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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놈은 죽여도 될까”…‘유부녀 킬러’ 마지막 총성이 묻는 죄와 벌

법망 빠져나간 악인 처단해온 킹피셔…최종회 앞두고 뒤집히는 ‘사적 정의’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도 죽여도 되는가…사랑·복수·법의 마지막 충돌

 

용인신문 | 사람을 죽였는데도 시청자는 박수를 쳤다. 그가 죽인 사람이 더 나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법망을 빠져나간 범죄자, 누군가의 인생을 파괴하고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은 악인들이 총구 앞에 쓰러질 때마다 시청자는 묘한 통쾌함을 느꼈다. 그러나 MBC 금토드라마 ‘유부녀 킬러’가 최종회를 향해 가면서 그동안 애써 외면했던 질문이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도 누군가 마음대로 죽여도 되는가. 법이 심판하지 못한 사람을 개인이 대신 심판하는 것은 과연 정의일까.


‘유부녀 킬러’의 중심에는 평범한 아내이자 엄마처럼 살아가면서 동시에 ‘킹피셔’라는 이름의 저격수로 활동해온 유보나가 있다. 그가 겨눠온 대상은 대부분 법의 심판을 피해 간 악인들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살인은 처음부터 단순한 살인으로만 그려지지 않았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법이 하지 못한 일을 대신 해주는 ‘사적 응징’처럼 받아들이기 쉬웠고, 총성이 울릴 때마다 죄인을 대신 벌한다는 대리만족도 뒤따랐다. 그러나 드라마가 마지막을 향하면서 바로 그 지점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범죄자가 아닌 사람이 총에 맞는 사건이 등장하고, 킹피셔의 방식과 닮은 살인이 이어질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그동안 통쾌하게 바라봤던 살인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악인을 죽이면 정의가 되는가


여기서 ‘유부녀 킬러’는 단순한 킬러 액션극을 넘어선다.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똑같은데 피해자가 흉악범이면 통쾌하고, 선량한 사람이면 끔찍하다고 느낀다면 우리가 판단한 것은 살인이었을까, 아니면 죽은 사람이 ‘죽어 마땅한 사람인가’를 판단했던 것일까. 문제는 바로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 누가 죽어 마땅한 사람인지 누가 정할 것인가. 살인범은 죽여도 되는가, 아동학대범은 어떤가, 성폭력범은 어떤가, 수많은 사람의 재산을 빼앗아 한 가정을 무너뜨린 사기범은 어떤가. 그 선을 한 번 긋기 시작하면 결국 한 개인이 판사와 배심원, 사형집행인까지 동시에 맡게 된다.


킹피셔에게는 나름의 원칙이 있다. 아무나 죽이지 않고 악인을 골라 응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원칙이 가장 위험할 수도 있다. 자신이 옳다는 확신 때문이다. 자신은 악인을 정확하게 알아볼 수 있고, 자신이 내린 판단은 틀리지 않으며, 자신이 내리는 형벌은 정당하다고 믿는 순간 사람은 법 바깥에서 다른 사람의 생사까지 결정하게 된다. 정의를 위해 총을 들었다고 말하지만 그 총이 정의와 복수를 가르는 경계선을 넘어서는 것은 순간이다.

 

 

‘죄와 벌’이 던졌던 오래된 질문

 

이 장면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작품이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이다. 주인공 라스콜니코프는 자신이 죽인 사람을 단순한 피해자로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회에 해로운 인간 하나를 제거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자신의 살인에 명분을 부여한 것이다. 하지만 ‘죄와 벌’이 끝까지 묻는 질문은 살인 대상이 얼마나 악한 사람이었느냐가 아니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의 생사를 결정할 권리를 가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유부녀 킬러’의 유보나에게도 같은 질문이 돌아온다. 그가 죽인 사람들이 실제로 악인이었다고 해도 그가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피해자가 얼마나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는지와 별개로 한 개인이 다른 인간의 생명을 끊을 권한을 갖는 순간 법과 복수의 경계는 무너지기 시작한다. 법이 때로 답답하고 느리며 때로는 피해자의 분노만큼 충분한 처벌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도 분명하다. 증거 부족으로 범인이 풀려나기도 하고, 피해자가 보기에는 터무니없이 가벼운 형량이 내려지기도 한다. 그래서 현실에서도 사람들은 종종 “저런 사람은 죽어도 싸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말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순간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법은 왜 악인까지 보호하는가


법은 착한 사람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장치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가장 미워하는 사람에게조차 정해진 절차를 적용하기 위해 존재한다. 누군가를 범죄자로 판단하려면 증거가 필요하고, 재판을 거쳐야 하며, 피고인에게도 자신의 말을 할 기회를 줘야 한다. 그 과정은 답답하고 느리다. 그러나 그 불편한 과정이 사라지면 남는 것은 힘 있는 사람이 약한 사람을 심판하는 세상이다. 오늘 내가 확신하는 악인을 죽일 수 있다면 내일 누군가도 자신이 옳다고 믿으며 나를 악인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그래서 법치주의의 핵심은 단순하다.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도 개인이 마음대로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범죄자를 미워할 수 있고 가장 무거운 형벌을 요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형벌을 직접 집행할 권리까지 개인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국가가 정한 법과 절차를 거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법은 악인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지만 실제로는 우리 모두가 누군가의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 희생되지 않도록 지키는 최소한의 울타리다.

 

 

남편의 사랑은 어디까지 허용될까


최종회를 앞두고 또 하나 눈여겨볼 대목은 유보나의 남편 권태성의 선택이다. 그는 아내가 자신이 알고 있던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을 죽인 킹피셔라는 사실과 마주하게 된다. 그럼에도 아내를 보호하려는 선택을 한다면 또 다른 질문이 생긴다. 사랑하는 사람의 범죄를 어디까지 감쌀 수 있느냐는 것이다. 아내를 지키는 것은 사랑일까, 아니면 범죄를 은폐하는 것일까.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과 범죄는 법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는 원칙이 충돌하는 순간 권태성 역시 유보나 못지않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반대편에는 킹피셔를 추적하는 형사가 있다. 결국 마지막에 부딪히는 것은 사람과 사람이 아니라 사랑과 복수, 그리고 법이다. 가족을 지키려는 마음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 피해자를 대신해 악인을 응징하는 행위는 어디까지 정의라고 부를 수 있는가, 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 개인은 법 바깥으로 나가도 되는가. ‘유부녀 킬러’가 마지막에 풀어야 할 문제는 범인이 누구인지보다 오히려 이 질문들에 가깝다.

 

 

킹피셔가 받아야 할 ‘벌’은 무엇인가


그래서 최종회의 가장 중요한 관전포인트는 유보나가 죽느냐 살아남느냐가 아닐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자신이 해온 일을 끝까지 정의라고 믿을 것인지, 아니면 아무리 명분이 있었다 해도 자신 역시 다른 인간의 생명을 마음대로 결정해온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것인지다. 경찰에 체포될 수도 있고 가족과 헤어질 수도 있으며 예상하지 못한 또 다른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결말을 택하더라도 드라마가 마지막까지 놓쳐서는 안 될 질문은 하나다. 정의로운 살인은 존재할 수 있는가.


시청자는 지금까지 킹피셔의 총에 악인이 쓰러질 때마다 어느 정도 통쾌함을 느껴왔다. 현실에서는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 사람들을 뉴스로 수없이 봐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드라마 속 총 한 발이 답답한 현실을 대신 해결해주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드라마가 돌려줘야 할 것은 통쾌함보다 불편함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지금까지 너무 쉽게 “저런 인간은 죽어도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는지를 되묻게 하는 것이다.


악인을 미워하는 것과 악인을 죽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죄를 지은 사람은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 벌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사람이 개인이 되는 순간 정의는 언제든 복수로 바뀔 수 있다. ‘유부녀 킬러’의 마지막 총성이 어디로 향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드라마가 제대로 끝난다면 그 총구가 겨누는 진짜 대상은 한 명의 악인이 아니라 시청자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던 위험한 확신일지도 모른다.

 

 

“나쁜 사람이라면 죽여도 괜찮다.”


‘유부녀 킬러’의 마지막은 그 생각에 질문을 던져야 한다. 죄는 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도 개인이 마음대로 생명을 빼앗을 수는 없다. 누구도 법 위에서 다른 인간을 단죄할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