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변화의 내용뿐만 아니라 그 속도 역시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어떤 이는 끊임없이 내면을 가꾸고 외적 위치를 바꿔가며 시대의 흐름을 쫓기도 하지만, 다른 어떤 이는 그러한 변화에 환멸을 느끼며 어딘가에 정착하기를 갈망하기도 한다. 『제자리에 있다는 것』은 이처럼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제자리’라는 개념에 대한 성찰을 여러 예술 작품을 통해 탐색한 저작이다. 저자 클레르 마랭은 ‘제자리를 지키는 것’과 ‘탈주하는 것’이라는 두 가지 욕구 모두에 각기 다른 문제가 있다고 본다. “존재한다는 것은 언제나 하나의 여정이며, 머무는 행위조차 그 여정을 구성하는 정서적·사회적·지리적·정치적 기착지에 불과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제자리라는 개념을 탐구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특정 장소와 연결되기 마련인데, 때로는 그 장소 자체가 개인에게 억압이나 폭력이 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 놓인 이들에게는 제자리를 벗어나는 탈주가 절실하다. 반대로 탈주 역시 능사는 아니다. 자아가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끝없이 방황하는 것 또한 존재의 안녕에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탈주’의 가치에 좀 더 주목한다. 대개의 작가는 제자리를 지키는 것을 일종의 구속으로
용인신문 | 여름엔 봉숭아물이지! 한국에 들어왔다. 마음 놓고 기대며 살고 있다. 맛있는 밥을 먹고, 밭일을 가끔 돕고, 계곡에 가 수영을 하고. 어제는 봉숭아를 한아름 뜯어와서 봉숭아물을 들였다. 남원에서 지내고 있는데,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인 소꿉친구도 며칠 놀러 와서 그때마냥 놀고 있다. 답답했던 것들 내려놓고, 비닐로 묶어 느낌이 이상한 손가락을 참으며 잠에 들고 났더니 예쁜 다홍색으로 물든 손끝. 아 여름이다.
종 種 박설희 쓸쓸함과 막막함 사이에서 오늘의 물결이 닿은 곳 짝짓기를 거부해 후손을 남기지 않았다는 땅거북, 외로운 조지 마지막 종種으로 남는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우주탐사선 파이어니어 10호는 우리 외에 지각 있는 존재를 만나지 못했다, 우리는 외롭다 등의 메시지를 담은 금속판을 싣고 우주로 날아갔다 ‘외롭다’는 마음을 우주인은 이해할까 검은 우주 속 단 하나의 종, 지구인 긴 밥주걱처럼 생긴 부리를 물속에서 휘젓는 멸종위기종 저어새도 도무지 먹이 활동에는 적합하지 않은 부리를 가진 나도 지구의 가장자리에 정박해 있는데 오늘도 난민처럼 지구 밖을, 별들을, 우주 너머를 기웃거리다 잠이 들 것이다 약력: 강원 속초에서 태어나 2003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쪽문으로 드나드는 구름』 『꽃은 바퀴다』 『가을을 재다』, 산문집 『틈이 있기에 숨결이 나부낀다』 등이 있다.
용인신문 | “AI가 나보다 똑똑한데 왜 공부해야 하나요.” 아이들이 가장 많이 던질 질문일 것이다. AI는 인간보다 빨리 계산하고 방대한 양을 기억하며, 순식간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시험을 풀고 논문을 요약하며 프로그램도 만든다. 내가 몇 시간을 공부해야 겨우 아는 것을 AI는 단 몇 초 만에 내놓으니, 책상 앞의 아이가 억울할 만도 하다. 그렇다면 공부는 정말 필요가 없어졌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오히려 반대다. AI 시대에는 덜 공부할 것이 아니라 더 제대로 공부해야 한다. 과거의 공부가 정답을 외우는 일이었다면, 앞으로의 공부는 어떤 답을 믿을지 판단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AI가 늘 옳지는 않다. 틀린 정보도 자신 있게 말하고, 편향된 자료를 그럴듯하게 포장한다. 아는 것이 없으면 AI의 말을 그대로 믿지만, 공부한 사람은 '정말 그런가, 근거는 무엇인가' 하고 한 번 더 묻는다. 공부는 AI를 이기기 위한 무기가 아니라, AI에게 속지 않기 위한 힘이다. 좋은 질문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아는 것이 있어야 무엇이 이상한지 보이고, 많이 읽어야 빠진 부분을 알 수 있다. 떨어지는 사과에 "왜"를 묻던 뉴턴, 백성이 글 모름을 불편히 여긴 세종대
용인신문 | 110만 인구를 넘어선 용인은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성장하는 도시 가운데 하나다.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서고 수도권 남부의 핵심 도시로 자리 잡으면서 용인은 미래 첨단산업의 중심지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용인이 지닌 전략적 가치는 반도체 산업이 들어선 오늘날에 비로소 시작된 것이 아니다. 시간을 1500여 년 전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용인은 이미 백제와 고구려, 신라가 차례로 차지하며 치열하게 경쟁했던 전략적 요충지였다. 시대와 형태는 달라졌지만 사람과 물자가 모이는 핵심 길목이라는 도시의 가치는 지금까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삼국시대 초기 용인은 백제의 영역이었다. 백제가 한성을 수도로 삼던 시기, 용인은 한강 남쪽을 방어하는 배후 지역이자 충청과 남부 지방으로 이어지는 내륙 교통의 중심이었다. 한성에서 남쪽으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한 지리적 특성상 평상시에는 물자와 사람이 활발히 오갔고, 전쟁이 일어나면 군대가 반드시 지나야 하는 요충지였다. 용인의 운명이 바뀐 것은 475년이었다. 고구려 장수왕이 백제의 수도 한성을 함락하면서 한강 유역 대부분이 고구려의 지배 아래 들어갔고, 용인 역시 새로운 주
용인신문 | 최근 미군 정찰기들이 한반도와 주변 상공에 부쩍 자주 출격하고 있다고 한다. 미군 정찰기는 서해상에서 중국 영공에 다가가는 비행 훈련을 하고 휴전선 일대의 정찰도 강화하고 있다. 그런데 비행 패턴과 작전 반경이 이례적인 양상이다. 최근 평택 미군기지에서 출격한 미 육군의 차세대 정찰·전자전 항공기 아레스(ARES)는 중국 상하이와 칭다오 앞바다 등 중국 동부 연안까지 접근해 장시간 비행했다고 한다. 이는 중국과 러시아의 해상 연합 훈련 및 군사적 동향을 밀착 감시하기 위한 것이다. 주한 미군의 경계활동 강화를 두고 일부 군사전문가들은 “미국이 전선을 동아시아까지 확대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경계하고 있다. 최근 이란전쟁에서 이란 혁명수비대는 중동 전역 15개 이상의 미군 시설에서 최소 228개의 군사 자산을 정밀 타격했다. 이란의 미군기지 타격은 정밀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베이더우(北斗) 위성시스템을 제공했다고 비난했다. 이란은 무작위 폭격이 아니라 요르단, 쿠웨이트, 바레인의 미군 기지를 정밀하게 타격했다. 일부 군사전문가들은 주한미군의 강화된 정찰비행이 중국을 자극하여 군사적 충돌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만약 미국의 압박에 중
용인신문 | 수지구 상현동에 거주하는 시민입니다. 용인시에서 운영하는 바닥분수는 여름철 아이들과 시민들이 안전하게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매우 좋은 시설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재 운영 방식은 실제 날씨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건의드립니다. 최근에는 기후변화로 인해 여름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닥분수 운영 기간은 대부분 장마철과 겹쳐 실제 이용 가능한 날이 매우 적습니다. 비가 오는 날은 물론, 전날 비가 내려 수질 관리가 필요한 경우에도 운영이 중단되어 시민들은 정작 이용하고 싶을 때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운영 기간은 정해진 일정대로 종료되어 버리기 때문에, 시민들이 체감하는 운영 일수는 계획보다 훨씬 짧습니다. 이에 장마철을 고려하여 운영 기간을 조정하거나, 장마 이후까지 운영 기간을 연장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 우천이나 수질 관리 등의 사유로 운영하지 못한 날짜만큼은 운영 기간을 탄력적으로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해 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예산이 이미 편성되어 있다면 실제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기상 상황을 반영한 유연한 운영이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듣는 사람 이시영 좋은 시인이란 어쩌면 듣는 사람인지 모른다 그래야 깊은 산 삭풍에 가지 부러지는 소리도 들을 수 있고 놀라서 달음박질치는 다람쥐의 재재바른 발자국 소리도 조심조심 들을 수 있다 때론 벼락처럼 첨탐 높은 교회당을 때리는 야훼의 노한 음성도 어릴 적 볏짚 담 너머 키 작은 어머니의 다듬이 소리도 함께 들을 수 있다 좋은 시인이란 그러므로 귀가 쫑끗 솟은 사람인지 모른다 그래야 잉크병 얼어붙은 겨울밤 곱은 손 불며 이 모든 소리를 백지 위에 철필로 꾹꾹 눌러쓸 것이다 약력: 전남 구례 출생하였고, 196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조가, 《월간문학》 제3회 신인작품 공모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정지용 문학상, 동서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지훈상, 백석문학상,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만해문학상을 수상했다.
용인신문 | 이보다 더 간절할 바람이 있을 수 있을까.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가진 성인 아들을 둔 한부모 가정의 아버지. 간암 선고를 받고 여명 6개월을 이미 넘겨버린 벼랑 끝 아버지의 이야기가 『안녕, 피터팬』이다. 피터팬은 당연히 생각이 자라지 않는 아들일 터. 아들의 인지는 세 살을 넘기지 못한다.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된 이 도서는 앞부분이 죽음을 앞둔 아버지의 생애를 화자 꼭두와 함께 돌아보고 뒷부분은 자폐에 대한 이해가 중심이야기이다. 보통의 가정에서 보통의 시절을 보낸 보통의 아버지인 저자는 이제 특별한 아들을 돌보게 되었다. 자폐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시기의 저자는 자폐를 회복될 수 있는 질병으로 인지해 “아들은 좋아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장애와 질병의 차이를 이해하게 되었고 장애는 받아들여야 함을 깨닫는다. 그래서 무슨 일이든 “아들이 좋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저자는 전국에 장애인 수용시설이 1000곳이나 되지만 아들의 안식처가 없다는 가혹한 현실을 무척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아들에게 밥을 먹이기 위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김장을 하는 아버지의 당찬 모습은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안녕, 피터팬』은
용인신문 | 새벽 2시. 잠에서 깬다. 화장실에 다녀온다. 한 시간쯤 지나 또 일어난다. 새벽이 끝날 무렵 다시 화장실을 찾는다. "나이가 들면 다 그렇지." 대부분의 남성은 이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밤에 세 번 이상 소변 때문에 잠에서 깬다면 단순한 노화가 아니라 몸이 보내는 신호일 가능성이 크다. 우리 몸은 잠을 자는 동안 소변 생성을 줄이고 방광도 오랜 시간 소변을 저장하도록 작동한다. 그런데 이 균형이 깨지면 숙면은 반복해서 끊기고 만성 피로와 집중력 저하로 이어진다. 야간뇨는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건강 이상을 알리는 신호일 수 있다. 중년 남성에게 가장 흔한 원인 가운데 하나는 전립선비대증이다. 커진 전립선이 요도를 압박하면 소변 줄기가 가늘어지고 힘이 약해지며, 다 본 뒤에도 시원하지 않은 느낌이 남는다. 화장실을 자주 가거나 갑자기 소변이 마려워 참기 힘든 증상도 흔하다. 하지만 모든 야간뇨가 전립선비대증 때문은 아니다. 방광 기능 저하도 흔한 원인이다. 방광이 예민해지면 조금만 소변이 차도 요의를 느끼는 과민성 방광이 생길 수 있고, 반대로 방광 수축력이 떨어지면 소변을 완전히 비우지 못해 화장실을 반복해서 찾게 된다. 문제는 전립선비대증과 방
용인신문 | 한때는 못생긴 사람을 놀리는 말처럼 쓰였다. 이상한 일이다. 꽃은 여름 들판을 환하게 밝히는 노란빛을 자랑하고, 열매는 애호박부터 늙은호박까지 버릴 것이 없다. 꽃은 튀겨 먹고, 잎은 쌈으로 먹고, 씨앗은 건강식품이 된다. 속은 죽이 되고, 껍질은 반찬이 된다. 이렇게 완벽한 식물을 두고 왜 하필 흉을 보는 말이 생겼을까. 억울한 것은 호박뿐이다. 여름 시장에 가보면 애호박은 가장 먼저 손이 가는 채소다. 가격 부담이 적고 실패가 없다. 된장찌개에 넣으면 국물이 달아지고, 새우젓 하나만 넣고 볶아도 밥 한 공기가 금세 사라진다. 밀가루를 입혀 전을 부치면 아이도 어른도 젓가락을 멈추지 않는다. 냉장고에 애호박 두 개만 있어도 며칠 동안 반찬 걱정을 덜 수 있다. 화려하지 않지만 식탁을 가장 묵묵히 책임지는 채소다. 더 놀라운 것은 애호박이 덜 익은 호박이라는 사실이다. 어린 시절에는 부드럽고 싱그러운 애호박으로, 시간이 지나면 달콤한 늙은호박으로 변한다. 하나의 식물이 성장 과정에 따라 전혀 다른 식재료가 되는 셈이다. 자연이 만든 가장 경제적인 식재료 가운데 하나다. 영양도 만만치 않다. 90% 이상이 수분이라 무더위에 지친 몸에 부담이 적고,
용인신문 | “아직도 아내를 사랑하십니까.” 신문기자를 하며 금혼식을 맞은 노부부나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부부를 만나면 종종 던지던 질문이다. 돌아오는 대답은 의외로 비슷했다. “사랑은 무슨…. 그냥 같이 사는 거지.” 처음에는 그 말이 왠지 쓸쓸하게 들렸다. 사랑이 사라졌다는 고백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같은 질문을 수십 년 반복하며 오히려 다른 사실을 깨닫게 됐다. 정말 오래가는 사랑은 자신을 사랑이라고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저 사람이 없으면 안 되지.”, “싸울 만큼 싸웠는데도 결국 집에는 같이 들어왔어.”, “평생 같이 살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라는 말을 했다. 사랑을 말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삶 자체가 사랑을 증명하고 있었다. 우리는 사랑을 너무 오랫동안 명사로 배워 왔다. 사랑은 운명처럼 찾아오는 것이고, 한 번 만나면 변하지 않는 것이며, 가슴을 뛰게 하는 감정이라고 믿었다. 영화도 소설도 대부분 그렇게 가르쳤다. 그래서 설렘이 줄어들면 사랑이 식었다고 생각하고, 예전 같지 않으면 관계가 끝나가고 있다고 불안해한다. 하지만 인생은 영화보다 훨씬 길고, 결혼은 연애보다 훨씬 현실적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부모를 돌보고, 생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