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포은문화제, 용인시민의 날, 처인성문화제…. 가을이 오면 용인 곳곳에 축제의 무대가 세워진다. 읍·면·동의 크고 작은 주민 행사까지 더하면 주말마다 어딘가에서 음악이 흐르고 사람들이 모인다. 용인만 그런 것은 아니다. 금산인삼축제, 진주남강유등축제,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수원화성문화제, 횡성한우축제, 임실N치즈축제…. 가을 달력을 펼치면 대한민국 전체가 거대한 축제장 같다. 꽃이 피어도 축제이고, 곡식과 과일이 익어도 축제다. 역사도, 음식도, 마을도 축제가 된다. 가히 ‘축제의 나라’라 할 만하다. 축제는 좋은 것이다. 사람들이 집 밖으로 나오고 한산하던 거리에 웃음소리가 난다. 아이들은 뛰어다니고 어르신들은 무대 앞에 자리를 잡는다. 주민들은 몇 달 동안 연습한 공연을 선보이고, 동네 상인은 모처럼 몰려드는 손님을 맞는다. 흩어져 있던 사람을 한자리에 불러 모으는 것만으로도 축제는 의미가 있다. 그런데 기자로 오랫동안 축제장을 다니다 보니 한 가지 질문이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이 축제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시민을 위한 축제라는데 가장 좋은 자리는 종종 시민의 것이 아니다. 개막식이 가까워지면 무대 앞에는 이름표가 붙은 의자가 줄지어 놓이고
용인신문 | 예전에는 전화벨이 울리면 반가운 마음부터 들었다. 요즘은 다르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가 뜨면 먼저 망설이고, 경찰·검찰·은행이라는 말이 들리면 경계부터 한다. 심지어 “엄마, 나 사고 났어”라는 울먹이는 아들의 목소리 뒤에 낯선 남자가 합의금을 요구해도 한 번 더 의심해야 한다. 기술은 사람을 더 가깝게 연결했지만, 역설적으로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람의 목소리조차 믿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문득 나 자신에게 물어봤다. 어느 날 정말 아들의 목소리로 다급한 전화가 걸려온다면, 나는 그게 진짜인지 알아챌 수 있을까. 수십 년을 함께 살아왔으니 당연히 알 것 같았지만 막상 아들의 말투와 버릇을 떠올려보니 자신이 없어졌다. 내 아들은 다급할 때 어떤 말부터 꺼낼까. 긴장하면 말이 빨라지는지, 같은 말을 반복하는 버릇은 없는지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수십 년을 함께 살아왔는데도 나는 아들의 ‘목소리’보다 전화번호와 일정에 더 익숙했던 건 아닐까. 그 생각에 조금 서늘해졌다. 나는 아들의 전화번호는 알고 있었지만, 정작 아들의 언어에는 얼마나 익숙했던 걸까. 사실 보이스피싱의 가장 무서운 점은 정교한 기술보다 부모의 약한 고리를 정확히 파고든다는 데
용인신문 | 어릴 적 미술시간에 물감을 이것저것 섞다 보면 마지막에는 회색에 가까운 색이 남곤 했다. 빨강도, 파랑도, 노랑도 제 색을 잃은 듯 보이지만 사실 그 안에는 모든 색이 들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가끔 어머니를 생각하면 회색이 떠오른다. 어머니에게는 잘난 자식도 있고 못난 자식도 있다. 생각이 다른 자식도,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는 자식도 있다. 그래도 어머니는 쉽게 자식을 버리지 않는다. 잘못을 꾸짖으면서도 밥은 먹이고, 세상이 등을 돌려도 돌아올 자리를 남겨둔다. 배우 하영을 둘러싼 논란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가족에게 전해 들은 증조부의 삶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가 일제강점기 행적이 알려지면서 거센 비판을 받았다. 역사는 분명히 기록돼야 한다. 친일의 잘못을 흐리거나 덮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잘못은 잘못이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조상의 잘못과 후손의 삶까지 같은 색으로 칠해야 하는가는 다른 문제다. 누구도 부모와 조상을 선택해 태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오늘의 한 사람에게 물어야 할 것은 “당신의 증조부가 누구였는가”만이 아니라 “그 사실을 알게 된 뒤 당신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여야 하지 않을까. 나는 좋은 드라마의 힘도 거기에
용인신문 | 110만 인구를 넘어선 용인은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성장하는 도시 가운데 하나다.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서고 수도권 남부의 핵심 도시로 자리 잡으면서 용인은 미래 첨단산업의 중심지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용인이 지닌 전략적 가치는 반도체 산업이 들어선 오늘날에 비로소 시작된 것이 아니다. 시간을 1500여 년 전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용인은 이미 백제와 고구려, 신라가 차례로 차지하며 치열하게 경쟁했던 전략적 요충지였다. 시대와 형태는 달라졌지만 사람과 물자가 모이는 핵심 길목이라는 도시의 가치는 지금까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삼국시대 초기 용인은 백제의 영역이었다. 백제가 한성을 수도로 삼던 시기, 용인은 한강 남쪽을 방어하는 배후 지역이자 충청과 남부 지방으로 이어지는 내륙 교통의 중심이었다. 한성에서 남쪽으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한 지리적 특성상 평상시에는 물자와 사람이 활발히 오갔고, 전쟁이 일어나면 군대가 반드시 지나야 하는 요충지였다. 용인의 운명이 바뀐 것은 475년이었다. 고구려 장수왕이 백제의 수도 한성을 함락하면서 한강 유역 대부분이 고구려의 지배 아래 들어갔고, 용인 역시 새로운 주
용인신문 | “아직도 아내를 사랑하십니까.” 신문기자를 하며 금혼식을 맞은 노부부나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부부를 만나면 종종 던지던 질문이다. 돌아오는 대답은 의외로 비슷했다. “사랑은 무슨…. 그냥 같이 사는 거지.” 처음에는 그 말이 왠지 쓸쓸하게 들렸다. 사랑이 사라졌다는 고백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같은 질문을 수십 년 반복하며 오히려 다른 사실을 깨닫게 됐다. 정말 오래가는 사랑은 자신을 사랑이라고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저 사람이 없으면 안 되지.”, “싸울 만큼 싸웠는데도 결국 집에는 같이 들어왔어.”, “평생 같이 살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라는 말을 했다. 사랑을 말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삶 자체가 사랑을 증명하고 있었다. 우리는 사랑을 너무 오랫동안 명사로 배워 왔다. 사랑은 운명처럼 찾아오는 것이고, 한 번 만나면 변하지 않는 것이며, 가슴을 뛰게 하는 감정이라고 믿었다. 영화도 소설도 대부분 그렇게 가르쳤다. 그래서 설렘이 줄어들면 사랑이 식었다고 생각하고, 예전 같지 않으면 관계가 끝나가고 있다고 불안해한다. 하지만 인생은 영화보다 훨씬 길고, 결혼은 연애보다 훨씬 현실적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부모를 돌보고, 생계
용인신문 | 올여름 유럽은 또다시 폭염에 신음하고 있다. 스페인과 프랑스, 이탈리아는 40도를 넘나드는 더위가 이어지고, 영국마저 "에어컨은 이제 사치품이 아니라 생존 장비"라는 말이 나온다. 그런데 정작 유럽 사람들을 가장 놀라게 하는 것은 폭염이 아니다. 에어컨이다. 한국 사람들에게 에어컨은 너무도 익숙한 가전제품이다.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며칠 안에 설치가 끝난다. 벽걸이든 스탠드형이든 원하는 제품을 고르고, 설치 기사와 날짜만 맞추면 된다. 돈만 있으면 누구나 시원한 여름을 맞을 수 있다. 에어컨을 사는 일은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이다. 하지만 유럽은 전혀 다른 세상이다. 수백 년 된 건물은 외벽을 훼손할 수 없어 실외기 설치가 제한되는 경우가 많고, 문화재 보호 규정 때문에 별도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곳도 적지 않다. 건물의 전기 용량을 늘려야 하고, 배관을 새로 깔아야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건물 전체의 설비를 손봐야 한다. 그래서 오래된 건물이나 역사적 건축물에서는 에어컨 한 대를 설치하는 데 우리 돈으로 수천만 원이 드는 사례도 나온다. 한국에서는 에어컨 가격을 고민하지만, 유럽에서는 설치 자체를 고민하는 것이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용인신문 |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궁금한 것이 생기면 습관처럼 포털 검색창을 열었다. 원하는 정보를 찾기 위해 수많은 링크를 클릭하고, 광고를 지나치고, 여러 페이지를 비교하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지금은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포털보다 먼저 생성형 AI를 연다. 검색어 대신 질문을 입력하고, 몇 초 뒤 정리된 답을 받아본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방식 자체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생성형 AI의 가장 큰 변화는 단순히 일을 빨리 처리해 준다는 데 있지 않다. 우리의 시간을 되돌려준다는 점에 있다. 보고서 초안은 몇 분 만에 완성되고, 긴 논문은 핵심만 추려 읽을 수 있으며, 복잡한 엑셀 함수나 프로그래밍 코드도 즉시 해결책을 얻는다. 글을 쓰는 사람은 표현을 다듬고, 기획자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고, 학생은 어려운 개념을 쉽게 이해한다. 과거에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했던 일들이 이제는 누구나 혼자 해낼 수 있는 일이 되고 있다. AI는 사람을 게으르게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의 능력을 몇 배로 확장시키는 도구가 되고 있다. 무엇보다 AI는 사람을 더 많이 생각하게 만든다. 한 번의 질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관점은 없을까”,
용인신문 | 대한민국이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홀로 생을 마감하는 ‘고독사’가 사회 전반에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 고독사 사망자는 2021년 3378명에서 2025년 6000여 명으로 꾸준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50·60대 장노년층이 전체 사망자의 60% 이상을 차지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고독사가 일부 취약계층만의 문제가 아니라, 은퇴를 전후한 시니어 세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보편적이고 구조적인 사회 위험으로 자리 잡았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고독사가 야기하는 가장 현실적이고 치명적인 문제는 사망 후 발생하는 막대한 경제적 비용이다. 발견이 늦어지면 시신 부패로 주거 환경이 훼손된다. 일반 청소로는 해결이 안되어 전문적인 특수청소, 악취 제거, 감염 예방 방역, 유품 정리, 특수 폐기물 처리 및 주거지 전면 복구 작업이 필수적이다. 장례 절차까지 포함하면 건당 최소 1000만 원 이상의 사후 처리비가 발생한다. 현재 이 비용 상당수는 무연고 사망자 지원 등을 통해 지자체 예산, 즉 국민의 혈세로 충당된다. 고독사가 늘어날수록 세금 부담도 함께 커질 수밖에 없는 악순환 구조다. 반면, 우리보다 20여
용인신문 | 학교 갈 시간이 다 됐는데 반찬이 마땅치 않으면 어머니는 늘 같은 메뉴를 내놓으셨다. 따뜻한 밥 위에 노릇하게 부친 달걀프라이 하나를 올리고, 간장 한 숟갈과 참기름 몇 방울을 떨어뜨려 쓱쓱 비벼주셨다. “이거라도 먹고 가.” 그 한마디와 함께 내밀던 계란간장비빔밥은 우리 세대의 가장 흔한 아침 식사였다. 그때는 그저 형편이 어려워 먹는 음식쯤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영양학을 접하고 글을 쓰면서 문득 깨닫게 된다. 어머니들은 이미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균형 잡힌 아침 식사를 만들어주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밥으로 탄수화물을 채우고, 달걀로 양질의 단백질을 보충하며, 참기름으로 지방을 더했다. 여기에 김치 한 접시만 곁들여도 식이섬유와 비타민까지 보완되는 훌륭한 한 끼가 완성됐다. 이름도 없고 유행도 없던 '균형식'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균형보다 유행을 먹기 시작했다. 저탄수화물, 키토, 고단백, 간헐적 단식…. 새로운 식단이 등장할 때마다 탄수화물은 죄인이 됐다가, 지방은 악당이 됐다가, 다시 단백질이 영웅이 되는 일이 반복된다. 음식은 그대로인데 평가만 바뀐다. 최근에는 삶은 달걀이 그 중심에 섰다. 다이어트 열풍 속에
용인신문 | 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 이 화제다. 많은 사람들은 이 드라마를 보며 교권 붕괴를 이야기한다. 무너진 교실, 폭주하는 학부모, 통제되지 않는 학생들을 보며 "요즘 애들은 왜 저럴까"라고 묻는다. 하지만 그 질문은 어쩌면 가장 쉬운 답일 뿐이다. 정작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따로 있다. 요즘 아이들이 왜 변했는가가 아니라, 아이들이 변할 수밖에 없는 세상을 누가 만들었는가 하는 점이다.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아이들은 부모에게 혼나고, 형제와 싸우고, 동네 어른들에게 꾸중을 들으며 자랐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배운 것이 있었다. 눈치였다. 타인의 감정을 읽는 능력이었고,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법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외동이나 두 자녀가 대부분인 시대가 됐다. 부모와 조부모의 관심은 한 아이에게 집중되고, 아이는 경쟁보다 보호 속에서 성장한다. 여기에 스마트폰이 더해졌다. 싫은 친구와도 다음 날 다시 만나야 했던 시대는 지나갔다. 불편하면 차단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공동체로 이동할 수 있다. 갈등을 해결하는 능력보다 관계를 끊는 능력이 먼저 발달하는 구조가 됐다. 부모도 변했다. 과거 부모들이 아이를 사회에 적응시키려 했다면 지
용인신문 | 최근 노인복지관과 주민센터를 찾으면 가장 붐비는 곳 가운데 하나가 춤 강좌다. 라인댄스, 사교댄스, 줌바댄스, 에어로빅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집 안에만 머물던 어르신들이 밖으로 나와 사람을 만나고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모습은 분명 반가운 풍경이다. 우울감 감소, 사회적 교류 확대, 인지기능 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적지 않다. 문제는 춤의 장점만 이야기되고 위험성은 거의 이야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운동에는 크게 직선 운동과 회전·방향전환 운동이 있다. 걷기나 가벼운 조깅은 비교적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운동이다. 반면 춤은 몸을 비틀고 돌리고 방향을 바꾸는 동작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특히 사교댄스나 라인댄스에서는 무릎과 발목이 체중을 지탱한 상태에서 상체가 회전하는 경우가 많다. 젊은 사람들도 회전 동작을 할 때는 조심한다. 스포츠 현장에서 발생하는 십자인대 파열이나 반월상연골판 손상 역시 대부분 방향 전환 과정에서 발생한다. 축구선수나 농구선수들이 상대와 충돌하지 않아도 무릎을 다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관절이 이미 수십 년 동안 사용된 노년층은 어떨까. 나이가 들수록 연골은 닳고 근육은 줄어든다. 균형감각도 떨어진
용인신문 | 우리를 살게 하는 힘, 적당한 스트레스 사람들은 흔히 스트레스를 인생의 적이라고 생각한다. 스트레스가 많으면 병이 생기고, 늙고, 우울해지고, 수명이 짧아진다고 믿는다. 실제로 만성 스트레스는 고혈압과 당뇨병, 우울증, 불안장애의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스트레스가 전혀 없는 삶을 꿈꾼다. 흥미로운 질문이 하나 있다. 정말 스트레스가 전혀 없는 삶이 인간에게 가장 좋은 삶일까. 생물학은 의외의 답을 내놓는다. 인간의 몸은 원래 적당한 자극과 긴장을 받도록 설계되어 있다. 근육은 운동이라는 스트레스를 받아야 강해진다. 뼈도 하중이라는 스트레스를 받아야 단단해진다. 면역계 역시 외부 자극을 경험해야 제대로 작동한다. 아무런 자극이 없는 환경은 오히려 신체 기능을 퇴화시킨다. 뇌도 마찬가지다. 최근 국내 연구진이 발표한 흥미로운 연구는 스트레스와 뇌의 관계를 새로운 시각에서 보여준다. DG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 유성운 교수 연구팀은 만성 스트레스 상황에서 뇌 해마의 신경줄기세포를 보호하는 유전자 p53의 역할을 규명했다. p53은 원래 손상된 세포를 제거해 암을 막는 대표적인 '세포 사멸 유전자'로 알려져 있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