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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공기업 지도 다시 그린다…발전·항만·에너지 ‘합치고’ LH는 ‘쪼갠다’

공공기관 524곳→415곳, 109개 줄이는 대수술
발전 5사 ‘한국발전’으로…4개 항만공사도 단일화
석유·가스공사 합쳐 에너지자원공사 출범 추진
LH는 개발·주거복지 분리…공항공사 통합은 유보

 

용인신문 | 정부가 국가 기간산업과 주택·복지 분야를 맡고 있는 공공기관의 지도를 대대적으로 다시 그린다.

 

지역과 회사별로 나뉘어 있던 발전·항만·에너지 공기업은 하나로 묶어 몸집을 키우는 반면, 거대 공기업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개발과 주거복지 기능을 떼어내 두 개 기관으로 나눈다. 공공기관 수는 현재 524개에서 415개로 109개 줄어든다.

 

단순한 기관 통폐합 수준을 넘어 지난 수십 년간 유지돼 온 공기업 운영 체계를 산업별로 다시 짜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3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공공기관 기능개혁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허장 재정경제부 2차관은 “전체 공공기관의 약 20%에 해당하는 109개 기관을 과감하게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발전 5사, 하나로

가장 큰 변화는 에너지 분야에서 시작된다.

 

한국남동발전·한국중부발전·한국서부발전·한국남부발전·한국동서발전 등 발전 5사는 하나의 법인으로 통합된다. 새 법인의 가칭은 ‘한국발전’이다.

 

지금처럼 발전회사가 각각 조직과 사업을 운영하는 방식으로는 비슷한 분야에 중복 투자가 발생하고 대형 에너지 사업에서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이 정부 판단이다.

 

통합법인에는 해상풍력 등 대규모 사업을 담당하는 재생에너지본부와 석탄발전소 폐지 등에 대응하는 정의로운전환본부를 두는 방안이 검토된다. 지역에는 태양광과 육상풍력 사업을 맡는 3~4개 지역본부를 설치한다.

 

석유와 가스를 따로 관리해 온 체제도 바뀐다.

 

한국석유공사와 한국가스공사를 합쳐 ‘에너지자원공사’를 만드는 방안이 추진된다. 국제 에너지 공급망이 불안해지는 상황에서 석유와 가스를 하나의 전략 아래 관리하고, 산유국이나 글로벌 에너지 기업과의 협상력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석유공사의 석유 비축과 탐사·개발 기능은 통합공사가 맡고, 알뜰주유소 등 석유 유통구조 개선 업무는 석유관리원으로 넘길 계획이다.

 

모든 광업소가 문을 닫으면서 사실상 역할이 끝난 대한석탄공사는 청산한다.

 

항만도 ‘한 지붕’

부산·인천·울산·여수광양 등 4개 항만공사도 하나로 합쳐진다.

 

정부는 이들을 ‘한국항만공사’로 통합하고 기존 4개 지역에는 지사를 두기로 했다. 조직과 경영은 한 곳으로 묶되 각 지역 항만의 특화 사업은 유지하는 방식이다.

 

항만공사 산하 자회사 5곳도 ‘한국항만보안시설공단’으로 통합한다.

 

반면 인천국제공항공사와 한국공항공사를 합치는 방안은 일단 멈췄다. 정부는 지방공항 활성화와 인천공항·지방공항 간 동반성장 대책을 먼저 추진한 뒤 성과를 보고 통합 여부를 다시 판단하기로 했다.

 

코레일과 SR은 이미 시작된 고속철도 운영체계 일원화를 통해 좌석 공급 확대와 운임·마일리지 제도 개선 등을 추진한다.

 

LH는 거꾸로 ‘분리’

대부분의 개편이 ‘통합’에 초점을 맞췄다면 LH는 정반대다.

 

정부는 LH가 동시에 수행해 온 택지개발·주택건설과 주거복지·자산관리 기능을 분리해 별도 기관으로 만들기로 했다.

 

택지 개발과 주택 건설은 ‘주택도시개발공사’가 맡고, 임대주택을 비롯한 주거복지와 자산 비축은 ‘주택도시자산공사’가 담당하는 방안이다.

 

정부는 수익성과 사업 속도가 중요한 개발 업무와 공공성이 우선되는 주거복지 업무를 한 기관이 동시에 맡으면서 서로 다른 목표가 충돌해 왔다고 보고 있다.

 

특히 LH 분리를 주택 공급 확대와 연결하겠다는 구상이다. 개발사업을 전담하는 기관의 의사 결정 속도를 높여 택지와 주택 공급을 앞당기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개발 부문과 복지 부문의 돈줄까지 완전히 끊는 것은 아니다.

 

개발공사가 벌어들인 이익 일부를 주택도시기금 내 별도 계정에 적립하고 이를 자산공사에 지원해 개발이익이 주거복지 재원으로 이어지도록 할 계획이다.

 

세부적인 LH 조직개편안은 국토교통부가 별도의 개혁안을 통해 내놓는다.

 

109개 기관 사라진다

이번 개편은 대형 공기업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와 시청자미디어재단은 ‘한국방송미디어통신진흥원’으로, 노사발전재단과 한국고용노동교육원은 ‘노사발전교육재단’으로 통합된다.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과 오송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도 하나의 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으로 합쳐진다.

 

한국중소벤처기업유통원과 공영홈쇼핑은 ‘중소기업마케팅진흥공사’로 묶어 중소기업 제품 발굴부터 컨설팅·입점·판매·성과관리까지 한 조직에서 담당하도록 한다.

 

모회사와 자회사, 소규모 기관 정리도 대대적으로 이뤄진다.

 

한국잡월드와 한국잡월드파트너즈가 통합되고, 정책금융기관의 시설관리 자회사들은 ‘정책금융FMC’, 고객관리 자회사들은 ‘정책금융CS’로 각각 묶인다.

 

식생활안전관리원과 식품안전정보원은 ‘식품안전정책개발원’으로, 국악방송과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은 ‘국악문화산업진흥원’으로 재편된다.

 

지역별 과학관과 박물관 등 12개 국립 전시·관람기관은 국립중앙박물관을 중심으로 협의체를 구성해 전시와 서비스 기능을 연계한다.

 

마지막 관문은 국회·노조

정부 구상대로 개편이 이뤄지면 전체 공공기관의 5곳 가운데 1곳이 사라지는 셈이다.

 

하지만 조직도를 새로 그리는 것만으로 개혁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일부 기관 통폐합과 분리를 위해서는 관련 법률을 고쳐야 해 국회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 수십 개 기관의 조직과 인력이 한꺼번에 이동하는 만큼 노동조합과의 협의도 최대 변수다.

 

정부는 통폐합 과정에서 구조조정 불안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용승계를 원칙으로 내세웠다.

 

허 차관은 “직원들의 고용승계를 보장하고 통폐합 전후 보수 등 처우가 나빠지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기관별 상황에 따라 한시적 정액수당 지급이나 선택적 복지비 확대, 경영평가 인센티브 등도 검토한다.

 

결국 이번 개편의 성패는 ‘109개 감축’이라는 숫자보다 통합한 기관에서 실제 중복 조직과 비용을 얼마나 줄이고, 분리되는 LH가 주택 공급 속도와 주거복지라는 두 목표를 얼마나 제대로 달성하느냐에 달려 있다.

 

정부가 꺼내든 공공기관 대수술이 간판을 바꾸는 데 그칠지, 공기업의 일하는 방식까지 바꾸는 개혁으로 이어질지가 다음 시험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