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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정부, 전세 시장 공식 바꾼다 … HUG가 보증금 '운용'

집주인에 정기수익 지급 … 10월부터 참여 임대인 모집

 

 

용인신문 | 세입자가 수억 원의 보증금을 집주인에게 맡기고, 계약이 끝날 때 다시 돌려받는 방식. 수십 년간 한국 전세제도를 지탱해 온 이 익숙한 공식에 변화가 시작된다.

 

정부가 오는 10월부터 시행을 준비 중인 ‘전월세 안심신탁’은 전세보증금의 흐름부터 바꾼다.

 

세입자가 전세금을 집주인에게 직접 주는 대신 주택도시보증공사(이하 HUG)에 맡기고, 계약이 끝날 때도 HUG가 세입자에게 직접 돌려주는 방식이다.

 

집주인은 전세보증금을 직접 사용할 수 없다. 대신 HUG가 운용한 자금을 토대로 매달 일정한 약정수익을 받는다. 전세를 원하는 세입자에게는 보증금 안전성을 높이고, 월세수익을 원하는 집주인에게는 매달 현금이 들어오는 구조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전세보다 월세를 택하는 집주인이 크게 늘고 전세사기와 보증금 미반환 사고로 세입자의 불안도 커진 상황에서, 정부가 사실상 ‘보증금을 집주인에게 맡기지 않는 전세’를 시장에 내놓는 셈이다.

 

정부가 새로운 임대차 방식을 꺼내 든 배경에는 빠르게 변한 전월세시장이 있다.

 

올해 1~7월 전국 전월세 거래에서 월세가 차지한 비중은 68.3%에 달했다. 임대차 계약 10건 가운데 약 7건이 월세였다는 의미다. 지난해 같은 기간 61.8%와 비교하면 1년 만에 6.5%포인트 높아졌다.

 

월세 비중은 2022년 51.5%에서 2023년 55.0%, 2024년 57.3%로 꾸준히 상승했다. 서울은 올해 1~7월 월세 비중이 69.7%까지 올라갔고, 연립·다세대 등 비아파트에서는 전국 월세 비중이 80.4%에 달했다.

 

아파트 시장도 예외가 아니다. 같은 기간 아파트 전월세 거래 가운데 월세 비중은 52.4%로 절반을 넘어섰다.

 

전세가 줄어든 이유는 집주인과 세입자 양쪽에서 동시에 나타난다. 집주인은 목돈인 전세보증금보다 매달 들어오는 월세를 선호하는 경우가 늘었다.

 

반면 세입자는 전세사기와 역전세, 보증금 미반환 사고를 겪으면서 전세계약 자체를 부담스러워하기 시작했다.

 

한쪽은 ‘현금흐름’을 원하고 다른 한쪽은 ‘보증금 안전’을 요구한다. 안심신탁은 이 충돌을 HUG가 중간에 들어가 해결해 보겠다는 제도다.

 

△ 전세금은 HUG, 집주인은 매달 수익

안심신탁 구조에서 가장 큰 변화는 돈을 누가 보관하느냐에 있다.

 

기존 전세계약에서는 세입자가 전세금을 집주인 계좌로 보낸다. 이후 그 돈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사실상 집주인의 영역이다. 집주인이 대출을 갚거나 다른 부동산을 구입할 수도 있고, 투자자금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문제는 계약 종료 때다. 집주인의 자금 사정이 나빠졌거나 주택가격이 하락하면 세입자가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안심신탁은 이 구조 자체를 차단한다.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을 HUG가 받아 관리하고, 집주인에게 넘기지 않는다.

 

따라서 계약 만료 시 집주인의 자금 사정과 관계없이 HUG가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는 것이 기본 구조다.

 

집주인은 보증금을 직접 사용할 수 없는 대신 정기적인 수익을 받는다. 정부와 HUG가 현재 안내하는 약정수익률은 연 4~5% 수준이다. 쉽게 말하면 세입자는 ‘전세’를 살고 집주인은 ‘월세와 비슷한 현금흐름’을 받는 구조다.

 

△ 월세 74만 원 집이 전세가 된다면

제도의 장점은 실제 계산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정부가 제시한 서울 연립·다세대 주택 사례를 보면 매매가격이 3억 원이고 전세가격이 2억 원인 주택에서 세입자가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74만 원을 내고 있다고 가정한다.

 

이 집을 안심신탁을 이용해 전세 2억 원으로 바꾸고 세입자가 전세금의 80%인 1억6000만 원을 연 3.97% 금리로 대출받으면 월 이자는 약 53만 원이다. 기존 월세 74만원보다 약 21만원 적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매달 내는 주거비를 줄이고 전세보증금 반환 위험도 낮추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별도의 전세금반환보증이나 전세대출보증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점도 정부가 내세우는 장점이다.

 

집주인도 완전히 손해를 보는 구조는 아니다. 같은 사례에서 집주인은 HUG로부터 매달 약 73만 원의 약정수익을 받을 수 있다.

 

직접 월세를 받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현금흐름을 확보하면서도 세입자의 월세 연체나 공실 위험을 일부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 계산 복잡해지는 집주인

문제는 집주인이 이 제도를 선택할 이유가 충분하느냐다.

 

안심신탁에 참여하면 전세보증금을 집주인이 직접 사용할 수 없다. 일반 전세에서 집주인은 수억원의 보증금을 대출 상환이나 다른 부동산 투자 등에 활용할 수 있지만, 안심신탁에서는 이런 방식이 불가능하다.

 

전세금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자산을 늘리려는 임대인에게는 큰 제약이다. 반대로 전세금을 은행 예금 등 안정적인 곳에 두거나 월세처럼 일정한 수익을 선호하는 임대인이라면 관심을 가질 수 있다.

 

국토교통부가 제도 설계 과정에서 실시한 조사에서도 참여에 관심을 보인 임대인은 20% 안팎이었다.

 

압도적인 비중은 아니지만 일정 규모만 참여해도 월세로 돌았던 주택 일부가 전세시장으로 들어올 가능성은 있다. 정부가 결국 집주인용 인센티브를 함께 검토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세제 혜택, ‘마지막 퍼즐’

안심신탁이 실제 시장에서 자리 잡으려면 결국 집주인의 손익계산서를 바꿔야 한다.

 

정부는 안심신탁을 통해 발생하는 임대인의 수익에 대해 세금을 낮춰주는 방안을 관계부처와 논의하고 있다.

 

현재 주택임대소득 분리과세 세율보다 낮은 한 자릿수 수준의 세율을 적용하거나 공제 범위를 넓히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다만 구체적인 세율과 적용 대상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등록임대사업자가 안심신탁에 참여할 경우 임대보증금보증 가입의무를 면제하고, 주택연금과 연계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예를 들어 서울에 집 한 채를 가진 고령자가 지방으로 이주하면서 안심신탁과 주택연금을 함께 활용할 경우 매달 받을 수 있는 현금흐름을 늘릴 수 있다는 것이 정부의 구상이다.

 

결국 안심신탁이 널리 퍼질 수 있느냐는 ‘연 4~5% 수익’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집주인이 전세금을 포기하는 대신 받을 수 있는 세제혜택과 각종 인센티브가 어느 수준으로 설계되느냐가 핵심이다.

 

한편, HUG는 세입자가 맡긴 보증금을 주택공급 활성화펀드 등을 통해 보증부 프로젝트파이낸싱 대출채권 등에 운용해 발생하는 수익을 집주인에게 지급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