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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과학(웰빙/의학)

AI가 낮춘 창업 문턱…‘1인 기업’ 쏟아지지만 생존은 더 어려워졌다

직원 없이도 개발·마케팅·영업…AI가 바꾼 창업 공식
사용량 늘면 원가도 증가…빅테크와 경쟁까지 ‘이중 부담’
기술보다 고객 데이터·신뢰·유통망이 장기 생존 가른다

 

용인신문 | 인공지능(AI)이 창업의 공식을 바꾸고 있다. 아이디어 하나만 있으면 개발자와 디자이너, 마케터를 따로 고용하지 않고도 서비스를 만들고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과거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의 초기 자금과 여러 명의 인력이 필요했던 일을 이제는 한 사람이 생성형 AI를 활용해 상당 부분 처리할 수 있다.

 

덕분에 창업 문턱은 어느 때보다 낮아졌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기업의 생존 문턱은 더 높아지고 있다. 누구나 빠르게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경쟁자 역시 같은 속도로 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AI 사용량에 따라 계속 불어나는 비용과 빅테크의 서비스 확장까지 겹치면서 ‘작게 시작해 크게 키우는’ 기존 스타트업 성공 공식도 흔들리고 있다.

 

AI 시대 창업의 승부처가 기술 개발 자체에서 고객을 붙잡아두는 능력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직원 1명대 기업이 ‘뉴노멀’

기업 규모는 이미 작아지고 있다. 생성형 AI가 본격적으로 확산하기 시작한 2023년 기준 창업 7년 이내 기업의 평균 종사자 수는 1.7명 수준이었다. 통계청 기업생멸행정통계를 보면 2024년 신생 기업 한 곳당 평균 종사자 수는 약 1.36명까지 낮아졌다.

 

대표 한 명에 소수 인력만 둔 초소형 기업이 더 이상 예외적인 형태가 아니라는 의미다.

 

AI가 개발 코드 작성부터 자료 조사, 이미지 제작, 번역, 고객 응대, 광고 문구 작성까지 맡으면서 창업 초기에 필요했던 인력 상당 부분을 대체할 수 있게 된 영향이 크다.

 

과거 인터넷 벤처 창업 때만 해도 서비스 하나를 만들려면 개발자와 서버 담당자, 디자이너, 영업·마케팅 인력이 필요했다. 현재는 창업자 한 명이 AI를 활용해 시제품을 만든 뒤 곧바로 소비자 반응을 시험하는 것도 가능하다.

 

‘직원을 먼저 뽑고 제품을 만드는 회사’에서 ‘제품을 먼저 만들고 매출이 확인된 뒤 사람을 뽑는 회사’로 창업 순서 자체가 달라지고 있는 셈이다.

 

매출 늘어도 비용 함께 뛴다

문제는 사업이 커진 뒤다. AI 기업은 일반적인 소프트웨어 기업과 비용 구조가 다르다. 기존 소프트웨어는 프로그램을 한 번 구축한 뒤 고객이 늘더라도 추가 비용 증가 폭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

 

AI 서비스는 이용자가 질문하고 문서를 만들고 이미지를 생성하고 추론을 요구할 때마다 컴퓨팅 자원이 투입된다. 외부 AI 모델을 사용할 경우 토큰 사용량에 따라 비용을 내야 한다.

 

고객이 늘면 매출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원가도 함께 증가하는 구조다.

 

글로벌 투자사 베서머가 고성장 AI 기업들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이 같은 특성이 나타났다. 이들 기업은 첫 매출 발생 이후 약 1년 동안 평균 60% 수준의 매출총이익률을 기록했다. 전통적인 고마진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기업보다 상대적으로 원가 부담이 큰 구조다.

 

특히 고객에게 낮은 가격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고성능 AI 모델을 반복적으로 호출하는 사업은 이용자가 늘수록 손실 폭까지 커질 수 있다.

 

반면 AI 모델과 클라우드, 데이터센터를 제공하는 기업은 상황이 다르다. 스타트업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서비스를 개발하고 운영하는 동안 사용료를 받을 수 있다.

 

AI 골드러시에서 금을 캐는 스타트업보다 ‘곡괭이와 삽’을 파는 인프라 기업이 먼저 돈을 버는 구조가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잘 만든 기능도 하루아침에 사라진다

AI 스타트업에는 또 다른 위험이 있다. ‘복제 속도’다. 과거 스타트업이 새로운 기능을 내놓으면 경쟁사가 이를 따라잡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이제는 경쟁 제품을 분석하고 유사 서비스를 만드는 데 필요한 시간이 크게 줄었다.

 

더 큰 위협은 AI 모델을 공급하는 기업이 직접 응용서비스 시장에 뛰어드는 경우다.

 

앤트로픽은 개발자들에게 AI 모델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파일 탐색과 코드 작성·수정, 테스트까지 수행하는 코딩 서비스를 직접 내놓았다. 구글 역시 기존 검색에 복합 질문과 후속 질문을 처리하는 AI 기능을 결합하며 서비스 영역을 넓히고 있다.

 

스타트업이 어렵게 확보한 기능이 어느 날 거대 플랫폼의 ‘기본 메뉴’ 하나로 들어갈 수 있다는 얘기다.

 

검색이나 문서 작성, 번역, 코딩처럼 이용 범위가 넓은 기능만으로 사업을 구축한 기업일수록 이런 위험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

 

결국 남는 것은 ‘고객’

그렇다고 AI 스타트업의 기회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미국 벤처캐피털 멘로 벤처스는 지난해 기업용 AI 애플리케이션 매출 가운데 스타트업 비중이 63%에 이른 것으로 추산했다. 2024년 36% 수준에서 크게 상승한 수치다.

 

빅테크가 강력한 AI 모델을 갖고 있어도 모든 산업의 업무 방식과 규제, 고객 요구까지 장악하기는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의료·법률·금융·제조·교육처럼 산업별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에서는 단순히 성능 좋은 AI를 연결하는 것보다 고객이 실제로 어떤 업무를 하고 어떤 데이터를 사용하며 어떤 문제 때문에 돈을 지불하는지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AI 시대의 기업 경쟁력이 ‘누가 더 좋은 모델을 쓰느냐’에서 ‘누가 고객의 업무 안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 있느냐’로 이동하는 이유다.

 

한 번 확보한 고객 데이터와 업무 흐름, 거래 관계, 유통망은 AI 모델만으로 쉽게 복제하기 어렵다. 결국 기술이 평준화될수록 고객 신뢰가 가장 강력한 진입장벽이 될 가능성이 크다.

 

25년 전 벤처붐과 다른 ‘AI 골드러시’

한국은 경제위기 직후 창업 열풍을 경험한 적이 있다. 1997년 외환위기를 전후해 기업 구조조정이 이어졌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초고속 정보통신망 구축과 벤처기업 육성 정책이 맞물리며 인터넷 산업이 성장하기 시작했다.

 

벤처기업 수는 1998년 2042개에서 2001년 1만1392개로 급증했다. 대기업에서 기술과 사업 경험을 쌓은 인재들도 잇따라 창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만들어진 인터넷 기업 가운데 상당수가 이후 한국 디지털 산업의 중심 기업으로 성장했다.

 

현재의 AI 열풍도 새로운 산업 질서가 만들어진다는 점에서는 당시와 닮았다. 국내 AI 모델·인프라 분야에 대규모 벤처자금이 몰리고 있고, 기술 장벽이 낮아지면서 개인이 회사를 세울 수 있는 기회도 크게 늘었다.

 

차이도 분명하다.

인터넷 시대에는 새로운 시장에 얼마나 빨리 진입하느냐가 중요했다면 AI 시대에는 시장에 들어간 이후 얼마나 오래 버티느냐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

 

제품 제작 비용이 낮아진 만큼 경쟁자의 진입 비용도 낮아졌고, 고객이 늘수록 AI 사용료가 커지는 사업도 적지 않다. 여기에 모델 공급자인 빅테크가 언제든 직접 경쟁자가 될 가능성도 있다.

 

AI는 한 사람이 기업을 만드는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한 사람이 회사를 만들 수 있다는 것과 그 회사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앞으로 AI 창업 시장의 승자는 화려한 기술을 가장 먼저 선보인 기업이 아니라 고객이 계속 돈을 내야 할 이유를 만든 기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창업 비용을 낮춘 것은 AI지만, 기업의 생존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고객의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