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올해 추석 선물시장이 두 갈래로 갈라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5만원도 쓰지 않는 실속형 선물이 쏟아져 나가고, 다른 한쪽에서는 한 세트에 수십만 원, 많게는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선물이 팔린다. 고물가와 경기 불확실성이 이어지면서 무조건 지갑을 닫는 대신, 평범한 선물에는 비용을 줄이고 꼭 챙겨야 할 상대에게는 오히려 돈을 더 쓰는 ‘선택적 소비’가 명절 선물시장에서도 뚜렷해지고 있다.
유통업계의 올해 추석 사전예약 판매 실적을 보면 이 같은 흐름은 숫자로 확인된다. 대형마트에서는 5만원 미만 상품이 판매의 절반을 훌쩍 넘지만, 백화점에서는 50만원을 넘는 선물세트가 전체 판매의 40% 안팎까지 올라왔다. ‘싸야 팔린다’거나 ‘비싸면 안 팔린다’는 기존 공식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시장이 된 것이다.
마트 소비자는 ‘5만원 벽’…싸되 평범하면 외면
대형마트에서는 여전히 가격이 가장 강력한 구매 기준이다. 이마트의 추석 선물세트 예약판매 가운데 5만원 미만 상품 비중은 77.4%에 달했다. 5만~10만원대가 14.5%, 10만원 이상은 8.1%였다. 롯데마트 역시 5만원 미만 상품이 57.5%로 가장 많았고 5만~10만원대가 33.5%를 차지했다.
하지만 싸기만 한 상품이 잘 팔리는 것은 아니다. 소비자들은 같은 가격이라면 내용물이 더 다양하거나 기존 명절 선물에서 보기 어려웠던 구성을 고르고 있다. 이마트의 수입과일 선물세트 매출은 지난해보다 157.6% 뛰었고 롯데마트의 열대과일 선물도 135% 증가했다. 키위와 망고, 과일바구니처럼 선택지가 다양해지면서 전통적인 사과·배 중심의 과일 선물시장에도 변화가 나타난 것이다.
돼지고기 선물 역시 달라졌다. 이마트의 돈육 선물 매출은 63.3% 늘었다. 단순한 삼겹살이나 목살 묶음보다 돈마호크 등 평소 쉽게 사지 않는 부위를 앞세운 상품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았다. 가격은 낮추되 ‘선물답게 보이는 구성’을 원하는 수요가 커졌다는 의미다.
백화점에선 50만원도 넘었다…‘특별한 한 번’에 지갑 연다
백화점에서는 정반대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의 추석 예약판매 가운데 50만~100만원대 상품은 30.5%, 100만원 이상 상품은 14.2%였다. 두 가격대를 합치면 50만원 이상 고가 선물이 전체의 44.7%에 달한다. 현대백화점에서도 50만원 이상 선물 비중이 37.8%로 집계됐다.
고가 상품의 중심에는 역시 한우가 있다. 신세계백화점에서는 27만원짜리 암소한우 세트가 판매 상위권에 올랐고 320만원에 이르는 초고가 한우 세트도 시장에 나왔다. 현대백화점에서는 69만원짜리 한우 세트가 판매 시작 이후 품절됐고, 정육 전체 매출도 전년보다 69% 증가했다.
와인의 상승세는 더욱 가파르다. 신세계백화점의 와인 선물 매출은 지난해보다 431.9% 늘었다. 단순히 먹고 마시는 상품이라기보다 취향과 희소성을 보여줄 수 있는 선물로 소비되는 경향이 강해진 결과로 풀이된다.
백화점 전체 추석 예약판매도 크게 늘었다. 신세계백화점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2.1%, 현대백화점은 61% 증가했으며 롯데백화점도 약 20% 신장했다. 경기 불확실성이 명절 소비 자체를 얼어붙게 만들기보다는 소비 대상을 골라 지출하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가성비’ 다음은 ‘가치비’…수백만원 달항아리까지 선물시장에
올해 시장에서 눈에 띄는 또 하나의 변화는 선물의 범위가 식품을 넘어선다는 점이다. 신세계백화점은 국가유산청과 협업해 백자 달항아리와 청화백자 항아리 등을 추석 상품으로 내놓았다. 가격은 수백만원대지만 희소성과 소장가치를 앞세워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현대백화점도 올해 처음 명절 선물군에 뷰티·리빙 상품을 본격적으로 넣었다. 관련 상품은 하루 평균 100건 이상의 상담이 이어지며 당초 목표를 웃도는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명절 선물이라는 말에서 과일·한우·굴비부터 떠올리던 공식도 조금씩 깨지고 있는 셈이다.
대형마트에서도 고가 상품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마트의 20만원 이상 선물세트 매출은 전년보다 75.5% 늘었다. 양주는 115.1%, 굴비는 79.9%, 한우는 29% 증가했다. 롯데마트 역시 10만원 이상 상품 비중이 지난해 5.5%에서 올해 9.0%로 뛰었다.
결국 올해 추석 선물시장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단순한 ‘고가 대 저가’가 아니다. 여러 사람에게 돌리는 선물에는 가격 부담을 낮추고, 부모나 거래처 등 특별한 상대에게는 품질과 희소성이 확실한 상품을 고르는 소비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불황이라고 모두 싼 것만 찾는 것도, 고급 소비가 살아났다고 모두 비싼 것만 찾는 것도 아니다. 소비자는 오히려 더 계산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싸게 살 때도 평범한 상품은 피하고, 비싸게 살 때도 그 가격을 납득할 이유가 있어야 지갑을 연다. 올해 추석 유통가의 ‘실속형과 초고급의 동시 성장’은 고물가 시대 소비가 단순히 위축된 것이 아니라, 지출할 곳과 줄일 곳을 더 선명하게 가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