방 단지는 난방비와 급탕비가 관리비 고지서에 직접 크게 잡히지만 개별난방 단지는 도시가스 요금이 관리비와 별도로 부과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겨울철에는 관리비 고지서 숫자만으로 실제 가정의 전체 주거 에너지비용까지 판단해서는 안 된다.
아파트 연식도 변수다. 오래된 단지는 승강기와 배관, 전기설비, 외벽 등 유지보수 비용이 증가할 수 있다. 신축 아파트는 시설이 새것이지만 커뮤니티시설과 조경, 보안시스템 등이 많아 공용관리비가 올라갈 수 있다.
△ 관리비, 중요한 것은 ‘어디에 쓰느냐’
우리 아파트 관리비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고지서에 적힌 총액보다 개별 항목을 봐야 한다.
공용관리비 내역에 들어있는 인건비와 경비비·청소비, 공용전기 사용량, 승강기와 커뮤니티시설 수는 물론, 장기수선충당금과 단지내 세대 수 등을 비슷한 조건의 주변 아파트와 비교해야 한다.
공동주택관리정보시스템을 이용하면 관리비뿐 아니라 공사와 용역의 입찰·계약정보도 확인할 수 있다.
주민들이 마음만 먹으면 “관리비가 비싸다”에서 한발 더 나아가 “왜 비싼가”까지 확인할 수 있는 셈이다.
수지구 주민 D씨는 “사실 그동안은 관리비 고지서 맨 아래에 적힌 총액만 보고 자동이체를 했다”며 “주변 아파트와 항목별로 비교할 수 있다면 관리사무소나 입주자대표회의에도 훨씬 구체적으로 물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아파트 관리비는 사실상 매달 내는 ‘주거비’다. 한 달 5만 원 차이면 1년에 60만 원이고, 10만 원이면 120만 원이다.
이번 조사처럼 비슷한 면적의 아파트 사이에서 월 20만 원을 넘는 차이가 발생한다면 주민 입장에서는 그 이유를 물어볼 충분한 근거가 있다.
그렇다고 관리비가 높은 아파트가 곧 관리가 잘못된 아파트라는 뜻은 아니다. 좋은 경비·청소 서비스를 위해 인력을 더 많이 운영할 수도 있고, 노후시설 교체에 대비해 장기수선충당금을 충실하게 적립하고 있을 수도 있다.
반대로 관리비가 싸다는 것 역시 반드시 효율적인 관리의 증거는 아니다. 필요한 시설 보수나 인력을 줄여 비용을 낮추고 있다면 장기적으로는 주민에게 더 큰 부담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