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수백억원짜리 땅을 가진 부모가 있다. 그대로 자녀에게 물려주면 막대한 상속세를 내야 한다. 그런데 그 땅에서 식당이나 제과점, 제조·판매 사업 등을 10년 이상 실제로 운영한 뒤 요건을 갖춰 자녀에게 사업을 넘긴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최근 고액자산가들의 상속 전략이 단순히 “재산을 어떻게 나눠줄까”에서 “재산을 어떤 사업으로 만들어 넘길까”로 바뀌고 있다.
최근 가장 화제가 된 것은 수도권의 대형 베이커리카페였다. 넓은 땅에 대형 건물을 짓고 빵과 커피를 판매하는 이른바 ‘교외형 베이커리카페’ 가운데 일부가 가업상속공제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국세청까지 실태조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오해하면 안 된다. 가업상속공제를 받을 수 있는 사업이 베이커리카페뿐인 것은 아니다.
음식점도 된다…왜 ‘빵집’만 유명해졌을까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 시행령’은 가업상속공제를 받을 수 있는 업종을 별도로 정하고 있다. 제조업과 건설업, 도매·소매업 등이 포함돼 있고 음식점 및 주점업 가운데서는 ‘음식점업’도 대상이다. 따라서 요건만 제대로 갖춘다면 일반 음식점이나 한식당, 외식업체 등도 가업승계 대상 사업이 될 수 있다.
반면 일반적인 커피전문점처럼 음료를 주로 판매하는 ‘음료점업’은 가업상속공제 대상 업종에 포함되지 않는다. 바로 이 차이 때문에 커피만 파는 카페보다는 직접 빵을 만들어 파는 제과점 형태의 베이커리카페가 유독 상속 절세 시장에서 주목받았다. 국세청 역시 올해 대형 베이커리카페 실태조사에 나서면서 “커피전문점은 대상이 아니지만 제과점업은 대상”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짚었다.
즉 핵심은 ‘카페’가 아니다. 세법상 가업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사업을 실제로 오랫동안 경영하느냐가 핵심이다.
300억원 땅 그냥 넘기면 상속세 136억원
세금 차이는 상상 이상으로 크다.
국세청이 올해 공개한 사례를 보면 서울 근교에 300억원 상당의 토지를 보유한 사람이 외동 자녀에게 이를 그대로 상속할 경우 일정한 가정을 적용하면 상속세가 약 136억2000만원에 달한다.
그런데 해당 토지에서 가업상속공제 대상 사업을 실제로 10년 이상 경영하고 다른 요건까지 갖춰 자녀에게 승계할 경우 최대 300억원의 가업상속공제를 받을 가능성이 생긴다. 국세청이 제시한 단순 사례에서는 상속세가 사실상 0원이 될 수도 있다.
현재 가업상속공제 한도는 피상속인의 가업 경영기간에 따라 달라진다. 10년 이상 20년 미만이면 최대 300억원, 20년 이상 30년 미만이면 최대 400억원, 30년 이상이면 최대 600억원이다.
136억원을 내느냐, 공제 요건을 갖춰 세 부담을 크게 낮추느냐. 고액자산가들이 10년, 20년 전부터 상속 설계에 들어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서 이제는 ‘땅’을 그냥 두지 않는다
과거 상속 준비라고 하면 아파트를 자녀에게 미리 증여하거나 현금을 나눠주는 모습을 먼저 떠올렸다. 요즘 자산가들의 전략은 훨씬 복잡해졌다.
수십년 보유한 토지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가 상속하면 그 땅은 상속재산이다. 하지만 그 부지에서 세법상 인정되는 사업을 실제로 운영하고 토지와 건물이 그 사업에 직접 사용되면 일정 범위에서 가업용 자산으로 평가받을 가능성이 생긴다.
그래서 상속을 준비하는 자산가 입장에서는 완전히 다른 질문이 등장한다.
‘이 땅을 10년 뒤 그냥 물려줄 것인가.’ 아니면 ‘이 땅에서 지금부터 사업을 시작해 가업으로 키운 뒤 넘길 것인가.’
베이커리카페가 될 수도 있고 음식점이 될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 제조업체나 도소매업체 등 다른 업종의 사업이 들어올 수도 있다. 법에서 정한 업종과 기업 규모, 경영기간, 실제 사업 내용 등 여러 요건을 충족한다면 가업상속공제 검토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식당 간판만 걸어놓으면 된다? 천만의 말씀
그렇다고 수백억원짜리 땅에 식당 하나 차리고 사업자등록증만 만들어 놓으면 상속세가 사라진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가업상속공제는 피상속인이 원칙적으로 10년 이상 해당 가업을 계속 경영해야 하고 기업 규모와 업종 요건을 갖춰야 한다. 법인의 경우 지분보유와 대표이사 재직 요건도 있으며 상속인 역시 일정한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상속 뒤에도 일정 기간 가업과 자산을 유지해야 하는 사후관리 규정이 따라붙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그 사업을 했느냐다.
국세청이 최근 베이커리카페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업자등록은 ‘제과점업’으로 해놓고 실제로는 빵을 직접 만들지 않은 채 소량의 완제품 케이크만 가져다 놓고 커피와 차 판매가 대부분이라면 사실상 음료점이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 국세청 조사 사례에서는 제과 관련 매입보다 커피·티 등 음료 원재료 매입 비중이 두 배 이상 높은 곳도 발견됐다. 국세청은 이런 사업장이 공제 대상 업종으로 위장 등록한 것은 아닌지 확인하고 있다.
주차장·정원까지 전부 사업용 땅? 그것도 따져본다
대형 외식업체나 베이커리카페가 상속 설계에서 매력적으로 보이는 또 하나의 이유는 넓은 토지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수백대의 차량을 세울 수 있는 주차장, 정원, 야외 테이블, 산책 공간 등을 조성하면 상당한 면적의 토지가 사업장에 포함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함정이 있다.
사업자등록상 사업장 부지라고 적었다고 모두 가업용 자산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 영업에 사용되는 토지인지 여부를 따져야 한다.
국세청이 공개한 사례 가운데는 카페 건물이 약 60평인데 부수토지가 500여평에 달하고 그 안에 사업주 부부가 사는 전원주택까지 있는 경우도 있었다. 국세청은 이 가운데 어디까지가 실제 사업용 자산인지 확인하고 있다.
결국 “내 땅에 식당 하나 지으면 그 땅 전부가 가업상속공제 대상이 된다”는 식의 접근은 위험하다.
70대 아버지가 갑자기 식당 사장? 실제 경영했는지 본다
경영자 이름만 올려놓는 방법도 통하지 않는다.
국세청은 수십년 동안 골프연습장과 부동산업 등을 해오던 70대 아버지가 자신의 수도권 건물에 갑자기 200평 규모의 대형 베이커리카페를 개업한 사례를 공개했다. 공교롭게도 자녀는 카페 개업 직전 직장을 그만뒀다.
국세청은 이 경우 사업자 명의가 아버지로 돼 있다는 사실만 보지 않고 실제로 누가 카페를 운영했는지를 확인하겠다는 입장이다.
80대 어머니가 자녀들과 가족법인을 만들고 공동대표가 된 사례 역시 마찬가지다. 경영 경험이 전혀 없는 고령의 부모가 갑자기 대표로 등장했다면 실제 경영자가 누구인지 따져보겠다는 것이다.
‘재산을 물려주는 시대’에서 ‘사업을 만들어 물려주는 시대’로
최근 상속 시장에서 벌어지는 변화는 그래서 의미가 크다.
상속세 절세가 더 이상 사망 직전에 현금과 부동산을 나누는 작업에 머물지 않는다. 앞으로는 부모가 50대나 60대부터 10년, 20년 뒤를 내다보고 사업을 만들고 자녀가 그 사업에 참여하며 장기간 가업승계 요건을 쌓아가는 방식이 더욱 주목받을 가능성이 있다.
베이커리카페가 먼저 세간의 관심을 받았을 뿐이다.
식당이 될 수도 있고, 제조업체가 될 수도 있다. 도소매 사업이 될 수도 있다. 법이 허용하는 업종 가운데 자신의 부동산과 기존 사업, 자녀의 경영 능력을 결합할 수 있는 업종을 찾으려는 ‘상속 컨설팅’이 더욱 정교해질 가능성이 있다.
다만 국세청 역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정상적으로 오랫동안 회사를 키워 자녀에게 넘기는 가업승계는 지원하되, 고가 부동산을 사실상 그대로 물려주기 위해 겉모습만 사업체로 꾸미는 편법은 걸러내겠다는 것이다. 국세청은 이번 베이커리카페 실태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문제점을 분석해 제도 개선도 관계 부처에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상속세 절세의 핵심은 ‘카페’가 아니라 ‘시간’
결국 부자들이 보는 것은 커피도 빵도 아니다. 10년이라는 시간과 가업이라는 세법상 지위다.
수백억원의 땅을 그대로 보유했다가 상속하느냐, 그 땅에서 정상적인 사업을 만들어 오랫동안 운영한 뒤 가업으로 승계하느냐에 따라 세 부담에 큰 차이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상적인 사업을 장기간 운영하며 법이 정한 혜택을 받는 ‘절세’와 상속세를 피하려고 형식적인 사업체를 만들어놓는 ‘편법’ 사이에는 분명한 선이 있다.
그래서 앞으로 수도권 외곽의 화려한 베이커리카페뿐 아니라 대형 음식점과 가족법인, 각종 사업장을 바라보는 세무당국의 시선도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겉으로는 손님에게 밥과 빵을 파는 가게지만, 어떤 자산가에게는 10년 뒤 수백억원의 재산을 다음 세대로 넘기기 위해 오늘부터 돌아가기 시작한 ‘상속 시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이 기사는 국세청의 가업상속공제 관련 자료와 대형 베이커리카페 실태점검 사례, ‘상속세 및 증여세법’ 및 시행령을 참고해 작성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