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 가스렌지에 불을 켜놓고 외출을 했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원격조정으로 가스렌지의 점화조정은 물론 회사에 출근하면서 휴대폰으로 청소기 작동을 예약해 두고 퇴근시간에 맞춰 원격 조정으로 집안의 보일러를 켜고 저녁식사를 할 수 있도록 조리기구를 작동시켜둘 수 있다.
또 초등학교 3학년인 막내아들이 아이가 무슨 게임을 얼마나 하는지 휴대폰을 통해 감시할 수도 있다. 30분동안만 하겠다는 게임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자신의 휴대폰으로 게임을 종료시킬 수 있다.
불과 몇년전에도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들이었지만 이제는 우리생활의 일부가 되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정보를 이용하는 유비쿼터스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언제 어디에서나 널리 존재하는’의 뜻을 가진 ‘유비쿼터스(Ubiquitous)’란 용어도 일반인에게도 점차 익숙해지고 있다.
유비쿼터스란 말은 `$$`어디든지(everywhere)`$$`라는 뜻의 라틴어 `$$`유비크(ubique)`$$`에서 나온 신조어로 `$$`도처에 존재하다`$$`를 의미한다. 즉 사용자가 장소와 시간, 네트워크나 컴퓨터의 종류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환경을 말한다.
84년 동경 사카무라 겐 교수가 차세대 컴퓨팅 개념으로 내세웠던 `$$`모든 곳에 컴퓨터가 있다(Computing Everywhere)`$$`로 시작된 유비쿼터스(Ubiquitous)는 21세기 IT 산업의 화두로 떠오르며 가전ㆍ통신ㆍ인터넷 등의 산업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유비쿼터스 시대는 P2P(Person to Person), P2M(Person to Machine), M2M(Machine to Machine)의 발전 단계를 가진다고 한다. 언제 어디서든 휴대폰과 인터넷 등을 통해 커뮤니케이션 하는 단계가 그 첫 번째인 P2P의 단계이며 현재 우리 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휴대폰으로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릴 수 있고 사진을 찍어 웹에 바로 올릴 수 있는 서비스까지는 현재 진행중이다.
휴대전화로 e메일을 수신하고 웹서핑까지 할 수 있게 된 오늘날, 이미 `$$`언제나 어디든지 접속`$$`의 유비쿼터스 환경은 부분적으로 우리 일상에 침투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P2M은 휴대폰으로 집안의 에어컨을 켜는 등 사람과 기계 사이의 원격 조정이 보편화되는 단계로 `$$`디지털홈`$$`과 같이 우리가 직접 피부로 느끼는 미래다. 우리나라는 두번째 단계로 이동중이며 현재 용인지역에서는 흥덕지구를 디지털 도시로 만들고 있다.
흥덕지구 도시건설을 진행하고 있는 토지공사 측은 "이번 디지털도시 시범구축사업이 도시건설의 새로운 장을 여는 것은 물론 유비쿼터스 시대를 앞당기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토공은 용인시 영덕리 일대 64만여평을 `$$`미래형 디지털 시범도시`$$`로 개발해 2007년까지 조성 사업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곳곳에 센서를 설치해 도시 전체를 컴퓨터시스템으로 관리할 수 있게 만든다는 것. 시범도시가 건설되면 차 안에서 집안의 가전제품을 조정하고 거실에 앉아 전문의와 화상전화를 통해 불편해진 몸에 대해 상담할 수 있다.
지난해 10월 열린 `$$`한국전자전`$$`에서는 화장실에 앉은 사람의 혈압 당뇨 등 건강지수를 자동 체크해 주치의에게 알려주는 원격 의료정보 서비스가 선보였다.
곧 유비쿼터스 환경에서는 인간뿐만 아니라 사물들도 상시 접속해 있는 것이다.
어쩌면 `$$`헤리포터`$$`의 영화에서 보여 준 것처럼 모든 사물들과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고 신문을 보면서 진행되는 사건의 생생한 영상화면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최근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한국형 인간형 로봇인 지난해 12월 `$$`휴보`$$`(HUBO)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본격적인 로봇 서비스 개막은 앞으로 기계와 인간, 기계와 기계와의 대화의 시대를 내다본다고 할 수 있다.
생활의 편리함이 가속화되는 것도 좋지만 이에 대한 두려움도 없지 않다.
지난해 출간된 ‘유비쿼터스-공유와 감시의 두 얼굴’(리처드 헌터 지음·21세기북스)은 유비쿼터스 세상이 가져올 수 있는 사생활 침해 등의 부작용에 대해 경고했다.
그러나 그동안 다양성을 존중하지 못하고 문명의 이기를 소유하려는 전쟁 역사의 종지부를 찍고, 인간과 인간,인간과 사물, 기계와 기계와의 대화로 화합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접속과 대화는 곧 문명의 이기를 소유할 수 없으며 화합으로 공생할 수 있다는 예측만 할 뿐이다. 평화의 역사를 다시한번 쓰는 시대가 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