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렬은 소리명창이 되는데 제일 중요한 요인인 ‘소리 목’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으나 그 약점을 독특한 음악 해석으로 극복하여 명창이 되었다.
정정렬은 일곱 살 무렵에 소리에 입문하여 수업을 시작하였는데, 세상을 뜨기 직전까지도 입산수도하는 방식의 독공(篤工)을 할 만큼 무던한 노력을 기울였다. 독공은 대개 100일, 200일 단위의 기간 동안 잠자고 먹는 시간을 제외한 일과를 모두 소리 연마에 쏟는 불가의 ‘용맹정진(勇猛精進)’ 같은 공부방법이다.
정정렬은 공력을 기울인 성음뿐만 아니라 판소리의 해석을 완전히 새롭게 하여 ‘신식 판소리’를 부른 명창으로도 높이 평가된다. 정정렬은 목이 좋지 않아 ‘성음’으로 소리의 미학을 만족스럽게 표출하지 못하는 것을 다양한 음악의 변용으로 풀어낸 명창으로도 유명하다.
판소리는 성음과 장단, 다양한 조의 변화를 자유자재로 운용하면서 사설의 극적 구성을 다이나믹하게 표현하는 음악인데, 정정렬은 성음에서 부족한 부분을 장단과 조를 다양하게 변화시키는 방법으로 보충하였다.
정정렬은 판소리 사설을 노래하면서 장단을 정격대로 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본래의 장단 보다 길게 늘이거나, 또는 앞당겨 붙이는 등 ‘엇붙이는 방법’을 구사함으로써 음악적 재미를 극대화했다.
정정렬은 또 판소리의 장단의 부침새를 변화무쌍하고 정교하게 구성하는 동시에 조(調)와 음질(音質)을 변화시키는데도 많은 관심을 가졌다. 또 발성을 할 때도 밋밋하고 평평하게 하기보다는 극적 표현을 살려 흔들어 낸다거나, 밝고 씩씩한 표현보다는 애조 띤 계면조 표현을 확대시켰다.
그 결과 정정렬의 판소리는 화려하고 정교하며 세련된 표현이 넘치는 독특한 세계를 갖추게 되었는데 이를 두고 동시대 명창들은 ‘신식 판소리’라고 평하였다.
*음악과 문학이 조화를 이뤄 새롭게 탄생한 정정렬제 춘향가 여러 가지 판소리 중에서 정정렬은 특히 <춘향가>의 판을 아주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새롭게 탄생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판소리 명창과 애호가들 사이에서 ‘정정렬 나고 <춘향가> 다시 났다’라는 말과도 통할 만큼 그의 춘향가는 남달랐으니 그야말로 ‘창의적인 소리세계를 이룩한 명창’으로 기억될 만하다.
*창극 연출
정정렬은 1936년 무렵 창극사의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했다. 정정렬은 창극의 소리와 대사는 전통성을 살려 품위와 격조를 더하고, 극적으로는 하루 공연에서 늄쩜喚燒?구조가 완결되도록 구성하며, 소리꾼들이 직접 연기를 하면서 소리를 불러 소리와 극이 겉돌지 않고 조화롭게 표현한 신 형식의 창극을 선보여 대성공을 거두었다.
공연장인 동양극장에는 연일 관람객이 넘쳤고, <춘향전>이 큰 성공을 거두자, 그 여세를 몰아 <흥보가> 등의 후속프로그램을 속속 발표함으로써 1936년은 그야말로 창극사에 신기원을 마련하였다. 그가 시도한 창극은 오늘날까지 창극의 전통으로 이어져 오고 있으며, 정정렬의 이러한 노력에 주목한 판소리 학자 중에는 그를 ‘현대 창극의 아버지’라는 말로 그의 공로를 평가하기도 하였다.