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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수원 왕갈비·이천 쌀은 아는데, 용인은?”…110만 도시 대표 먹거리를 찾아서

청경채·성산포크·쑥구리단자·여리향쌀까지
시 지정 특산품 12개 있지만 ‘용인 하면 이것’ 대표 브랜드는 아직

 

용인신문 | ‘수원’ 하면 왕갈비가 떠오르고, ‘이천’ 하면 쌀이 생각난다. 횡성에는 한우가 있고 영광에는 굴비가 있다. 지역 이름을 듣는 순간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먹거리는 단순한 농축산물이 아니라 도시를 기억하게 만드는 브랜드가 된다. 그렇다면 인구 110만명을 넘어선 용인은 어떨까. ‘용인 하면 떠오르는 음식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선뜻 하나를 답하기가 쉽지 않다.

 

용인에도 특산품은 적지 않다. 시가 지정·육성하는 지역 특산품만 12개에 이르고, 백옥쌀을 비롯해 청경채, 성산포크, 여리향쌀, 쑥구리단자 등 농산물과 축산물, 전통식품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문제는 품목이 없어서가 아니라 시민과 외지인에게 각인된 ‘대표 선수’가 뚜렷하지 않다는 데 있다.

 

특산품은 12개인데…‘용인 하면 이것’이 없다

용인의 대표 농산물로 가장 먼저 꼽히는 것은 백옥쌀이다. 처인구 일대에서 생산되는 쌀을 중심으로 오랫동안 용인을 상징하는 농산물로 육성돼 왔다. 학교급식이나 지역 행사, 각종 홍보물에서도 백옥쌀이라는 이름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천쌀이나 철원 오대쌀처럼 지역 밖 소비자에게까지 강하게 각인됐느냐고 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기흥구에 사는 직장인 김모(43)씨는 “용인에 오래 살았지만 ‘용인 대표 음식이 뭐냐’고 물으면 바로 떠오르는 게 없다”며 “백옥쌀 정도는 들어봤지만 청경채나 성산포크가 용인 특산품이라는 것은 최근에야 알았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지역에 여행을 가면 일부러 그 지역 음식을 찾아 먹는데, 정작 용인에서는 무엇을 먹어야 지역 음식을 먹었다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청경채도 용인을 대표할 만한 품목이다. 시설채소 재배가 발달한 지역 특성을 바탕으로 생산량과 품질 경쟁력을 갖추고 있지만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는 마트 진열대의 청경채가 용인산인지 다른 지역산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산지는 존재하지만 브랜드가 소비자의 기억까지 연결되지 못하는 셈이다.

 

성산포크 같은 축산 브랜드도 비슷하다. 지역에서 생산·유통되는 돼지고기의 품질을 내세울 수 있지만 ‘용인에 가면 반드시 먹어야 하는 음식’으로 연결되는 단계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여리향쌀이나 쑥구리단자처럼 이름 자체에 이야깃거리가 있는 품목도 있지만 시민 가운데서도 모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수지구 주민 이모(55)씨는 “백옥쌀은 알지만 나머지는 이름을 들어도 어디에서 살 수 있는지 모르겠다”며 “특산품이라고 지정하는 것보다 시민이 평소 마트나 식당에서 쉽게 접할 수 있어야 진짜 지역 브랜드가 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특산품 하나하나의 상품성보다는 이들을 하나의 ‘용인 먹거리 브랜드’로 묶어 보여주는 전략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농산물에서 ‘한 끼 경험’으로 바뀌어야

지역을 대표하는 먹거리는 단순히 생산량이 많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관광객이 현지에서 먹고, 선물로 사고, 다시 온라인으로 주문하면서 지역 이름과 음식이 연결돼야 한다. 수원 왕갈비 역시 축산물 그 자체보다는 ‘수원에 가면 갈비를 먹는다’는 경험이 브랜드를 만들었다. 전주비빔밥과 춘천닭갈비도 마찬가지다.

 

용인 특산품의 과제도 여기에 있다. 백옥쌀을 쌀 포대에 담아 판매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백옥쌀로 만든 밥과 떡, 빵, 디저트까지 소비자가 직접 경험하도록 해야 한다. 청경채는 지역 식당 메뉴와 연결하고, 성산포크는 용인에서만 맛볼 수 있는 대표 고기 메뉴로 키우는 방식이다. 쑥구리단자 같은 전통음식은 지역의 역사와 이야기를 결합하면 관광상품으로 확장할 수 있다.

 

최근 지방자치단체들이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베이커리 대회나 음식축제, 로컬푸드 직매장, 관광상품 개발에 공을 들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원물 판매만으로는 지역 이름을 알리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에버랜드·민속촌 관광객, 지역 먹거리 소비로 이어지나

용인이 다른 도시보다 유리한 점도 분명하다. 에버랜드와 한국민속촌 등 전국적인 관광지를 갖고 있고 연간 수많은 외지인이 용인을 찾는다. 그러나 관광객의 이동이 곧바로 지역 농특산물 소비로 이어지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포곡읍에서 자영업을 하는 박모(58)씨는 “주말이면 외지에서 용인 재래시장을 찾는 사람은 정말 많은데 그 사람들이 용인 농산물이나 음식을 알고 돌아가는지는 의문”이라며 “에버랜드나 민속촌에 온 관광객이 자연스럽게 지역 음식점이나 특산품 판매장으로 이동할 수 있는 연결고리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관광객이 용인에 와서 무엇을 먹고 어떤 특산품을 사야 하는지 명확한 동선이 보이지 않는다면 관광객 숫자가 많아도 지역 브랜드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주요 관광지와 특산품 판매장, 로컬푸드 매장, 지역 음식점을 연결하는 먹거리 관광 코스가 필요한 이유다.

 

시민 접근성도 중요하다. 용인에서 생산되는 특산품이 정작 용인 시민의 일상 식탁에서 얼마나 자주 소비되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농특산물 브랜드가 지역 행사 때만 등장하는 홍보품에 머무른다면 장기적인 도시 브랜드로 성장하기 어렵다.

 

12개를 알리는 것보다 ‘하나’를 기억시키는 전략

용인은 반도체 국가산업단지와 플랫폼시티 등 대형 개발사업을 통해 산업도시 이미지를 빠르게 키우고 있다. 하지만 도시의 정체성은 일자리와 산업단지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그 도시를 방문하고 기억하게 만드는 것은 음식과 문화, 생활의 경험이다.

 

특산품 12개를 모두 똑같은 비중으로 알리는 방식보다 먼저 용인을 대표할 핵심 먹거리 한두 개를 집중적으로 키우고 나머지 품목을 연결하는 전략도 검토할 만하다. 백옥쌀을 중심으로 청경채와 성산포크를 엮은 ‘용인 밥상’을 만들거나,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대표 디저트·간편식·기념품을 개발하는 방식이다.

 

결국 용인에 특산품이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많아서 어느 하나도 강하게 기억되지 않는 것이 문제에 가깝다. 110만 대도시 용인이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는 12개의 이름을 더 많이 알리는 것이 아니라, 시민과 관광객에게 ‘용인에 가면 이것만큼은 먹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대표 먹거리를 만드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