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9억6000만원짜리 부동산이 4800만원까지 내려왔다. 1억5300만원으로 평가됐던 오피스텔은 예정된 공매 회차에서 459만원까지 가격이 낮아진다. 2억2000만원이 넘는 임야도 2000만원대에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웬만한 중고차 가격으로 부동산을 살 수 있을 것 같은 믿기 어려운 숫자들이지만, 모두 용인 지역 공매시장에서 등장한 가격이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고 있다는 뉴스가 이어지는 용인에서 한쪽에서는 수억원짜리 부동산이 감정가의 몇 퍼센트 수준까지 떨어져도 주인을 찾지 못하는 ‘요지경 공매시장’이 펼쳐지고 있다.
9억6000만원 상가가 4800만원으로
가장 눈길을 끄는 물건은 기흥구에 있는 한 근린생활시설이다. 이 부동산의 감정평가액은 무려 9억6000만원이다. 건물 면적은 53.3㎡로 크지 않지만 최초 평가금액만 놓고 보면 평범한 상가 한 칸이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몸값이 높았다.
그러나 막상 공매시장에 나오자 사정은 완전히 달라졌다. 9억6000만원에서 시작된 공매는 유찰을 거듭하며 8억6400만원, 7억6800만원, 6억7200만원, 5억7600만원으로 떨어졌고 이후에도 좀처럼 주인을 찾지 못했다. 올해 들어서도 가격은 계속 낮아져 1억원 아래까지 내려가는 회차가 이어졌다. 예정된 회차에서는 4800만원까지 공매가격이 낮아진다. 감정가와 단순 비교하면 95%가 사라지고 5%만 남는 셈이다. (물건관리번호 2023-13884-001)
숫자만 보면 “4800만원에 9억원짜리 부동산을 산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러나 가격이 이 정도까지 떨어졌다는 사실은 오히려 해당 물건의 실제 이용 상황과 점유관계, 주변 상권, 관리비 체납 여부, 권리관계 등을 더욱 꼼꼼히 살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공매에서 ‘싸다’와 ‘좋은 물건’은 전혀 다른 말이다.
1억5300만원 오피스텔은 459만원까지
수지구에서는 더욱 놀라운 숫자가 등장한다. 한 오피스텔의 감정평가액은 1억5300만원이다. 전용면적 25.69㎡ 규모로 공매 초기만 하더라도 흔히 볼 수 있는 소형 오피스텔 가격이었다.
하지만 이 물건 역시 공매가 반복되면서 가격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온비드 자료에서는 지난 7월 당시 이미 유찰횟수가 15회에 달했다. 이후에도 공매 일정이 이어지면서 예정된 회차의 최저입찰가격은 459만원 수준까지 내려간다. 감정가와 비교하면 약 3%에 불과하다. (물건관리번호 2024-05180-001)
웬만한 중고 경차 한 대 값으로 수도권 오피스텔을 살 수 있다는 숫자다. 그러나 반복된 유찰 기록 자체가 입찰자에게는 중요한 정보다. 그동안 시장에서 선택받지 못했다면 단순히 가격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이유가 무엇인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4억4200만원 아파트도 2억원대로
공매라고 해서 상가와 토지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처인구의 대단지 아파트 한 세대도 공매시장에 등장했다. 감정평가액은 4억4200만원으로 전용면적 90.51㎡ 규모다.
이 물건은 공매 회차가 진행될수록 가격이 단계적으로 낮아져 예정된 회차에서는 최저입찰가격이 2억6520만원까지 내려간다. 감정가의 약 60% 수준이다. (물건관리번호 2026-08969-001)
앞선 상가나 오피스텔처럼 90% 이상 가격이 떨어지는 사례는 아니지만 아파트는 일반 실수요자에게 익숙하고 주변 매매가격과 비교하기 쉽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 만하다. 다만 실제 점유자가 누구인지, 임차인이 있는지, 낙찰 이후 명도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없는지 등을 확인해야 한다.
2억2433만원 임야도 2243만원
땅도 예외가 아니다. 기흥구의 한 임야는 감정가가 2억2433만원으로 평가됐지만 예정된 공매 회차의 최저입찰가격은 2243만원까지 낮아진다. 감정평가액의 약 10분의 1이다. (물건관리번호 2026-03825-001)
2억원짜리 땅이 2000만원대로 내려왔다고 하면 누구라도 귀가 솔깃할 수 있다. 하지만 토지는 아파트보다 확인해야 할 것이 훨씬 많다. 도로와 접해 있는지, 실제 건축이나 개발이 가능한지, 경사도는 어떤지, 도시계획상 어떤 규제를 받고 있는지에 따라 가치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임야는 아무리 싸게 낙찰받아도 활용할 방법이 없다면 오랫동안 보유 부담만 안을 수도 있다.
집값 뛰는 용인, 한쪽에선 ‘95% 할인’
용인 공매시장을 들여다보면 같은 도시 안에서 전혀 다른 부동산 세상이 펼쳐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아파트 신고가와 반도체 산업단지 개발에 따른 땅값 상승 기대가 커지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감정가 9억6000만원짜리 부동산이 수천만원까지 내려가도 주인을 찾지 못한다.
상가 9억6000만원이 4800만원, 오피스텔 1억5300만원이 459만원, 임야 2억2433만원이 2243만원. 숫자만 떼어놓고 보면 ‘부동산 폭탄세일’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공매는 일반 부동산 매매와 성격이 다르다. 세금 체납 등으로 압류된 재산이나 공공기관 등이 처분하는 재산을 공개경쟁 방식으로 매각하며, 상당수 물건은 한국자산관리공사가 운영하는 온비드를 통해 온라인 입찰이 진행된다.
‘몇 % 할인’보다 중요한 건 ‘왜?’
공매에서 가장 위험한 착각은 감정가와 최저입찰가의 차이를 그대로 ‘할인율’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감정가는 평가 시점과 현재 시장 상황에 따라 실제 거래가격과 차이가 날 수 있고, 반복 유찰된 물건에는 시장 참여자들이 선뜻 들어가지 못한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점유와 명도 문제부터 임차인의 권리, 체납 관리비, 인수해야 할 권리 여부, 토지 이용 규제, 주변 시세와 실제 수익성까지 따져야 한다. 특히 상가의 경우 공실이 장기화될 가능성과 관리비 부담, 임대수익을 함께 살펴야 한다.
그래서 공매시장에서는 역설적으로 가격이 많이 떨어진 물건일수록 ‘얼마나 싸졌나’보다 ‘왜 이렇게까지 떨어졌나’를 먼저 물어야 한다.
9억6000만원이 4800만원까지 내려왔다면 “9억원짜리를 4800만원에 산다”는 계산보다 수많은 공매 회차 동안 왜 새 주인이 나타나지 않았는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 1억5300만원짜리 오피스텔이 수백만원대로 내려왔다면 ‘대박 물건’이라는 생각에 앞서 반복된 유찰의 원인을 확인해야 한다.
공매의 진짜 가격은 숫자 뒤에 있다
용인 공매시장은 지금 숫자만 놓고 보면 그야말로 요지경이다. 수억원짜리 상가와 오피스텔, 아파트와 땅이 공매 회차가 거듭될 때마다 새로운 가격표를 달고 있다.
처인구의 공인중개사 S씨는 “공매의 진짜 가격은 온비드 화면에 적힌 최저입찰가격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며 “그 부동산이 안고 있는 권리와 점유관계, 활용 가능성, 주변 시세와 향후 비용까지 모두 계산한 뒤에야 실제 가치가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결국 공매시장에서 가장 싼 물건이 반드시 가장 좋은 물건은 아니다. 때로는 사람들이 계속 외면했던 이유까지 포함한 것이 그 물건의 진짜 가격일 수 있다는 얘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